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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순왕후, 수렴청정으로 영조의 뜻을 잇다 ㅣ 영조 시대의 조선 13
임혜련 지음 / 한국학중앙연구원(한국정신문화연구원) / 2014년 6월
평점 :
정순왕후, 수렴청정으로 영조의 뜻을 잇다]
영화 [사도]의 영향 탓에 영조에서부터 사도세자, 혜경궁 홍씨, 영빈 이씨, 정조까지 죽 훑어보게 되었는데요~
또 한 사람, 중요한 인물 정순왕후가 숨어 있었네요.
영조나 정조에 중점을 둔 사극을 보면 정순왕후는 나이 많은 영조의 계비로 궁에 들어와 영조, 정조대를 거쳐 순조대까지 오랫동안 궁궐 생활을
해 온 능구렁이, 혹은 악녀로 많이 비춰집니다.
이 책에서는 정순왕후를 '악녀'로 보는 시각에서 탈피해 그녀의 행적을 다각도로 비춰보면서 올바른 평가를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사실, 그녀라고 나이 많은 임금의 계비로 들어오고 싶었겠습니까.
어찌 보면 경주 김씨 집안의 부흥을 위해 희생당한 불쌍한 여인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요.
제목에서도 암시하는 바와 같이 정순왕후는 남편인 영조의 뜻을 이어 수렴청정을 하면서 순조를 지켜내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세도정치로 들끓는 정국을 만들어 내는 데 일조를 하게 되었지만요~
저자는 19세기 수렴청정에 대한 연구를 주로 수행해온 이로서, 문정왕후를 비롯한 정순왕후, 순원왕후의 수렴청정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도적 측면을 중심으로 19세기의 수렴청정의 특징을 고찰했으며 특히 한국사에서 섭정과 수렴청정권의 변화 양상에 대해서도 연구를 했네요.
그렇기에 정권을 농단하려 했다는 정순왕후의 '악녀' 이미지가 다른 의미에서 해석될 여지를 보여 줍니다.
영조가 직접 간택한 계비인 정순왕후의 유명한 일화가 있죠.
간택 장소에 방석이 놓여 있었는데, 거기에는 삼간택에 오른 처녀들의 아버지 이름이 적혀 있었다죠. 다른 이들과 달리 정순왕후는 부친의
이름이 적혀 있기 때문에 그 위에 앉을 수 없다고 했답니다. 잘 자란 사대부가 규수로서의 면모를 확실히 보여준 정순왕후는 중전이 되었습니다.
절약을 강조하던 영조 덕에 호화롭게 치를 수 있었던 가례를 음식 하나 없이 간소한 동뢰를 치렀다고 합니다. 여자로서는 그러게 만족스러운 일은
아니었겠지만 정순왕후는 현명하게 대처해나간 듯 합니다. 적게는 5세에서 많게는 10세까지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아들, 딸, 며느리가 생겼고
50세 가량 나이가 많은 영조의 후궁들도 있었기에 웃어른으로서 이들을 통솔하는 것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랐을 것입니다. 이를 배려하여 영조는
정순왕후의 친정 식구들을 지나칠 만큼 챙겼고 때론 정순왕후가 승진을 말리기도 했다네요. 국모로서 정순왕후의 위엄을 알리기 위해 친잠례를 치르게
하기도 했습니다.
영조 사후 정순왕후는 영조의 뜻을 따라 세손 정조를 보호하며 중전으로서의 소임을 다했습니다.
정조의 후사 문제가 순탄치 않자 정순왕후는 나서서 후궁을 들여 원자를 낳게 하는데요, 이는 왕실의 번영을 도모하고, 정조의 뒤를 이어
즉위할 왕의 정통성을 확보해주기 위한 노력이었습니다. 저자는 정순왕후가 왕실 문제에 있어서 왕대비로서 역할에 충실했다고 평가하고 있네요.
11세의 순조가 즉위하자 정순왕후는 수렴청정을 하게 되는데 이 때 후대의 지침이 될 '수렴청정절목'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제도적으로 완비된
수렴청정을 규정대로 시행하면서 후대의 귀감이 되었지만, 정순왕후는 본인이 원하는 정국을 만들었고, 이에 그녀의 뛰어난 정치력이 있었다고, 저자는
높이 사고 있습니다.
여인으로는 불행했으나 정치의 달인이었던 정순왕후.
파란만장한 생을 궁에서 보내며 전전긍긍했을 그녀를 '악녀'로 보는 시선에서 탈피해 재평가를 해야 한다면, 이 한 줄로 요약할 수있겠습니다.
남자들의 정치에 밀려 주목받지 못했던 정순왕후의 삶을 다시 한 번 음미하게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