천자문으로 세상 보기 - 파자로 푸는 인문학 테마 한자 공부법
김동련 지음 / 인간사랑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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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자로 푸는 인문학 테마 한자 공부법 [천자문으로 세상 보기]

 

 

 

 

천자문 하면 서당이 떠오른다.

옛날 서당에서 학동들이 배웠던 대표적인 교재.

머리를 땋아 늘인 학동들이 꼭 그것만 배웠던 것도 아닐 텐데 말이다.

천자문을 외워 보자 치면 하늘 천, 따 지, 가마솥에 누룽지 라고 저절로 이어지는 우스개 섞인 노랫가락이 불쑥 튀어나온다.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다 좀 길어지면 슬그머니 소리를 낮추다 가만히 삼켜 버리고 마는 천자문 외우기.

여럿이서 시작해도 끝은 같다.

몇 구절 못 가서 꼬리가 잘린 돌림노래가 되고 만다. 그것이 천자문의 묘미. ^^

 

초등학교 고학년 쯤. 아마 여름방학 때였을 것이다.

아빠가 올 여름에는 천자문 좀 외워보지 않겠니, 한 마디 하시자

지상최대의 명령이 떨어진 것처럼 곧바로 서점에 가서 한석봉 체의 천자문 책 한 권을 샀다.

앉은뱅이 책상 위에 신문지를 깔고 붓과 벼루를 놓았다.

부지런히 먹을 갈아서 글쓰기를 생전 배워 본 적도 없으면서 열심히 한 자 한 자 따라 썼다.

엄마가 떡을 썰며 옆에서 조용히 응원해주지 않았는데도 혼자 한자를 외우며 최대한 비슷하게 쓰려고 노력했다.

그런다고 한석봉 같은 명필이 될 것도 아니면서...

 

천자문이라는 단어 하나에서 떠올린 것이 한석봉과 붓글씨였던 것에서 보면, 나는 아마도 어지간히 고지식한 아이였던 모양이다.

그냥 연필로 공책에 한 자씩 써나가도 될 것을 굳이 종이를 펴고 먹 향기를 맡아 가며 힘들게 빼뚤빼뚤 글씨를 써나갔던 나를 보며 아빠는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크게 될 녀석이라며 기뻐하셨을까, 아니면 저렇게 고지식한 저 녀석을 어찌하면 좋을까 하고 한숨을 내쉬셨을까.

 

어쨌든 보통은 천 개의 한자가 쓰여진 글이라고 생각하는 천자문이 사실은 8글자로 이루어진 125문장을 일컫는다는 것을 그 때 알게 되었다.

운율을 맞춰 읽어보면 더욱 시처럼 느껴지고 지금 현실과는 좀 동떨어진 것을 다루고 있을지언정, 해가 뜨고 지며 계절이 바뀌는 등의 자연현상에서부터 우리가 품고 살아야 할 도덕, 변치 않는 진리 등을 담고 있다는 것도 함께.

 

[천자문으로 세상 보기]의 저자는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던 <설문해자> 식 한자 풀이에 그치지 않고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일본 학자 시라카와 시즈카의 <한자의 세계>를 참고하여 그가 풀어낸 새로운 갑골문 해석을 파자의 골격으로 삼았다.

상형자가 대부분인 한자는 갑골문으로 보면 좀 더 직관적으로 그 뜻을 파악할 수 있다.

<설문해자>식 한자 해석 뿐만 아니라 새로운 해석을 더하여 보면 한자가 더이상 어렵게 여겨지지 않을 것이다.

 

 

 

 

그저 누를 황, 이라고 뜻과 음을 외운 다음 한자를 한 번 써보는 것으로 기계적 암기에 그쳤던 지난날을 반성하게 된다.

이렇게 하나씩 뜯어 가며 뜻을 유추하는 과정을 거치면 더욱 재미있게 한자를 외울 수 있었을 것을.

'축고'라는 생소한 단어를 보며 예전의 문화를 배우는 것도 색다른 즐거움을 안겨 준다.

비를 내려 주기를 기원하면서 바친 희생을 보며 좀 잔인한 고대의 문화를 알아가기도 하고 철학의 흐름까지 파악하게 된다.

 

 

 

저자는 한자를 파자해서 해석하는 데 그치지 않고 문화에 대한 고찰까지 곁들인다.

이문을 얻어 그릇에 가득 채운다는 찰 영, 지치지 않고 물건을 채우려는 백화점 속 사람들의 모습을 아울러 설명하면서 과거와 현재를 나란히 비춰보게 한다.

 

 

한자의 주된 뜻에 관한 이야기 뿐 아니라,

천자문에서는 고모 고, 로 해석되는 글자에서 잠시 고에 초점을 맞추어 사마상여와 탁문군의 고사까지 연결해 주기도 한다.

상식이 풍부해지고 다양한 고전의 세계를 맛볼 수 있다.

 

 

[천자문]은 1,000개의 글자를 외우는 책이 아니다. 125개 문장에 심어져 있는 동양의 신화와 문명 그리고 역사의 이야기를 새겨야 한다. 천자문 안에는 우주의 이치와 인간의 도리가 다 들어 있다.

 

저자는 [천자문]을 다만 하나의 텍스트로 삼아 125개의 문장으로 해석하고 천 개의 글자에 자신의 생각을 섞은 재미있는 이야기들로 글을 꾸려 나갔다.

한자와 관련된 고사들이 툭툭 튀어나오기도 하고 우리 눈에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를 사유하게도 하며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게도 한다.

 

어린 시절 어렵고 힘들게 천자문을 접했던 나는

새롭게 천자문 속에 숨은 비의를 알게 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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