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 번째 이야기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다이안 세터필드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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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옛날에 유령이 사는 저택에...[열세 번째 이야기]

 

습관적으로 책을 꺼내들고 습관적으로 쓰윽 훑는 일이 계속되면서

진짜 재미있는 진짜 '이야기'를 읽고 싶다는 욕망이 생긴다.

언제나 혼자 있는 시간, 좀 더 격렬하게 혼자 있고 싶은 욕망을 부르짖는  CF  속 유해진처럼...^^

어린 시절, 세상의 비밀이 드러나기 전의 혼곤한 시절에는 모든 동화책과 모든 만화책 심지어 백과사전에 깨알같이 심어진 글자들을 읽는 것만으로도 순수한 기쁨에 젖을 수 있었다.

내가 몰랐던 것들이 물 위에 떨어진 검은 먹처럼 선명하게 떠올랐고, 사소한 사건들의 이어짐만으로도 거대한 하나의 산맥과도 같은 이야기가 되었다.

나보다 앞서 세상을 살다 간 멋진 영웅들의 전기는 앞으로 훌륭한 어른이 되어야겠다는 약속을 스스로에게 하게 만들었고, 꼬부랑 글씨로 씌어진 영어의 휘어지는 발음조차 먼세상에의 동경을 품게 만들었다.

그랬던 순수한 영혼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인가..

수십 번의 봄,여름,가을,겨울을 지나고 나니 어린아이의 선명했던 새까만 눈동자는 시나브로 혼탁해져서  무턱대고 책읽기만 파고드는 어른이 되어 버렸다.   흰 것은 종이요, 까만 것은 글자라~를 읊조리며 이야기가 가져다 주는 희열을 고파하고만 있었다.

이 책은 내게 새로운 세상을 선물해 줄까?

무엇을 읽어도 좀처럼 입맛에 맞지 않았고, 뒷부분에 대한 궁금증도 사그라들었으며 덜그럭거리는 문장에 내내 불편했다.

그러다 마침내 내게 나타난 진짜 '이야기'

 

이 책은  두꺼워 쉽게 손이 가지 않지만 일단, 앞의 한 두장만 수월하게 넘기면

수완 좋고 입심 좋은 할머니가 풀어놓는 이야기 보따리 앞에 앉아서 다음, 또 다음을 기다리게 될 것이다.

 

옛날옛날에 유령이 사는 저택에...로 시작하는 이 옛날 이야기는

입만 열면 거짓말을 엮어내지만 너무나 그럴듯해서 전설적인 작가라 불리는 비다 윈터의  숨겨진 열세 번째 이야기를 담고 있다. <변형과 절망의 열세가지 이야기>라는 제목의 책은 원래 열세 편의 이야기가 실릴 예정이었겠지만 열두 편만 수록된 상태인 <변형과 절망의 이야기>로 제목이 바뀌어 나왔다고 한다. 고서점에서만 알아낼 수 있는 책의 역사다.

 

이야기를 솜씨 좋게 채록하는 사람은 비블리오마니아라면 누구나 부러워할 고서점 집 딸 마거릿 리이다.

열세 번째 이야기의 미스터리를 풀어낼 사람으로 왜 마거릿이 선택되었는지는 책을 읽다 보면 알게 된다. '쌍둥이'라는 공통점을 지녔기에 비다 윈터는 자신의 전기 작가로 마거릿을 선택했다.

하지만 '쌍둥이'라는 단어에 너무 깊이 빠져 있다 보면 저자가 쳐 놓은 함정에 제대로 걸려들게 될 것이다.

정신 바짝~ 차리고 읽으라는 힌트를 지금 남발한다 해도 쉽사리 그 함정에서 벗어날 순 없으리라!!

 

"옛날 옛날에, 유령이 사는 저택이 있었지!"

"옛날 옛날에, 쌍둥이가 있었어..."

-76

 

너무 자주 늑대가 나타났다고 소리치곤 했던 작가 비다 위터는 죽음을 앞두고 전기 작가 마거릿 리에게 진실을 말하려 한다.

앤젤필드에 살았던 쌍둥이 에멀린과 애덜린의 이야기는 이야기의 모든 요소를 충족시키고도 남는다.

앤젤필드는 저택이기도 하고 가족이기도 하다. 조지와 마틸드, 그들의 아이들인 찰리와 이사벨, 이사벨의 아이들인 에멀린과 애덜린.

유령의 이야기가 바야흐로 겹겹이 싸인 담장을 뚫고 세상 밖으로 나오려 한다.

 

나는 꼼짝없이 이야기에 말려들었음을 깨달았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들어야 하는 이야기의 핵심을 건드려버렸다. 그것은 사랑이었다. 또한 상실감이었다. 잃어버린 사랑이 아니라면 그 이름에 담긴 슬픔이 달리 무엇이겠는가?-82

 

<폭풍의 언덕>, <제인 에어>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이 책의 마법에 좀 더 쉽게 빠져들게 될 것이다.

그리고 모든 불행의 속에서 끝끝내 살아나는 '사랑' 하나를 발견하게 될 것이고

위대한 작가의 가슴 속에서 마침내 놓여난 진실 앞에 망연자실하게 될 것이다.

소설의 문장 하나하나가 고전적이면서도 매혹적으로 변주되어 온 몸 구석구석에 흘러든다.

마법의 절대반지의 찬란한 빛이 그 반지를 마주하는 이는 누구라도 자신의 포로로 만들어 버리고 말듯이,

[열 세번째 이야기]의 어느 한 페이지를 맞닥뜨리게 되는 자, 누구라도 호기심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진실에 대한 강렬한 열망, 그것 하나 때문이든, 쌍둥이의 업보를 진 이의 상실감에 대한 동조 때문이든, 그저 비다 윈터의 이야기 자체에 매혹당해서이든...

한 번 잡으면 그 끝을 볼 때까지 눈을 부릅뜨고 가슴을 내내 두근거리게 될 것이라는 것을 경고하는 바이다.

아낌 없이 별 다섯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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