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측 죄인
시즈쿠이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arte(아르테)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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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를 믿고 갈 길을 가다 [검찰 측 죄인]

 

예로부터 판사나 검사, 변호사 같은 법조인이 한 집안에 탄생하기를

우리네 부모들은 빌고 빌어왔다.

뼛속 깊이 법조인의 피를 이어 받은 유서 깊은 가문이 아닌 다음에야

뼈를 깎는 노력을 하거나 "개천에서 용 나는" 정도의 천지개벽이 일어나야

겨우 얻어 입을 수 있었던 법조인의 검은 가운.

 

힘 없고 무식하다며 무지렁이 취급 당하고 모멸감을 받아 온 세월이

얼마나 서러웠으면

좀 똑똑한 자식이 났다 하니

대번에

"우리 집 기둥은 너 하나다. 꼭 판검사 돼야 한다."라는 말을 하고 또 해서

어리벙벙한 자식의 창창한 앞길을 다른 곁가지를 다 치고 단 하나의 길만을 향해 달려가게 했을까.

 

판검사의 옷을 입으려면 똑똑함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그 어르신들은 다 헤아리고 그 길로 밀어넣는 것일까.

 

"정의"의 이름으로 죄인과 죄를 천칭에 나란히 올려 형량을 저울질하고

심판하는 막중한 임무를 띄게 될 판검사가 짊어지게 될 무게는

밀어올리기만 하면 다시 떨어지고 마는 시지프스의 돌덩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법제도 개혁으로 신설된 법과 대학원을 거쳐 신사법시험에 합격한 신 60기 연수원에서 교관과 제자의 연으로 만나게 된 모가미와 오키노.

앞으로 법률이라는 검 한 자루를 손에 쥐고 휘두르게 될 연수원 졸업생에게 모가미는 "검을 든 자는 용자"여야 한다며 용기와 각오를 심어준다.

오키노는 모가미를 마음 속에서 이상적인 검사의 모습으로 기억하며 검사 생활을 하던 중 드디어 모가미와 만나 사건을 배속받는다.

집 안에서 살해된 노부부의 사건을 맡게 된 오키노는 모가미의 지휘를 받는다는 생각만으로 바짝 긴장하여 사건에 임한다.

범행이 발생한 후 시간도 꽤 흘렀고 범인을 단정할 만한 증거가 현장에 남아 있지 않아 여러 명의 피의자를 물망에 올려 두고 조사하고 있었는데...

경찰과 검찰 간 신뢰 관계를 더욱 굳히기 위해서 경험이 적은 오키노에게만 맡겨놓지 않고 직접 사건을 살펴보던 모가미는 부부의 숨은 교우관계를 조사한 목록 가운데서 '마쓰쿠라 시게오'라는 이름에서 눈길이 멈춰선다.

23년 전, 모가미가 대학생 때 생활한 기숙사 관리인의 외동딸 유키가 살해당한 사건이 있었는데, 그 때의 유력한 용의자였던 마쓰쿠라는 결정적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풀려났던 것이다...

 

유키는 23년 전에 재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이 남자는23년간 태평하게 살아서... -96

 

이미 공소시효가 끝난 사건의 용의자였지만 노부부 살해 사건으로 다시 맞닥뜨리게 된 이 이름 앞에서 베테랑 검사 모가미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때마침 순수한 정의로 들끓는 마음을 함께 나눈 법학부 동기였던 단노가 불법 정치헌금에 연루되어 자살을 선택했다는 소식을 접한 모가미는 이상한 충동에 사로잡히게 된다.

 

마쓰쿠라가 노부부를 죽였다면 그 죗값을 치러야 한다. 그것이 천벌로서 큰 의미가 있는 것이다.

 

모가미는 마쓰쿠라를 옭아맬 함정을 만들고 계획을 차근차근 실행한다.

마쓰쿠라를 아무리 취조해도 자백하지 않았고 확실한 살인증거도 나오지 않은 때에 갑작스럽게 살인흉기가 나타나면서 마쓰쿠라는 살인죄를 뒤집어 쓰게 되었다.

오키노는 무엇에 씌인 듯 마쓰쿠라를 살인범으로 몰아가는 모가미에게 강한 의심을 품게 되면서 급기야 "검사" 의 옷을 벗어던지고 만다.

변호사로 다시 시작하기 전에 이 사건을 끝장내고야 말리라.

오키노는 사건의 진실에 다가갈수록 그가  그토록 존경하고 이상적인 검사의 이미지로 품어왔던 모가미가 법의 심판을 기다리지 못하고 스스로 심판하려 했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정의를 좇아 선배 검사에게 반기를 든 오키노라는 남자의 고뇌가 소설 전편에서 드러난다.

그저 검사라는 직업인으로 살아가지 않고 뜨거운 가슴과 냉철한 이성으로 나름의 "정의"를 실현하려 했던, 어찌 보면 되게 멋진 '사나이'가 등장했다. 정의를 관철함으로써 자신을 쫓아낸 선배에게 보복했다며 남들은 축하해주지만 그 축하는 이상하게도 공허한 메아리로 들린다.

진정한 정의는 무엇인가?

법이 심판을 벗어난 악인은 누가 심판해야 하는가?

법으로 심판하는 자에서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하는 자로 전락한 모가미에게는 어떠한 동정도 가해서는 안되는가?

간만에 제대로 "선과 악"의 오묘한 경계에 대해 고민하게 만드는 책을 만났다.

 

[검찰측죄인]

우물쭈물하다 흐리멍덩하게 세상을 사는 우리에게 선명한 흑과 백을 잠시나마 뚜렷하게 보여주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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