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떠나요. 나를 찾아서... [파리 빌라]

문득 여행을 떠나고 싶어진다.
이 진득거리고 구질구질한 일상에서 훌훌 벗어나고 싶다.
내 현재의 삶은 너무나도 평온하여 굴곡이 없지만 진득거린다거나 구질구질하다는 말만은 좀 어울리지 않나, 싶다. ^^
가볍게 툭툭 건드리는 듯한 문체의 [파리 빌라]를 읽었더니 "여행"이라는 단어가 제일 먼저 떠올랐다.
제목에 '파리'라는 단어가 있어서였는지, 프랑스로 떠나고 싶어졌다.
사실, 여행이라는 것이 어느 곳으로 트렁크를 끌고 가도 내 마음 속 짐들을 훌훌 벗어놓고 올 때만이 진정한 여행의 가치를 느낄 수 있는
것인데....
[파리 빌라]를 읽으면서 "나"라 일컬어진 주인공이 자신을 옭아매고 있던 남자 친구와의 관계에 대한 미련을 벗어던지는 과정을 보고 있노라니
나도 이제 그만 나를 얽어매는 속박의 정체가 무엇인지 살펴보고 어디로든 떠나서 정리를 해야되지 않나, 싶어
괜히 마음 속에 조바심이 생겼다.
하지만 잔잔한 일상이 계속되고 있을 뿐인 이 단조로운 나의 삶에는 갈등이란 없다.
다만, 언제고 덮칠지 모르는 파도나 태풍을 기다리고 있을 뿐.
훗..
너무 심심한 삶이 아닌가.
당장 어딘가 얽히고 설킨 복잡한 일을 풀어야 할 당위를 느끼는 것도 아니고
이 일이 끝나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이 숨막히는 상황이 전개되는 것도 아닌데.
괜시리 [파리 빌라]를 읽으니 트렁크에 이것저것 쑤셔 넣고
훌쩍,,,떠나야 할것만 같다.
그랬더니 '너랑은 어울리지 않는, 전~ 혀 어울리지 않는 것이거든', 하고 사악한 악마의 속삭임이 재잘거린다.
'너는 너무 편안하잖아, 지금...'
그래서 결국, 악마의 속삭임과 타협하여 트렁크를 싸지는 않았고, 여행을 떠나려고 내게 없는 갈등을 조장하지도 않았다.
나는 나의 현재의 삶에 만족하며 안주하고 있는 중이다.
무지 다행한 일인데, [파리 빌라]의 "나"가 떠나는 여행이 괜히 부러운 게 약이 오른단 말이다.
훌쩍 떠나 쿨내 진동하게시리 '여행자'로 행세하며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인생의 비밀을 하나 둘 담아오는 과정을 못 견디게 경험해 보고
싶어졌단 말이다.
분명 소설 속 "나"는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나서 마음이 어지러운 여자인데
이상하게도 서늘한 감정을 가진 여자인 것만 같이 느껴진다.
남자친구와의 관계를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해결하려는 너무나 쿨~ 한 여자인 것 아닌가.
지지고 볶고 소리치고 할퀴고 닦달하는.
흔한 신파의 한 장면을 한순간에 너무나도 쉽게 소화해 내고는
그 이후로는 영화 속 무심한 눈빛을 가진 여자가 되어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소설이라기 보다는 여행에 대한 기록이라는 편이 더 어울릴 것만 같은 [파리 빌라]
몇 몇 구절이 심금을 울리기에 적어 놓는다.
"있잖아, 만약에 네가 누군가에게 실연을 주었다면 아마도 그 사랑은 진짜 사랑이 아니었을 거야. 네가 당했던 실연만이 진짜 사랑이었을
거야. 이유를 불문하고 끝까지 곁을 지키지 못한 쪽은 사랑했다고 말할 자격이 없는 거야."-55
나는 한때 진짜 삶이 오기를 간절히 기도한 적이 있었다. 되고 싶었으나 되지 못했던 여인들, 혹은 되기 싫었으나 내 안에 자리잡았던
여인들, 그들은 밤이면 한꺼번에 다가와 입을 벌려 욕망을 드러내곤는 아침이면 다시 내 안의 깊숙한 곳 어딘가로 도망쳤다.-82
나는 아직 사랑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다만 바랄 뿐이다. 부디 나의 삶에 사랑이 넘치기를.-193
[파리 빌라]에 부제를 붙인다면,
여행을 떠나요, 나를 찾아서...
라고 하고 싶다.
깔끔하고 단정한 글들의 여백 속에서 나 자신을 찾아가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