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스 죽이기] 작가의 충격적인 데뷔작~[장난감 수리공]
아니야, 안돼~~
이런 전개를 기대하긴 했지만,
나도 모르게 내 안의 살육적인 본능을 힐긋 바라보며 부추기긴 했지만~
이건 너.무.하.잖.아.
40페이지 남짓의 짧은 글에서 벌어질 수 있는 가장 잔인한 이야기.
숨고르기를 할 여유도 없이 몰아치는 잔혹동화는 너무도 태연한 나레이션 앞에 더욱 기괴하고 공포스럽게 다가온다.
"그 말인즉슨"
나는 입안이 바짝 마르고 온몸에서 식은땀이 폭포수처럼 흘러나왔다.
"미치오를 산 채로 해부했다는 거야?"-38
낮에 늘 선글라스를 끼고 다니는 그녀로부터 기괴한 어린 시절의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무엇이든 고치는 장난감 수리공. 동네 아이들은 고장난 장난감이나 게임기는 무엇이든 그에게 가져다 주었다고 한다. 그는 수리할 것이 어느
정도 모여야 수리를 한다. 어린 동생을 업고 집으로 돌아가다 계단에서 굴렀다는 그녀는 동생 미치오가 움직이지 않자, 어린 마음에 동생을
"수리"해야겠다고 생각한다. 마침 망가진 장난감을 맡기러 가던 친구를 만나 장난감 수리공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뒤 그를 찾아간 그녀는 미치오를
맡긴다. <요그소토호스후!>라는 기괴한 주문과 함께 그녀는 속삭이듯 말했다.
"이걸 고쳐 줘! 원래대로, 움직이고, 말하고, 먹고, 마시고, 땀을 흘리고, 울고, 오줌 싸고, 똥 싸고, 보고, 듣고,
냄새를 맡고, 맛보고, 느끼고, 생각할 수 있게."-29
동생을 장난감 인형인 것처럼 "이것"이라고 말하며 '장난감 수리공'에게 맡겼다는, 해괴한 설정만으로도 심장이 멎을 것만 같은데, 그
이야기에 맞장구쳐주는 어른이 있다는 사실이 공포감을 조성한다.
죽어버린 미치오를 마치 장난감처럼 던져두었다가 마침내는 다른 장난감들과 같이 하나하나 모두 해체하는 장난감 수리공.
온몸에서 피가 다 빠져버린 인간처럼 기계적으로 행동하고, 기이한 주술을 읊조리는 공포스러운 장난감 수리공은 마침내 미치오를 제대로 수리해
낼까?
하나도 서두르는 기색 없이 미치오를 해체해 나가는 과정을 눈으로 좇고 있으면서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으아아~ 내 눈으로 이런 말도 안되는 상황을 읽어나가고 있을 줄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뒷이야기가 미칠 듯이 궁금해서, 너무나도 차분하게 이어져나가는 이야기의 전개에 나만 펄쩍 뛰고 흥분하는 것이 못내
열없어져서
아니, 아니, 아니다. 무엇보다 미치오가 되살아났는지가 궁금해져서 두눈 부릅뜨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후. 이것이 [앨리스 죽이기] 작가의 데뷔작이라니.
이 이야기는 나만의 19금이라 단정짓고 앞으로는 개방된 거실 서재에 나타나지 않도록 꽁꽁 숨겨둘 작정이다.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이 혹시나 "장난감"이라는 단어에 혹해서 꺼내 읽고
심장 정지되지 않도록.
이로써 내 비밀 책장에 놓일 책은 단 두 권.
첫 번째는 [살육에 이르는 병], 두 번째는 [장난감 수리공]이다.
짤막한 단편 <장난감 수리공> 외에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남자> 하나가 더 실려 있다.
길이는 <장난감 수리공> 보다 훨씬 길다.
이 이야기 또한 기괴하게 비틀린 인간의 기억, 혹은 정상적이지 않은 시간의 흐름을 소재로 하고 있어
소재의 독특함에 있어서라면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다.
대학원 시절, '데고나'라는 여성을 동시에 사랑하게 된 두 남자.
한 남자와 사귄 뒤 다른 남자에게 가버린 그녀에게 두 남자가 누구를 진짜 사랑하는지 답을 달라고 하자,
여자는 역에서 만나자는 말을 남긴다.
헐레벌떡 시간에 맞춰 역에 도착한 두 남자 앞에서 그녀는 기차에 치어 갈가리 찢긴 살덩어리의 모습으로 기다리고 있다.
그 때부터 두 남자는 '데고나'의 기억에 사로잡혀 허황된 망상을 꿈꾸기 시작하는데...
의학과 공학 쪽으로 진로를 정한 그들의 공동 목표는 '데고나'를 되살려내거나 그들이 직접 '데고나'를 만나러 가는 것이다.
시간의 기이한 흐름을 물리학적으로 재해석한 데다 의학적 기계의 힘을 빌어 뇌 속 장치 하나를 건드렸을 뿐인데...그들의 인생은 악몽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데고나'를 좇기로 결정한 것이 과연 그들의 행복에 도움이 되는 것이었을까?
시간의 띠에 갇혀버린 두 남자의 가혹한 인생이 지켜보는
이의 공포를 자극한다.
원초적인 공포보다는 한 번의 생각을 거쳐 정제된 공포를 느끼게 하는 [장난감 수리공]!
차분하고 논리정연하게 따져드는 그 어조에 기 눌리지 말고 끝까지 따라 읽어 보라.
짜릿한 공포가 곧이어 온몸에 전해질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