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추억의 시간을 수리합니다 3]
'추억의 시 수리합니다'
허름하고 척 봐도 오래된 시계방의 쇼윈도에 놓인 동으로 된 금속판.
아무리 봐도 시계에서 '계'자가 떨어져 나가 수리가 필요한 듯 싶지만, 또 묘하게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는 간판이다.
한때는 북적였던 쓰쿠모 신사 거리. 지금은 셔터 내려진 거리로 변한 적막한 장소이지만 이 거리의 곳곳에는 개성 있는 가게가 간혹 남아
있다.
할아버지의 시계방을 물려받아 시계를 수리해주고 있는 슈지, 헤어살롱 유이에서 일하는 미용사 아카리, 쓰쿠모 신사의 다이치.
이들을 중심으로 사람들의 추억은 방울방울 솟아났다가 툭 터지고 그 터진 틈에서 한때 괴로웠던 상처들이 저마다의 사연을 퍼뜨리곤 한다.
[추억의 시간을 수리합니다 3]권은 시리즈로 제작되었지만 앞의 1,2권을 읽지 않아도 전혀 내용을 이해하는 데 지장이 없을 정도로
독립적으로 읽을 수 있다.
다만 슈지와 아카리 사이에 싹튼 사랑은 점점 더 진행형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만 염두에 두면 된다.
모두 4개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첫번째 [별을 새긴 회중시계]는 별을 사랑한 남자와 여자의 안타까운 어긋남을 이야기하고 있다.
슈지의 초등학교 동창회에서 만난 친구가 어린 시절 고쳐달라고 했던 회중시계의 기억 위에, 다이치가 있는 신사의 새전함에 십자가 장식이
달린 은으로 된 체인을 버리고 가려 했던 여자의 추억이 겹쳐진다.
태엽을 감아 재깍재깍 경쾌하게 다시 움직이도록 고쳐주었던 회중시계는 이제 다시 슈지의 손에 놓여진 채 인연을 기다리고 있다.
"시계가 정말 아무 말도 못하는지 확인해볼래? 그게 태어난 곳에서 말이야."-58
신기하게도 시계 하나가 슈지의 손에 들어왔을 뿐인데, 셜록 홈스가 소매 끝을 보고 그 사람의 인생 전반을 다 추리해 내는 것처럼, 슈지도
거기에 얽힌 사연을 본 듯이 그려내곤 한다.
그리고 이제는 슈지의 연인인 아카리와 신사의 다이치까지 그 능력에 동참하여 사람들의 얽혀 있는 추억의 실타래를 풀어주려 힘을 모은다.
소심하고 내성적인 사람들이 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자신만의 별을 찾으려 노력하는 것이 그려져 읽는 내내 마음이 뭉클뭉클해졌던 이야기였다.
슈지가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골동품 가게 딸 민 이쿠미가 시계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아카리는 그것이 신경쓰인다. 어쨌거나 슈지와는 사귀는 사이인데 아름답고 사귐성 좋은 여자가 슈지와 함께 일하고 있으니...이렇게 슈지와
아카리의 알콩달콩 사랑에 잠시 방해꾼이 나타나면서 여지껏 평화롭고 순조로와 보였던 슈지와 아카리의 사이는 좀 더 단단해질 것으로
보이는데...
뒷부분의 이야기로 갈수록 '가족'이라는 테마가 두드려져 보인다.
복잡한 가정 사정을 슈지에게 내보이기 싫어 거짓말 했던 아카리는 시계 하나만 보고도 척 하고 알아맞히는 속 깊은 슈지이기에 '아버지'의
이야기를 더이상 속일 수 없게 되었다.
아카리와 동명의 딸을 찾아나선 낯선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이야기를 캐다 보니 그 가족의 이야기는 현재 아카리의 아픔과 어쩌면 궤를 같이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마법과도 같은 환상의 세계가 잠시 펼쳐지는가 싶다가도 이내 현실에 안착하고야 마는 기묘한 환상서술 방식에 이 소설의 묘미가 있는 듯하다.
이 세상에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을 듯한 시계방에서 추억의 시를 수리해주는 슈지의 존재 자체가 환상적이기 그지없다.
재깍재깍 태엽을 감아주어야 돌아가는 시계처럼 우리의 인생도, 가끔씩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것 같다.
환상적인 마법사 슈지의 세심한 추리와 도움으로 이렇게 한번씩 쉬어가면서 인생에 윤활유를 칙칙~ 뿌려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