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통쾌해도 되는 걸까?[나오미와 가나코]

브래드 피트의 탄탄한 뒤태와 그랜드 캐년을 향해 뛰어드는 마지막 명장면으로 유명한 [델마와 루이스]라는 영화가 생각난다.
친구 사이인 두 여자가 해방감을 맛보기 위해 떠난 여행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길이 되었지만...마지막 장면의 카타르시스만은 아직도 여전히
잊을 수 없다.
[나오미와 가나코]는 작가인 오쿠다 히데오조차 결말을 어떻게 쓸지 많이 고민했던 작품이라고 한다.
그저 조마조마,두근두근한 마음으로 읽어달라고 했는데
그 말이 주문처럼 나를 옭아매서인지
정말이지 내가 주인공이 된 것처럼 심장 쫄깃한 기분을 한껏 맛볼 수 있었다.
책의 전반부는 나오미가 서술하고 후반부는 가나코가 서술해 가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자연스레 두 여자의 입장을 골고루 경험하게 되면서 나오미가 되었다가, 가나코가 되었다가 하게 된다.
백화점 외판부에서 근무하는 나오미는 감기로 약속을 취소한 오랜 친구 가나코가 걱정되어 들렀다가 남편 다쓰로에게 폭행당한 가나코의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폭행이 꽤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었으나 쉽게 이혼할 결심을 하지 못하는 가나코의 모습에 나오미는 아버지에게 맞고 살았던 어머니를 떠올린다.
가나코의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자신도 개운치 않을 것이란 생각에 나오미는 우울해진다. 백화점 일 때문에 화교 리아케미를 찾아 갔다가 가나코의
남편 다쓰로와 똑같이 생긴 남자를 보게 된 나오미는 본격적으로 다쓰로 "제거" 작전을 세운다. 내키지 않아 하는 것 같던 가나코도 계획을 세우고
예행연습을 하는 동안 마음을 다져먹는다.
계획부터 실행까지 완벽하게 해치운 뒤, 잠시 사태의 추이를 살피는 동안 나오미와 가나코의 모습은 비현실적으로 '태평'하다.
아침에 일어나 환한 햇살을 만끽하고 독점하게 된 더블베드의 스프링과 새 시트의 냄새에 코를 파묻는 가나코의 모습 .
심지어 둘은 온천 여행을 떠나 호화로운 일본식 정식 풀코스를 즐기기도 한다.
이들의 마음 상태는 도대체 어떤 것일까?
범죄자라면 범죄라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이 살인을 태연히 저지르고 일상을 저렇게 즐겨도 되는 것인가?
마침, 함께 읽고 있던 책에서 힌트를 발견했다. 내가 범인이 아닌 이상 완전히 그들의 상황에 동화되기는 어려웠기에 이 찜찜한 마음의
응어리를 풀기 위해 이 한 구절이 필요했던 것 같다.
이상과 정상으로 나눈다면, 정신상태가 가장 이상해지는 것은 실행하고 있을 때보다도 오히려 범행 직후일 거라고 생각해요. 찾아왔던 것이
완전히 떠난 후-다시 말해 죽이고 난 후
네-그것이 찾아온 순간은, 물론 정상은 아니겠지만 범행 중에는 의외로 제대로 된 판단력을 갖고 행동하는 거지요. 하지만 모든 것이 끝났을
때-범인은 자신이 무시무시하게 비일상적인 상태에 놓여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거예요. 시체가 누워 있지요. 그리고 범인은 자신이고요. 그래서
대개 착란을 일으키는 겁니다. 그 결과 범인은 후회하거나 반성하거나 자수함으로써 비일상을 일상으로 교정하려고 하지요. 하지만 길은 한 가지 더
있는데, 이것은 사회에 들키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함으로써 일상을 되찾으려고 하는 길이에요. 요컨대 발각되지만 않으면 된다, 다시
말해 범행을 감추려고 하는 거지요. .-<망량의 상자, 상, 138
과연 이들의 범죄는 완벽하게 발각되지 않게 될 것인가?
나오미와 가나코의 은폐 노력은 눈물겹게 계속되지만 가나코의 시누이가 사설탐정을 고용하고 CCTV를 확인하는 등 이들이 둘러쳐 놓은 방어막을
점차 조여오면서 사태는 그리 낙관적이지 않게 변해간다.
어찌 보면 속 시원한 이들의 범행을 응원하는 마음이 반이었고, 들키지 않을까 조마조마한 마음이 또 절반의 절반, 나머지는 어떤 결말로 끝날
것인가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끝까지 책에서 손을 뗄 수가 없었다.
무지무지 '달려라 달려!'하는 와중에도 이렇게 통쾌해도 되는 걸까"라는 죄의식을 심어주는 소설.
평범한 여자들의 일상에 "푹" 하고 먼지폭탄을 터뜨리고 가는 오쿠다 히데오식 하드보일드!
잔뜩 흩뿌려진 먼지를 처리하는 일은 독자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