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벌
기시 유스케 지음, 이선희 옮김 / 창해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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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벌보다 무서운 인간의 악의 [말벌]

 

손안에 쏙 들어오는 작은 크기의 책이라 빨리 읽은 것도 있지만 뒤의 결말을 빨리 보고 싶어서 속도를 낸 탓도 열 중 일곱은 차지한다.

[말벌]은 속도감 읽게 읽히고 뒷여운도 강하다.

 

눈 내리는 산 속의 산장에 갇힌 것은 주인공인데도 내가 오히려 숨죽이게 되고 주변의 소리에 신경 쓰게 되고 더불어 주인공의 강박적 신경증에 반응하게 된다.

이렇게 독자를 분위기에 한껏 취하게 하고 독특한 스릴감에 몸서리치게 만드는 작가가 몇이나 될까.

초반부터 남다른 주인공의 일거수일투족에 즉각 반응하면서 저절로 책 속 내용에 일체감을 느낀다.

 

주인공은 안자이 도모야. 음울한 미스터리나 서스펜스를 쓰는 소설가다.

통나무로 지은 산장에 레인지로버를 끌고 왔는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순간적으로 여기가 어딘지 생각나지 않다가 잠시 후 상황파악이 된다.

 

목욕가운에 와인의 얼룩이 져 있는 걸 보니 어제 와인을 마셨는데,,,신작 <어둠의 여인>의 5쇄를 축하하기 위해 건배했었지. 아내 유메코가 지하실의 와인셀러에 가서 좋은 와인을 골라오겠다고 한 것이 기억난다. 그런데 아내는 지금 어디에 간 것일까? 평소 섬세하고 강박적 성격을 지닌 아내가 가운을 아무렇게나 벗어 두고 간 것이 이상하다.

그 때 안자이의 귀를 자극하는 작은 소리들. 안자이는 즉각 신경을 곤두세우며 긴장을 한다. 벌 독 알레르기 때문에 처방을 받은 뒤 의사가 아나필락시스 쇼크로 호흡 곤란에 빠질 위험이 있다며 벌에 쏘이지 않게 주의하라고 당부한 것이 기억나서였다.

 

헬맷처럼 생긴 오렌지색 머리, 치켜 올라간 겹눈과 미간에 있는 세 개의 홑눈,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며 공기의 냄새를 확인하듯 더듬이를 미세하게 움직이고 있다. -229

 

아내가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주변에서 노랑말벌이 날아다니는 통에 혼비백산한 주인공은 머릿속의 혼란을 정리해보려 한다. 분명 아내 유메코가 동창이라던가 하는 미사와와 바람을 피우던 중 걸리적거리는 나를 처치하려는 것이다, 평소 벌에 민감한 내 약점을 잡아 벌에 쏘여 죽은 것으로 위장하려고 산장에 벌을 둔 것이다, 차 열쇠는 사라지고 외부와 연락도 두절되었으며 도움을 줄 사람도 언제 올지 모르니 나는 여기서 죽어갈 것이다...

 

산장에 찾아와 주인공에게 도움을 줄 수도 있었을 편집자는 지하실 계단에서 미끄러져 죽은 것 같고, 뒤이어 차를 타고 도착한 아내와 미사와는 지하실에 가두어버렸다.

자신이 아내의 계략에 빠졌다는 위험한 상상 덕에 세 사람의 목숨을 위험에 빠지게 만든 주인공은 결국, 방심한 사이 벌의 침에 찔려 쇼크를 일으킨다.

숨을 쉬어야 해, 기도를 확보해야해...주변에 있던 볼펜으로 스스로의 목을 찌른다.

그 때 들이닥친 경찰과 아내...아내? 유메코는 아까 지하실에 가두지 않았던가?

 

수수께끼 풀이는 지금부터...

 

1인칭 주인공 시점이어서 얻을 수 있었던 기막힌 반전에 놀랄 준비를 하시라.

말벌은 그냥 보아도 충분히 공포의 대상이지만 알레르기로 쇼크를 일으킬 사람이라면 목숨과 직결된 만큼 생명의 위협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사람의 악의는 말벌까지도 교묘히 이용할 만큼 냄새나고 추악하다.

누가 무엇을 위해 말벌을 이용했는가는 차치하고, 말벌보다 무서운 인간의 악의를 이용해서 사람들 마음 속 깊숙이 숨겨진 더러운 욕망을 이끌어내는 작가의 솜씨가 대단하다.

더불어 사회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마음 속에 울분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그림자같은 사람과 또다른 <말벌>의 접점 또한 소름끼치는 서스펜스를 선사한다.

끝까지 읽고 나서 프롤로그로 돌아가 보면 말벌의 형상을 한 범인의 모습이 확실하게 드러난다.

 

 

모든 선의는 짓밟히고, 모든 선인은 질서를 지키고, 사회는 견고하다고 믿는 사람들은 불행의 밑바닥으로 떨어진다. 희망은 절망으로 새카맣게 덧칠된다. 거대한 악과 악의 싸움 앞에서 깨끗하고 올바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잡초처럼 뽑힐 운명에 처해 있으니까. -220

 

음울하고 무거운 미스터리을 쓰는 주인공, 작가 안자이처럼 기시 유스케의 작품도 두 번 들여다보기 싫을 정도로 어둡지만 책을 덮으며 그래도 희망 하나 잡아 보려 애쓴다. 나는 살아나가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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