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들의 탐정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9
하라 료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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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들아, 과감히 건너라! 사와자키가 지켜보고 있다.[천사들의 탐정]

 

날개 없는 천사들에게.

 

10대를 날개 없는 천사들이라 부르는 하라 료. 아니, 사립탐정 사와자키의 10대가 문득 궁금해진다.

어느 틈엔가 나이를 먹었고, 한층 음울하고 비극적인 분위기를 풍기며 어두운 뒷골목을 배회하는 사와자키 또한 지울 길 없는 과거의 이력을 갖고 있는 걸까.

탐정 사와자키 시리즈의 유일한 단편집인 이 책에는 아슬아슬하고 힘겹게 현재를 버텨내고 있는 10대들이 등장한다. 그것 때문일까. 이미 [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와 [안녕, 긴 잠이여] 등을 통해 원숙한 탐정의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는 사와자키의 10대를 살금살금 캐내고 싶어지는 것은.

장편에서 가끔씩 등장했던 사와자키와 와타나베의 관계가 확실하게 밝혀지고 드러난 것은 이 책을 엮으며 새로 쓴 작품 <탐정을 지망하는 남자>를 통해서다.

직업으로서의 탐정에 대해 고민하는 사와자키의 모습이 보여 흥미롭다.

 

"왜 탐정이 되면 안 되는 거죠?"

"왜 탐정이 되고 싶은 거냐?"

"그건....팔 년 전에 아저씨와 구사나기 아저씨가 그 폭력조직 사무실에서 저를 구해낸 것처럼, 그러니까 도움이 되고 사람 목숨을 구하는, 그런 일을 하고 싶어요.(...)"-329

 

아직 솜털이 가시지 않은 파릇파릇한 청년이 사와자키를 찾아와 탐정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알고 보니 그 청년은 사와자키와 사건으로 이미 만난 적이 있는 사이다. 청년의 순진무구한 말에 사와자키는 잠깐 감동했다고 했다.

이런..아저씨. 겉으로는 딱딱하고 빡빡하게 굴면서 마음 속은 완전 여린 구석이 있는 사람이었어.

후훗. 혼자 웃음을 짓기가 무섭게 사와자키는 작고 가벼운 감동에서 재빨리 발을 빼낸다. 의뢰인의 돈을 받고서야 비로소 움직이는 것이 탐정이라며. 탐정은 그냥 직업일 뿐이라고 가시를 바짝 세운다. 뭔가 수상하고 야비하고 하찮은, 그런 직업.

원래 형사였던 옛 파트너 와타나베의 이야기는 여기서 짠~ 하고 등장한다.

자신이 탐정이 되기까지의 일을 이제는 이야기하고 싶다며 살짝 장벽을 내리는 사와자키의 모습에서, 이제는 꽤 마음이 약해졌구려~ 하고 추임새를 넣어주고 싶어진다.

탐정이 되겠다는 결심 같은 건 한 적이 없음에도 어쩔 수 없이 탐정으로 우뚝 서서 살아가는 사와자키를 보며 그를 찾아온 청년은 어떤 결론을 내리고 돌아갔을까.

 

사와자키를 찾아와 탐정이 되고 싶다고 말한 청년이 사와자키의 어떤 점에 이끌려 탐정이 되기로 결심한 것인지는...

[천사들의 탐정]에 실린 6편의 단편을 죽 읽어보면 안다.

한없이 무뚝뚝하고 정 없이 굴다가도 뭔가 사연이 있어 그를 찾아오거나 그에게 전화를 걸어온 사람들의 일에는 무심한 척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을.

비록 12세 미만의 어린 아이가 장난처럼 찾아와 깜찍하게 자신을 속이고 의뢰를 맡겼을 경우라도, 그 거짓 없는 표정에 꼼짝 없이 넘어가고 만다는 것을.

어쩌다, 어떤 경로를 통해 사와자키와 인연이 된 사람들인지는 몰라도 사와자키를 찾아온 이들은 글쎄...자신의 삶의 어느 한 부분이 완전히 어둠 속으로 사그라들지 않고 약간의 빛이라도 비춰지는 곳으로 옮겨올 수 있는 것은 사와자키 덕이라는 것을 감사해야 한다.

 

비에 젖은 짙은 빨강색 운동복을 입고, 어린이용 노란 우산을 든 소년이 어떤 여자를 경호해달라는 의뢰를 한다.

엄마의 옛 남자에게 협박 전화를 거는 소년이 있다. 여섯 살 난 딸이 뺑소니 당한 것이 자신의 옛 여인이 낳은 아들의 짓이 아닌가 의심하는 한국인 스파이.

캐딜락 '엘도라도'를 타고 온 의뢰인이 자신의 딸을 조사해 달라며 찾아온다. 딸은 섹스중독 아버지를 미행하고 있었다...

쌀쌀한 날 밤에 열여섯 살 소녀 가수가 자살하기 직전 잘못 전화한 곳이 하필 사와자키의 탐정 사무소라니. 의뢰인이 없어도 사와자키는 조사에 나선다.

 

어쨌거나 사와자키의 손이 닿으면 그가 대충 미리 짐작했건, 뒤통수를 맞건 사건은 해결되고야 만다.

10대의 날개 없는 천사들이 어지간하면 사건에 휘말려들지 않기를 원하건만 어른들의 세계에서만 "악의"가 번뜩이는 것은 아니다.

 

소년은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거짓이 없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어른이 모두 사악하지는 않듯 어린이라고 다 정직하다고는 할 수 없다. -16

 

사와자키는 저렇게 철벽같은 방어막을 쳐 놓지만 필터 없는 독한 담배를 즐겨 피는 그라도 어쩔 수 없이 흐물흐물해지는 부분이 있는가 보았다.

힘겨운 한 시절을 건너는 10대들을 바라보는 사와자키. 그의 마음 한 구석에는 아마 뜨거운 보호본능이 꿈틀거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누구의 사연이든 소중히 다루고 최선을 다해 해결하려는 모습이 꽁꽁 싸매고 싸매도 보이는 걸 어떡하라고.

이 봐요, 아저씨~ 티 다 나거든요. ^^

거칠고 고독한 외모에서 무뚝뚝함이 뚝뚝 묻어나지만 10대들을 쓰담쓰담 어루만지는 그 손길만은 한없이 부드러우리라는 것을...간파당하셨습니다!

 

의뢰인을 대신해 하얀 꽃 한 송이를 도로변에 무심한 듯 툭 던져주고

쌀쌀했던 날 밤에 잘못 전화를 걸어왔던 소녀는 자살 같은 것 하지 않으리라는 직감을 발동시킬 줄 알고

캐딜락 '엘도라도'를 타고 오는 의뢰인은 사절인 사와자키.

 

그래, 너. 그래 바로 너.

아름다워. 사랑스러워~~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는 걸 보여준 진짜 사나이. 사와자키를 소리 높여 불러보고 싶다.

<강남 스타일>에 맞춰, 한바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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