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버스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1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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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되감아 본다. 제대로 몰랐던 그 사람을...[리버스]

 

 

 

깊고 진한 갈색의, 광택 나는 표면을 들여다보면 왠지 마음이 차분해집니다.

때에 따라 진하게도, 옅게도 맡을 수 있는 향은 신기하게도 의도치 않은  사색을 부르지요. 

커피는 맛이 아니라 향이라는 말, 이제는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차분하고도 신중하게 원두를 내려 정신이 번쩍 드는 맛의 진한 커피 한 잔을 곁들여가며[리버스]를  읽으려고 했지만 어쩌나...

커피잔이 뒤집어져 있는 표지의 주술에 걸리고 만 탓인지 잔을 바로 놓고 커피를 따른 뒤 홀짝일 기분이 들지 않네요.

뒤집기, 되짚어보기...

한 생명이 지나 온 궤적을 커피잔 뒤집듯 쉽게 바로놓아서는 안 될 것 같은 경건한 기분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어둡고 묵직한 공기가 내리누르는 가운데 새하얀 커피잔은 많은 것을 말하고 있는 듯하네요.

 

미나토 가나에의 [리버스]는 작가 특유의 '고백체'가 특히 빛을 발하는 소설입니다.

아 참, 여자가 아니라 남자의 나레이션이 주를 이룬다는 점에서 이제까지의 작품과 달라 더 그렇게 느껴지는 걸까요?

자기주장 뚜렷하지 않고 어디에나 묻혀 가기를 좋아하는 남자 후카세가 전체 내용을 이끌어가는 나레이터입니다.

 

 

화려함과 수수함 둘로 나눈다면 망설임 없이 수수함 쪽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는 후카세는 대학을 졸업한 뒤 '니시다 사무기 주식회사'에 취직해 영업사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사무기를 다루는 덕분에 교사가 된 동창 아사미와 자주 만나게 되죠. 다들 취직활동을 할 때부터 교사가 될 거라고 확실히 말했던 아사미를 만날 때마다 자꾸 작아지는 후카세입니다, 별로 내세울 것 없다는 생각에 누구를 만나도 열등감을 내비치는 소심한 그이지만, 커피에 있어서는 얘기가 달라집니다. 맛있는 원두를 내려 커피를 주위 사람들에게 대접할 때만큼은 '중심'에 있다, 라는 기분이 들 정도입니다. 만난 지 얼마 안 된 여자친구 미호코도 단골인 '클로버 커피'가 인연이 되어 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미호코가 내민 한 장의 종이로 그 평범한 일상에 균열이 생기게 됩니다.

 

'후카세 가즈히사는 살인자다.'

 

종이를 받아든 순간 후카세의 뇌리를 스치는 단어들, 친구, 동창회, 팝송, 비, 커피, 벌꿀...

미호코와의 행복을 깰 수 없다는 생각에, 후카세는 자신의 과거를 사실대로 털어놓기 시작합니다.

 

커피를 내린다.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

후회라는 어둠 속에 스며드는 단 한 줄기의 빛.-59

 

모두 다섯 명이 떠난 여행에서 히로사와가 자동차와 함께 절벽에서 굴러 떨어져 죽은 사고가 일어났던  

삼 년 전 여름.

중간에 참가한 무라이를 데리러 가야하는데 운전면허가 없는 후카세는 제외, 나머지 셋은 술을 약간씩 마셔 서로 미루던 차에  히로사와가 자진해서 나갔다가 사고를 당한 일을 떠올립니다.

친구가 술을 마셨다는 것도, 운전이 서툰 것도, 날씨가 나쁜 것도, 길이 험한 것도 다 알면서 그냥 보낸 나머지 친구들은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고 있었는데..

후카세의 고백을 들은 미호코는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떠납니다.

후카세를 겨냥했던 종이는 나머지 세 친구에게도 똑같은 메시지를 전하고 다니하라는 선로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합니다.

