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뿌리친 정치사상 - 정치교육의 새로운 방법을 찾다
박종성 지음 / 인간사랑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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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교육의 새로운 방법을 찾다[영화가 뿌리친 정치사상]

 

영화가 정치사상을 뿌리쳤다...

다른 말로 영화에 있어서 정치사상을 담으려는 시도가 극히 적다는 말인 것 같다.

영화는 돈벌이가 될 만한 인물 위주로 골라 필름에 담으려 해 왔고 그리하여 영화에서 정치사상을 찾아보기가 힘들어졌다고도 읽힌다.

'히로히토'나 '히틀러', '체 게바라'는 다룰 망정, '레닌'이나 '루소'를 다루지는 않았다는 것이 눈에 보이는 확연한 반증이 되려나.

영화의 주류가 정치사상이나 사상적 인물을 다루는 일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것을 저자는 내내 안타까워한다.

영화의 다양성에 있어서 불만족스럽기도 하거니와 새로운 영화를 만들려는 시도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못내 아쉽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저자는 정치사상에 대한 새로운 영화 제작과 사회과학적 탐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더하여 정치교육의 새로운 방법을 찾고 영화의 사회적 지평 확장을 위해서도 필요한 작업이라면서 말이다.

 

 

영화에 왜 정치가 들어있지 않느냐며 의문을 표했던 나인데 저자가 말하는 것은 사극이나 조폭들의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정치'를 말함이 아닌 듯 하다.

정치가 아닌 정치사상, 즉 거시적 이데올로기인 '전체주의'와 '자본주의', '사회주의'를 이름이다.

그 위에 하나 더, 이슬람의 '원리주의'까지.

 

영화와 정치사상을 한데 엮어보려는 저자의 말은 힘이 있다.

 

영화가 뿌리친다고 사라질 정치사상이 아니듯, 정치사상이 밀친다고 멀리 있기만 할 영화도 아니다. 작지만 큰 게 정치영화다. 만질 수는 없지만 아주 가까이서 시나브로 우리를 건드리는 게 정치사상이다. -머리글 중.

 

영화를 통해서 전체주의와 사회주의, 이슬람 원리주의와 과격한 폭력미학, 그리고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는 자본주의를 살펴보면서 저자는 영화가 여전히 효과적인 가르침의 도구이며 시대를 같이 하는 이들을 달래는 수단이라 말한다.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주장이 논쟁의 불씨를 당겼고 찬반 진영으로 하여금 격렬한 다툼을 하게 한 것도 이제는 역사가 되었지만 영화에 담긴 사상은 오래도록 남아 있다.

'악의 평범성'을 책으로 읽는 것과 영화로 경험하는 것이 다르다는 것, 평범성의 비범함과 일상성의 정치가 관객을 물들인다는 것 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필름 소셜리즘>은 역사와 사회를 설명하는 적실성이 있어 오늘을 다시 보게 만드는 회고와 반성의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정치적 효과를 가진다.

 

이제 다시 늙은 마르크스를 소환하거나 주름진 레닌을 호출하지 않고도 사회주의 혁명미학을 설파하려면 정교한 설명틀과 유인의 장치는 필수이리라. 하지만 이제 영화가 다시 사회주의를 부르짖기 위해 필요한 건 화염병도 짱돌도 아니었다. 한 편의, 아니 몇 편이라도 기꺼이 써내려갈 것만 같은 시인의 열정이 격정의 구호를 대신하고 경찰서와 감옥을 불태우던 젊은 피를 가라앉힐 잔잔한 기운을 동원할 수 있었던 건 노련한 자기성찰이었다. 영화로 사상을 말하려는 몇 안 되는 감독의 지혜와 건설적 고집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다. -227

 

저자는 <클린스킨>의 폭력철학과 <천국을 향하여>가 보여주는 근본적 분노를 통해서도 영화의 정치적 힘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괴짜감독 데이빗 크로넨버그 또한 <코스모폴리스>에서 리무진 속에서 세계를 주름잡는 자본가를 주인공으로 설정하면서 '자본주의'의 허와 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잘 만든 영화 하나로 역사 속 정치사상을 되돌아보게 만들기를...

영화를 통해 정치사상 들여다보기는 계속되어야 함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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