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인 1
최지영 지음 / arte(아르테)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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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하이랜더[고지인 1]

 

고지인이라는 낯설기 그지없는 말, 이것은 도대체 무엇인고?

예수가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 위에 못 박혔을 때, 예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찔렀던 한 병사는 예수의 몸에서 쏟아져 내린 선혈을 온몸에 뒤집어쓴 채 여호와의 저주를 받고 말았다고 한다.

끊임없이 인간의 피를 갈구해야 하는 '갈증'에 시달리지만 영원불사, 불사불사의 운명 또한 갖게 되었다. 병사가 피를 빤 사람들은 또다시 흡혈인이 되어 무리를 이루었다. 흡혈인들은 로마의 추적을 따돌리고 하일랜드에 정착, 영원히 죽지 않는 열혈 전사 '하일랜더', 이른바 '고지인'으로 불리게 되었다.

 

닥터 이방인이라는 드라마의 원작소설 <북의>를 쓴 작가 최지영의 독특한 소설이다.

스토리텔링에 있어 탁월한 재능을 뽐내는 작가이니만큼 이야기의 전개가 속도감 있고

끝까지 흥미를 잃지 않도록 끌고 간다.

드물지 않게 쓰여져 온 '흡혈귀'라는 소재를 쓰고 있지만

조선 효종 대의 북벌이라는 시대적 흐름 앞에 정치적으로 움직이는 여러 인물군 중

복수를 꿈꾸는 자, 고지인의 저주를 벗으려는 자의 대치가 두드러져 남성적 매력을 물씬 풍긴다.

간간이 로맨스라 불리는 것이 싹트기도 해 적절히 균형을 이루는 점도 눈여겨 볼 만하다.

 

제주도 산방산 앞, 용머리해안을 찾아가면 입구에 커다란 배 모형이 하나 전시되어 있다.

하멜 상선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지리, 풍속, 정치, 군사, 교육 등을 유럽에 소개한 최초의 문헌인 [하멜표류기]라는 기행문을 발표했던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소속 선원 하멜.

그가 소설 [고지인]의 첫머리를 장식한다.

하멜이 몸을 실은 상선 스페르웨르 호는 순항 중이었지만 선원들의 의문사로 결국에는 배를 버리고 육지에 다다른다.

타이완 해상에서 조난당한 러시아 늙은이 한 명을 구조한 뒤로 목에 짐승에게 물린 자국이 있고, 핏기가 사라진 시신이 하나 둘 늘어가는 것이 이상하다 했다.

하멜 무리가 제주에 표착한 뒤 일련의 의문사 사건이 벌어지자 한양에서는 염일규라는 이를 종사관으로 파견했다. 염일규는 하나같이 목을 물려 죽은 이들의 시신을 살피다 이고르의 존재를 탐문하기에 이르는데, 이고르와 맞닥뜨린 순간, 하릴없이 날카롭고 긴 송곳니에 목덜미를 물리고 만다. 스스로를 미끼 삼아 이고르를 대면하여 처치하리라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왜인 사무라이 출신의 사나다가 나타나 이고르를 처치한다.

 

왜인이 놈의 몸뚱이를 밟아 누른 뒤 자신의 일본도를 찔러 심장을 관통시켰다. 순간 몸통에 난 구멍을 통해 오색찬란한 영기가 회오리처럼 솟구쳐 올랐다. 그러자 왜인은 놈의 영기를 심호흡하듯 빨아들였다. -106

 

사나다로부터 '고지인'의 내력을 전해 듣고, 자신도 이제는 고지인이 되었음을 깨닫게 된 염일규는 자신의 아이를 잉태한 관노 아리와 함께 도망쳐 사는 삶을 택한다.

하지만 사나다와 염일규의 영기를 노리고 쫓아오는 이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강무웅.

소현세자의 빈인 강빈과 배다른 남매간이었던 그는 멸문지화의 화에서 겨우 빠져나와 목숨만을 겨우 건졌다. 이후 '흑도'라는 이름으로 살아온 그는 봉림세자, 즉 효종에게 복수하겠다는 일념으로 강해지기 위해 이고르를 찾아가 스스로 '고지인'이 되었다.

흑도는 아리를 납치하여 일규가 찾아오기를 기다린다.

일규의 아이를 임신한 채 흑도에게 끌려온 아리. 아리는 따지자면 소현세자의 죽음에 관여한 어의의 딸이므로 자신의 원수가 되지만 지금은 한낱 관노로 전락한 모습을 보며 마음이 흔들린다.

 

한편 흑도와 대적하기 위해서 사나다는 자신의 영기를 일규에게 내어주고 일규는 잠시 혼절한 틈에 관군에게 끌려가 참형을 당할 뻔 했으나 효종의 사면으로 목숨을 구한다.

 

북벌을 주장하는 임금 효종, 임금을 마땅찮아 하는 서인 무리, 자중지란으로 걸어들어가는 조선을 반가워하며 두고 보는 청의 도르곤.

나라가 들썩들썩 움직이는 사이 '아리'를 사이에 둔 일규와 흑도의 싸움 또한 기대되는 바이다.

다급하게 흘러가는 정치세력들의 큰 물살 앞에 한 남자는 고지인의 저주를 벗으려 싸우고

또 한 남자는 원수를 갚기 위해 고지인이 되기를 자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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