이 일을 계기로 후카세는 메시지를 남긴 범인이 누군지를 찾아야겠다며 히로사와의 고향집을 찾은 김에, 히로사와의 인생을 거슬러올라가 보기로 합니다.

차근차근 거스르는 길에 맞닥뜨린 히로사와의 부모님, 친구들, 그리고 뜻밖의 얼굴들.

 

한 사람의 친구를 속속들이 알아챈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특히나 소심하고 열등감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무엇보다 스스로에게 침잠한 나머지 주위를 둘러보는 데 소홀하기 쉽습니다.

저 역시 이 이야기에서 후카세의 경우에 깊이 공감하고 몰입하게 되었는데요.

오렌지색이나 파,노랑, 보라 등 사람마다 자신만의 색깔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던 히로사와의 동창은 특히 왕따 당하는 친구들에게 깊은 관심을 표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도움을 주던 히로사와를 '투명한 색'의 사람이었다고 회상합니다.

하루키의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에서도 색깔로 인물들을 설정했던 것이 떠오르네요.

'히로사와는 벌꿀을 좋아했다.

히로사와는 메밀을 싫어했고 알레르기가 있었다.

히로사와는 해외 여행을 가고 싶어했다.

히로사와는 초등학교 시절 야구부 활동을 했다................'

후카세가 히로사와의 삶을 거스르며 알아낸 것을 하나씩 기록한 커피색 노트에는 저런 문장들이 하나둘식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하겠지요.

언제가 되어야 히로사와라는, 안타까운 죽음을 당한 그 청년의 인생이 온전히 드러나게 될까요.

자신의 일밖에 신경쓰지 못하고 스스로를 너무 측은하게 여긴 나머지 가장 친했던 친구를 쉽게 놓아버린 후카세는, 노트를 쓰면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겠지요.

'히로사와를 죽인 건...나였나.'-299

그 물음에 대한 답도 찾을 수 있게 되겠지요.

 

 

 

 

[리버스]에서 후카세가 히로사와의 삶을 되짚어 건너는 과정은 저 뒤집어진 잔을 바로 놓고 한 방울, 두 방울 똑, 또옥똑 떨어지는 커피를 채우는 기다림과 비슷할까요.

마지막 커피 한 방울이 똑 떨어져 찰랑이는 표면이 차분해질 즈음에는...

히로사와의 그 마음을 오롯이 이해할 수 있을까요.

 

잔인한 반전이나 숨이 콱 막히는 억울한 사건은 없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나토 가나에의 [리버스]를 [고백] 다음 가는 이야기로 꼽고 싶습니다.

음...[꽃사슬]은 좀 결이 다른 이야기니까 세 번째로 올려둘까요?^^

엄청난 이야기의 쓰나미를 몰고온 작품 [고백]이 미나토 가나에의 대표작이라는 사실엔 변함이 없지만

저는 [리버스] 같은 커피향 가득한 이야기도 참 마음에 드네요.

이번에는 후카세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입장이라 커피 한 잔 놓고 읽을 마음의 여유가 없었지만(사실은 작가가 그려놓은 길을 따라 잰걸음으로 걸어가야해서 곁길이 눈에 보이지 않았음~)

다음에 읽을 때는 따뜻하게 갓 내린 커피 한 잔 곁에 두고 그 향을 음미하면서 읽어야겠어요.

 

커피 한 모금에 명자, 커피 한 모금에 은실이, 또 커피 한 모금에 선희, 미선이...

친구들을 떠올리면서 내 친구들과 나와의 소중한 인연이 이어지고 있음을 감사할 수 있겠네요.

소중한 건 모두 잊고 산 건 아니었나, 싶은 찰나에 [리버스]를 만나

애틋한 그들과의 이야기를 떠올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스포는 아니지만,

마음의 준비 미리 하시라고...

마지막에 울컥 할 수 있으니 주의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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