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품격 - 박종인의 땅의 역사
박종인 글.사진 / 상상출판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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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의 역사와 사람이 있는 기행 [여행의 품격]

 

 

 

참으로 단단하고 알찬 여행서 한 권을 만났다.

상상출판에서 나온 [여행의 품격]이 그것이다.

흔한 여행 가이드북도 아니고 여행지에서의 단순한 후일담 혹은 감성 가득 에세이도 아니다.

땅의 역사와 사람 사는 이야기가 가득 녹아 있어 여행의 품격을 몇 단계 훌쩍 높일 수 있는 기행문이다.

일단, 낯선 외국 어딘가가 아니라서 좋았다.

한반도, 어찌 보면 토끼 같기도 어찌 보면 호랑이 같기도 한 이 기묘한 땅에서 발 닿은 곳 몇 군데 없는데

너도나도 외국 나들이 간다고 함께 들떠 엉덩이 들썩거리던 것이 부끄럽게 느껴진다.

아직은 아이들이 어려 들썩들썩 어딘가로 떠나고 싶다 해도 쉽게 움직일 수 있는 형편이 아닌지라

여행서를 통해 여행의 '맛'을 슬쩍슬쩍 보곤 하는데 이 책은 정말로 제대로다.

이제껏 비행기를 타고 멀리로 날아가야만 제대로 된 '여행'이겠거니,

나를 버렸다가 다시 한가득 뭔가를 채워 돌아올 수 있겠거니 생각했던 것이  참 좁은 식견이었구나, 반성하게 된다.

 

"사람은 땅에서 태어나 땅에서 죽는다."

얼핏 당연한 말이지만

이 당연한 말 속에 깃든

우리 땅에 대한 오롯한 애정을 감지해야만 한다.

 

 

 

이 책의 목록을 보면 이 책의 특성이 한 눈에 보인다.

일단은 여행지가 국내이면서도 낯설다.

절이나 유명 관광지 위주의 여행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래된 도시 연산, 인제 마의태자 루트, 서천 신성리 갈대밭, 목포 다순구미, 은둔의 땅 진천 농다리, 세 사내의 꿈이 잠든 아산 등

여타 여행서에서 보지 못했던 곳들이 속속 눈에 띈다.

그 지방 토박이가 아니면 잘 찾아가지 않을 곳들, 그 곳에 살면서도 한 번 찾아가기 어려웠던 곳들이 아닐까 싶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한 번 보아 익숙하긴 하지만 더 깊이 있게 찾아내지 않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단양 온달산성" 부분을 짚어 본다.

온달산성의 성주라 불리는 "윤수경"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 버무려진 맛깔난 역사가 눈길을 끈다.

면서기로 시작해 온달산성의 비밀을 풀어낸 이라 별명이 온달성주 라지.

 

 

 

진단학회를 만든 사학자 이병도가 온달장군이 아차산에서 죽은 줄로 추리한 이래 모두 그리 알고 있었던 것을, '고졸' 윤수경은 온달산성 위치는 아차산이 아니라 단양이라는 논지의 논문을 출품하면서 세상을 뒤집어 놓는다.

고졸 면서기 말은 씨알이 먹히지 않는다는 말에 당장 대학교에 들어가 사학자가 된 그는 지금 온달 관광지에서 문화관광해설사로 일하고 있다.

온달의 흔적을 공식적으로 역사로 만든 윤수경의 이야기는 1500년 전 전쟁터에서 죽은 온달을 되살려내고, 그 역사가 기록된 땅 단양의  이름을 빛냈다.

 

 

 

모르고 지나갔으면 그저 돌들이 층층이 쌓여 있구나. 옛날 어느 곳에서 전투를 치렀던 곳이라지.

정도로 둘러보고 지나쳤을 그 곳을....

온달산성이라 이름짓고 사람들에게 알리는 역할을 했던 온달성주 윤수경의 이야기가 온달의 슬픈 전설 못지 않게 신기하다.

 

여행지의 역사와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끝나는 곳에 <여행수첩> 형식으로

간단한 정보가 실려 있다.

대개 그 지역의 볼거리와 광광정보, 맛집 등을 알려준다.

 

저자는 예전의 전설을 지닌 곳에 찾아가 현대의 전설을 다시 덧입히는 사람이 아닌가 싶다.

모든 사람이 사학자일 필요는 없지만, 여행길을 떠난 사람이라면 그 땅에 얽힌 이야기를 눈곱만치라도 알고 떠났으면 좋겠다고 한다.

이 책 속 여행지를 둘러 보면서 알고 있었지만 스쳐 보냈던 역사, 까맣게도 모르고 있던 역사들이 되살아 난다. 더불어 지금 현재 그 곳에서 지내며 역사의 향기를 흠뻑 입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덧붙이며 훈훈한 '세상살이'도 함께 이야기한다.

땅이 있는 곳에 사람이 있으니, 땅 이야기를 하면서 사람 이야기를 빼면 진정한 여행을 즐겼다 말하기 어렵다.

신에게는 아직 열 두 척의 배가 남아 있사옵니다, 라 하며 적들을 소탕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이순신 장군이 있었다면,

나에게는 아직 둘러볼 곳이 열 두 군데가 넘게 남아 있사옵니다, 라 말하며 쑥스럽게 우리나라의 여행지에 한 발 내딛으려는 '나'도 있다.

여행지를 둘러 볼 때면 사진을 찍으며 멋진 풍경만 남길 게 아니라, 땅의 역사와 사람 사는 이야기를 함께 품으리라는 소망 하나가 싹터 오른다.

여행의 품격, 제대로 높여 가며 다녀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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