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 엔딩 노트
tvN [내게 남은 48시간] 제작팀 지음 / 북폴리오 / 2016년 12월
평점 :
품절


멋진 생의 종착역을 향하여 [해피 엔딩 노트]

 

 

 

40대를 서서히 걸으면서 이제 얼마큼 왔나, 허리 한 번 펴고 가끔 뒤를 돌아본다.

앞으로 가야 할 길도 가야 할 길이지만 지나온 날들을 곱씹어 보는 날도 꽤 된다.

그만큼 되짚어 볼 과거의 기억들이 많아졌다는 뜻일 게다.

 

건강 검진을 하고서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다는 말을 들었을 때, 조금 충격을 받았다.  

이제까지 무엇보다 자신하고 있던 '건강'이었기에 아찔해졌었다.

준비, 시작~ 하고서 뛰어오는 동안 내 건강 하나 챙기지 못하고 살았나 반성하고 후회했다.

이 정도면 괜찮겠지, 하는 무관심, 아직은 이런 불규칙한 생활리듬 정도는 받쳐주지 않을까 하는 안일함에 제동이 걸린 것이다.

병원에 작은 아이를 데리고 갔었는데

의사 선생님이 짐짓 무표정한 가운데 진지한 분위기를 지으며 아이에게 말씀하셨다.

"엄마한테 효도해야 한다. 너희들 키우느라 이렇게 몸이 망가진 거 아냐..."

하시기에 눈물이 핑 돌았다.

나 자신에게 건강관리를 못 했다 추궁하기 이전에 아이에게 넌지시 돌려 말하는 것이었는데

왠지 울컥했다.

아이들 위해 특별히 희생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내가 건강에 소홀한 것이 가족의 책임이 되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랴...

 

집에 돌아와서는 약을 꾸준히 먹고 운동을 꾸준히 하면서 식단 관리도 함께 하고 있다.

나날이 몸이 가뿐해지는 것을 느끼며 새해의 시작과 더불어 새로운 40대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중이다.

건강검진은 내게 "죽음"의 선고까지는 아니었으나 그에 버금가는 충격을 준 것임에는 틀림없다.

 

TVN <내게 남은 48시간>이라는 프로그램의 예고편을 보았다.

꽤 유명한 연예인을 주인공으로 해서 그들에게 만약 48시간이 남았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에 초점을 맞춘 프로그램인 것 같았다.

허투루 보아 넘겼었는데 막상 내 곁에 건강의 적신호가 켜지자 그 48시간의 의미가 확 와닿았다.

정말로 내가 어느날 갑자기 시한부 선고를 받는다면?

지금 받는 충격은 그저 가소로울 뿐이리라.

 

나의 과거와 현재가 한순간에 스쳐지나가면서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어떻게 마무리해야 할지에 집중하게 되겠지.

아니다. 버나드 쇼가 묘비명에 적었다는 한 줄처럼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가 되려나...

48시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그 시간 안에 나는 과연 무엇을 하게 될 것인가?

미리 연습을 시켜 주겠노라는 듯이

북폴리오의 [해피 엔딩 노트]는 삶에서 맞닥뜨리는 순간들을

따옴표, 쉼표, 느낌표, 마침표로 정리해서 적절한 질문을 던진다.

 

 

나는 누구일까?

가장 근원적이면서도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 아닌가.

심지어 글로 적으라면 몇 날 며칠, 아니 몇 십년을 머리 싸매고 고민해도 나 자신을 제대로 규정지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지금부터 찬찬히 생각해 보고 답을 찾으라는 의미로 제일 먼저 제시한 질문인 듯 싶다.

내게 아주 사적인 낱말들부터 떠올리기, 그것이 이루어질 거라는 상상으로 채워가는 버킷리스트, 나의 사적인 비밀번호...이런 것들이 형식적인 것으로 접근해서 내면의 나로 파고들게 만든다.

 

 

 

차근차근 따옴표, 쉼표, 느낌표를 지나가다 보면 마침내 만나게 되는 마침표에는

유언장 쓰기가 나온다.

 

당분간 아무에게도 읽히지 않기를 바라지만,

언젠가는 이 글이 당신의 마지막 목소리로 기억될 거예요.

너무 울적할 필요는 없습니다.

담담하고 솔직하게

마음을 남기면 되니까요. 

 

 

최절정을 향해 질러대고 뿜어대는 가수들의 고음의 향연이 머릿속에 메아리친다.

내 생의 끝에 가서는 어떤 말을 남기게 될까.

온 것처럼 조용히, 아무 것도 남기지 않고 가뿐하게 떠나리라.

마음은 그렇게 먹었지만 막상 생의 48시간을 남겨 두었을 때는 어떤 상황에 놓이게 될지 알 수 없다.

다만, 담담하게 그 순간을 떠올리면서

최대한 차분하게 임할 뿐이다.

머릿속 고음의 향연을 끌어내려서 저음역대의 고요하고 잔잔한 음악으로 바꾸어야겠다.

요동치는 마음의 파도는 나만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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