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 여긴 어디...[골든애플]

[공중그네]에서 오쿠다 히데오가 창조한 엽기적인 정신과 의사 '이라부'가 다뤘던 환자들은 그래도 유머러스 하기는 했다.
하지만 [골든애플]에 나오는 인물들은 뭔가...현실적인 인물 같으면서도 실제 그들의 모습을 생각하면 부르르 몸서리쳐진다.
'감응정신병'이라 한다고 했나.
8개의 소제목들은 독특한 정신병을 지칭하는 것들인데 하나같이 생소하기만 하다.
에로토마니아, 클레이머, 칼리굴라, 골든애플, 핫 리딩, 데자뷔, 갱 스토킹, 폴리 아 드.
일본 장르 매거진 <미스터리 매거진>에 연재된 작품들을 모아 단행본으로 출간한 것인데 연재와는 다른 순서로 작품이 게재되었다고
한다.
원래 어떤 순서인지 모르지만 첫 작품 <에로토마니아>가 8개의 단편 전부를 끌어모으는 역할을 하는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2006년 가을 하루나 미사키라는 연애소설 작가를 스토킹하는 가와카미 고이치라는 남자.
작가 하루나 미사키의 <당신의 사랑에게>라는 작품이 연재되는 동안 작가와 남자 사이에 하나라도 연결 고리를 지니는 사람들이
차례로 등장하여 섬뜩한 감응정신병의 증상들로 인한 사건을 만들어 나간다.
작가와 남자의 실명이 작품에 주인공으로 그대로 등장하는 <당신의 사랑에게>는 군데군데에서 등장하며 처음부터 끝까지를 하나로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2003년의 이야기부터 2006년, 2008년, 2009년까지 시간의 흐름이 차례차례 흐르지는 않고 뒤죽박죽이지만 동그라미 혹은 네모로
표시된 형광펜 속 인물들은 모두 다 이어져 있다.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하나씩 그물코를 걸고 펼쳐지는 것을 보면 작가의 세심한 구성력을 알 수 있다.
-연애망상이라는 에로토마니아.
소설가는 방송 도중 소설의 주인공이 자기라고 생각하는 스토커의 칼에 맞아 쓰러진다.
-부당한 불만을 호소하는 소비자인 클레이머.
백화점 크로켓 매장에서 손가락이 든 크로켓이 발견된다.
옆 매장에서 멘치가쓰를 튀기던 점장은 마음에 찔리는 바가 있어 슬그머니 다가온 클레이머를 살해한다.
-금지하면 더욱 하고 싶어지는 심리 상태 칼리굴라.
T맨션 507호에 살던 출판사 편집자는 선배의 남자친구에게 오해를 받고 칼로 난자당한다.
-집단최면 또는 집단히스테리 골든애플
사실은 헛소문이었던 것(손가락 멘치까스 사건)을 진짜 있었던 일인줄 알고 인터넷에 허위로 유포하는 여자.
-상대의 정보를 미리 알아두고 영감이나 신비로운 능력으로 상대에 대해 읽어낸 것처럼 꾸미는 핫 리딩
아내의 존엄사를 두고 고민하는 남자에게 다가가는 영능력자와 피디
겉보기엔 멀쩡해 보이는 사람들이었지만 한 꺼풀만 벗겨내면 예외없이 연약한 모습을 숨기고 있었다.
그 모습은 애처롭게도 마음에 병이 든 상태여서 다른 이들이 알아채기도 전에 마음의 병들이 툭 튀어나온다.
'자살공화국'이라 불리는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만큼 이런 사건들이 더 이상 강 건너 불구경 할 수 있는 남의 집 일이 아니라는 것을
통감하게 된다.
현실적이고 평범한 사람들이 주인공이지만 아슬아슬한 한 겹의 보호막 아래 무섭고도 끔찍한 마음의 병을 품고 있는 것.
그리고 이런 상황들이 8개의 단편을 빼곡히 채우고 있다는 것이 나를 혼란스럽게 한다.
나는 누구, 여긴 어디...라는 말이 저절로 튀어나온다.
전염병 퍼지듯 옷깃 스치는 인연이라도 인연만 닿으면 미쳐가는 상황이 보면 볼수록 으스스하다.
"미친 건 세상이야. 잘못된 건 세상이라고!"라며
큰 소리로 부인하지 않으면 어쩌면 나도 모르게 함께 미쳐갈 것만 같다고 하면 너무 큰 과장일까.
정신줄 똑바로 잡고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