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으로 여행을 떠난다면, 한 번쯤 오직 작품 하나를 오랜 시간 감상하기 위해 미술관이 있는 마을로 여행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
<플란더스의 개>에 나오는 네로처럼...
네로는 그림 그리기에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었는데, 루벤스와 같은 화가가 되고 싶은 네로는 성당의 두꺼운 커튼 뒤에 가려진 그림을 보고
싶어 했다. 그러나 그 그림을 보려면 돈이 필요했기 때문에 가난한 네로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성당에는 유명한 화가 루벤스가 그린 〈십자가에 들어 올려지는 예수〉와 〈십자가에서 내려오는 예수〉라는 그림이 걸려
있는데 천으로 덮여 있어 돈을 지불해야만 볼 수 있었다.
잠시 슬픈 이야기 때문에 침묵.
화가가 되려는 열망도 없고 미술에 문외한이긴 하지만 예술작품을 가까이서 들여다 보고 싶은 '욕망'은 남아 있다.
많은 천재화가나 유명한 아티스트들, 혹은 재능 있는 작가들의 작품을 다 볼 수 없다면, 대신 그 그림들이 걸려 있는
미술관으로 눈을 돌려보는 건 어떨까.
그것 또한 현재의 내 처지에서는 불가능한 일이기에 대신, 미술전문기자인 저자가 1년에 걸쳐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술관 22곳을 돌아본 미술관 건축기행을 읽어보기로 한다.
저자는 건축에 있어 전문가는 아니지만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켜 줄 만큼의 정보를 제공해 준다.
박물관과 전시물의 사진 또한 풍족하게 펼쳐져 있어서 보는 즐거움 또한 있는 편이다.
영국, 스페인, 프랑스,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그리고 박물관, 미술관 하면 빠질 수 없는 나라 이탈리아까지
두루 돌면서 손에 꼽을 만한 유럽 미술관 순례를 기가 막히게 펼쳐보여 준다.
파리의 루브르, 로마의 바티칸 박물관과 함께 세계 3대 박물관으로 불리는 영국박물관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위세를 떨치던 대영제국 시절 식민지를 포함해 각국에서 모아온 전리품을 전시한다는 비난을 받기도 하지만 대신 세계에서
가장 큰 박물관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각 박물관이 소개된 뒤에는 박물관을 설계한 설계자에 대한 소개가 나온다.
미술관을 그저 눈으로 보고 즐기는 것 뿐 아니라 어떤 철학에 의해서 미술관을 설계했는지를 알아볼 수 있는 창구가
된다.
하이테크 건축의 중심에 선 거장 노먼포스터, 늘 새로움에 도전하는 환상의 건축가 콤비 자크 헤어초크와 피에르 드
뫼롱,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천재 건축가 프랭크 게리 등 생소한 건축가들에게 의의를 명명해주자 그들의 이름이 금세 확 와닿는다.
건축계의 노벨상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설계자들의 작품이 미술관이라면 그 미술관에 꼭 한 번 가보고 싶어지지 않겠는가.
미술관의 소장품이 아닌, 건축가의 작품으로서 미술관 자체를 보기 위해서 많은 이들이 찾아가고 있다.
건축가의 철학을 담은 미술관은 위의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처럼 조형적인 아름다움과
미술관으로서의 기능성을 가지기도 하지만 도시재생에 결정적 기여를 하기도 한다.
베를린 유대인 박물관은 나치의 반유대주의에 대한 참회의 의지를 보여준다. 티타늄과
아연의 합금으로 금속성이 느껴지는 박물관 외관에는 칼로 베인 상처 같은 날카로운 선들이 긴장감을 높이고 건물 자체가 의미의 덩어리로 이루어져
있다. 미극의 상처를 치유하는 건축예술가 다니엘 리베스킨트의 작품이다.
독일 아프타이베르크 미술관.
조각정원에 설치된 마우로 스타키올리의 원형 조각 작품을 통해 보이는 수도원의 모습은 한 폭의 아름다운 풍경화 그
자체였다.
현대 예술작품을 통해 중세의 표정을 들여다보는 것은 오직 이곳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직선과 곡선, 과거와 현재,
융합과 충돌, 자연과 인공처럼 상반된 개념들이 다양하게 조합되면서 미학적으로나 기능적으로 완벽하게 실현된 건축, 홀라인이 추구하는 '예술로서의
건축'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179
르네상스 시대로의 시간여행을 떠나고 싶다면 이탈리아의 우피치 미술관이 제격.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피렌체의 거리에서 유독 눈에 띄는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의 거대한 돔이
만들어지기 까지의 뒷이야기는 여행지에서 만나는 소소한 즐거움이다.
기본적으로 건축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곳들을 선별하여 실었다 하니, 어느 곳 하나 허투루 보아 넘길 수 없을 듯하다.
학술서적은 아니지만 미술관 건축에 얽힌 얘깃거리들과 역사, 미술관에 대한 사회적 담론들, 방문자로서의 현장감들을 빼곡히 채워놓아서 읽기만 해도
배부른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