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자와 죽은 자 스토리콜렉터 32
넬레 노이하우스 지음, 김진아 옮김 / 북로드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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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하러 온 자, 스나이퍼 [산 자와 죽은 자]

 

얼마 전, 고3 수험생 아들이 아버지를 위해 간 이식을 해 주고 그 해 수능은 포기했지만, 다음해에 도전하여 서울대학교에 합격했다는 뉴스가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모두들, 착한 일도 하고 공부도 잘 하는 아들을 둔 그 아버지를 부러워했고 자신의 일처럼 기뻐도 해 주었다.

부모 자식간, 친족간에라도 장기 이식을 받을 수 있다면 그나마 좋은 일이고,다행인 일이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렇지 않기가 십상이다.

영화에서 보면 장기밀매의 어두운 부분이 마치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일인 것 마냥 표현되기도 하며, 조선족이나 뒷골목 깡패의 생계유지가 이 일에 연루되는 것이 공식처럼 나타나기도 한다.

드라마에서는 심장을 이식해 주고 죽은 사람의 마음이 이식받은 이에게 연결되어 새로운 사랑이 싹트는 달달한 내용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보는 관점에 따라 아름답기도 혹은 추악하기도 한 장기이식.

애초에 내 것이 아닌 것이었으나 생명유지를 위해 오로지 과학적 견해에 의해 장기를 이식하기도 하지만 윤리, 도의상 정착되지 않은 문제가 있는 것 또한 엄연한 사실이다.

더군다나 장기이식이 기부자 또는 환자의 확실한 기부의사가 있은 후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면...위독한 환자를 둔 부모와 병원의사간 모종의 암약에 의해 돈거래가 개입된다면...이것은 하나의 "사건"이 형성되는 것 아닌가. 거기다 장기이식에 임하는 의사의 관념이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것과는 무한대로 동떨어진 곳에 있다면...그것이야말로 후덜덜한 일이 아닐 것인가.

 

넬레 노이하우스의 [산 자와 죽은 자]는 환자의 생명 유지에 있어서는 밝고 희망적으로만 보이던'장기이식'의 또다른 면을 가감없이 해부한다.

자, 보아라. 이것이 장기이식의 진짜 모습이고 현주소다!

남의 일이어서, 내게 닥친 일이 아니어서 장기기부나 이식에 대해 다소 동떨어진 위치에서 바라보는 위치였던 것이 사실이지만, 이 책을 읽으며 사회의 섬뜩한 이면을 살짝 엿보게 된 것 같아 정신이 번쩍 든다.

 

 

"베니는 전혀 죽은 것 같지 않았거든요. 베니가 깨어나지 않을 거라는 말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날 구워삶았어요. (...)

그 사람들은 1분 1초가 급하다면서 지칠 줄 모르고 졸라댔습니다. 난 지칠 대로 지친 상태에서 결국 동의하고 말았습니다."

 "그건 더이상 우리 아들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희멀건 껍데기에 불과했죠. 얼굴은 삐뚤빼뚤하고 눈은 꿰매어져 있고...각막까지 떼어냈더라고요."

"내 아들은 최소한의 인격적 대우도 받지 못한 채 수술대 위에서 죽었습니다."-368

 

스나이퍼라 불리는 사나이가 연쇄적으로 살인을 저지른다. 처음에 피해자들에게선 어떤 공통점도 발견할 수 없었으나 보덴슈타인과 피아 팀은 곧 키르스텐 슈타틀러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의 가족을 죽임으로써 복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첫번째 희생자는 키르스텐 슈타틀러가 쓰러져 있을 때 도와주지 않은 이웃 여자의 어머니, 그리고 곧이어 술기운이 남은 채 구급차 운전을 하다가 키르스텐 슈타틀러를 태운 채 도랑에 빠진 남자의 아내가 죽었고, 수술에 관여한 루돌프 교수의 부인, 심장을 이식받은 프리드리히 게르케의 아들, 장기이식 상담자의 남편이 차례차례 죽었다.

당사자가 아닌 당사자의 가족들에게 피해를 입히면서 "스나이퍼"는 제대로 복수를 하고 있다고 느끼는 걸까?

경찰은 키르스텐  슈타틀러의 아들 에릭, 딸 헬렌을 용의자로 지목했지만 아들 에릭은 알리바이가 있었고, 딸 헬렌은 자살했다. 신문 과정에서 슈타틀러 가족이 아내와 어머니를 잃은 후 얼마나 정신적인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는지도 드러나, 피해자 뿐만 아니라 피해자 가족들에게도 덧씌워진 트라우마의 깊이가 얼마나 깊은지 잘 알게 된다.  키르스텐 슈타틀러의 사후, 장피모에 가입한 식구들은 장피모 활동에 열중했다는데, 장피모 회장인 마르크 톰슨은 국경경찰대에 있었으며 헬렌을 무척 좋아했다고 한다. 그리고 헬렌의 약혼자였던 옌스 우베는 전직 의사였으며 통제광이었다는 증언도 나와 이들 또한 중요 용의 선상에 오르게 된다. 어느 모로 보나 동기는 충분히 있음직한데 이들 중 "스나이퍼"에 맞아떨어지는 사람이 있는 걸까?

사건에 프로파일러와 심리학자가 개입하면서 보덴슈타인과 피아는 더욱 혼란만을 느끼는데...

 

큰 불의가 발생했다. 죄 지은 자들은 고통을 맛보아야 한다. 그들이 무관심, 욕망, 허영, 부주의를 통해 초래한 것과 똑같은 고통을. 나는 산 자와 죽은 자를 가리러 왔으니 죄를 짊어진 자들은 두려움에 떨 것이다.-217

 

심적 고통이 너무나 커서 죄지은 자들을 직접 처벌하려 나선 "스나이퍼"의 편지 부분이다.

과연 인간이 인간을 심판하고 처벌하는 것이 통용되는 사회인가?

용인되지 않는 심판임에도 불구하고, 끝이 어딘지 조차 이미  알고 저벅저벅 걸어들어가는 스나이퍼의 뒷모습이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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