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몽영, 삶을 풍요롭게 가꿔라 - 임어당이 극찬한 역대 최고의 잠언집
장조 지음, 신동준 옮김 / 인간사랑 / 201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꿈결인 듯 노닐다 문득 나를 발견함 [유몽영]

 

 

 

 

책의 제목이 낯설었다. 그런데 책의 첫 구절을 보니 어디선가 본 듯한 기억이 난다.

계절에 맞는 독서법을 찾느라 이 책 저 책 찾던 중, 이거다 싶어 발췌하여 기록해 두었던 구절이다.

 

 

현대 인문학과 같은 문사철을 구현한 장르인 경사자집을 어떤 계절에 읽으면 좋을지 구분해 놓은 글이다. 이 구절이 실린 책이, 그것도 맨 앞에 실린 책이 [유몽영] 이었다니.

 

조장, 농단 같은 단어의 출전이 [맹자]였음을 [맹자]를 읽음으로써 비로소 알게 되었던 것과 마찬가지다.

역시 부분만으로는 전체를 조망할 수 없다.

글을 베껴 써 놓았으면 출전도 적어 놓았어야지.

아마 출전을 적기는 하였으되, [채근담]이나 [명심보감]처럼 입에 익지 않은 것이어서 금세 잊어버렸을 수도 있다. 역시나 얕은 책 핥기 식 독서의 폐단이다. 아님, 주부 치매의 발현이거나...^^

 

그런데 왜 이 책을 이제서야 보게 되었을까.

'그윽한 꿈의 그림자'라는 뜻을 한 번만 새겨 보았으면 절대 잊지 못했을 것을...

어록체로 되어 있으며 통상 청언문학으로 불리는 [유몽영]은 [채근담]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하다고 한다. 이제라도 만나 보게 된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채근담], [소창유기], [위로야화]는 처세 3대 기서라고 불린다. [유몽영]은 앞의 책들과 마찬가지로 처세 원칙을 포함하고 있지만 크게 4개의 주제로 나눌 수 있다고 한다.

독서와 문학, 자연과 예술, 꽃과 여인, 인생과 처세 등이 그것이다.

 

 

원서에는 4자 성어로 된 제목이 붙어 있지 않으나 역자인 신동준은 앞의 [채근담]과 마찬가지로 제목만 봐도 해당 구절의 내용을 곧바로 알 수 있도록 4자 성어를 덧붙이는 구성을 취했다.

 

각각의 주제를 확연히 드러내는 원칙에 밑줄을 쳐 보았다.

 

독서와 문학에 해당하는 글을 읽을 때에는 현대의 문학관, 독서습관에 비추어 옛 사람들의 생각이 얼마나 다른지를 비교,대조해 볼  수 있다.

자연과 예술, 꽃과 여인 부분을 읽을 때면 어느새 꿈 속을 거니는 듯 슬며시 웃음지어진다.

독서를 통해 다른 세상을 만나는 경험을 하게 된다고들 하는데,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라는 광고 카피가 환기시키는 별세계의 안온한 배경이 펼쳐진 것만 같다.

 

청량한 바람을 계절별로 나누어 볼작시면 봄바람은 술, 여름바람은 차, 가을바람은 담배연기, 겨울바람은 생강 또는 겨자와 같다.-266

 

'비'라는 사물은 낮을 짧게 만들기도 하고, 밤을 길게 만들기도 한다.-113

 

달빛 아래서 선을 얘기하면 취지가 더욱 우원해지고, 검술을 얘기하면 품은 마음이 더욱 진실해지고, 시를 논하면 풍치가 더욱 그윽해지고, 미인과 마주하면 정의가 더욱 도타워진다. -172

 

이렇듯 몸이 타임머신을 타고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여 낯선 곳에 당도한 것 같은 느낌을 주는가 하면, 현대의 혼몽한 세태와 그리 다르지 않은 처세법이 여전히 통용되고 있음을 깨닫게 되면서 오히려 당혹감을 느끼게 되기도 한다.

 

'제자백가'와 '마키아벨리'마저도 섭렵해버린 해박한 지식의 저자는 축자 형식의 주를 다는 것에 그치지 않고 세세하게 출전을 끌어와 밝히거나 근사한 사례를 직접 제시하기도 한다.

 

 

장자 <제물론>의 호접몽 우화에 대한 주 또는 해설은 좀더 상세하여 장자에 대한 작은 "강의"를 듣는 것 같다. 질 들뢰즈, 나카가마 다카히로의 [장자] 강의를 어지간해서는 혼자 독파해낼 수 없을 것만 같은데, 단 서너 장으로도 충분히 알짜배기 강의의 역할을 해낸다.

 

책을 수장하는 장서가가 되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필요할 때 능히 찾아보는 간서가가 되는 게 어렵고, 간서가가 되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능히 책을 읽고 이해하는 독서가가 되는 게 어렵고 독서가가 되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책을 통해 배운 지식을 능히 실제에 활용하는 능용가가 되는 게 어렵고, 능용가가 되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능히 머릿속에 체계적으로 정리해 기억하는 능기가가 되는 게 어렵다.-183

 

저자는 각 원칙의 해설을 통해 능히 능용가, 능기가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자칫 현 세태에 내뱉는 독설 같기도 하지만 지극히 객관적으로 접근하고 분석한 다음 내놓은 의견이기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실제로 조선조 사대부의 수준은 베트남은 말할 것도 없고 에도시대의 사무라이만도 못했다. -151

 

3대 세습의 전제정으로 인해 사실상 궤멸 직전에 처한 북한에 이어 남한마저 '당동벌이'의 붕당정치가 고착될 경우 남북이 공멸하는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 있다. -180

 

장서가에서 겨우 간서가, 독서가의 수준으로 넘어가려고 하는 나에게 이렇듯 고전 속에서 현실 속 문제의 해법을 발견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저자의 해설 덕에 편하게 청나라 시대 고전 청언을 두루 맛볼 수 있었다.

[유몽영]은 꿈결을 거니는 듯 유유자적하며 한가로움 속에 몸을 맡기게도 하고, 날카로운 죽비 소리 내리쳐지듯 무지몽매함에서 깨어나게도 하는 두 가지 매력을 동시에 지닌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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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5-08 1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속에 좋은 문장이 많이 있을 것 같습니다. 내용을 사자성어 제목을 붙여서 정리한 저자의 센스가 좋군요. 문장을 외울 때 사자성어로 외우면 되니까요. ^^

남희돌이 2015-05-11 12:59   좋아요 0 | URL
네. 좋은 문장이 많고 되새겨볼 문장도 많네요. [유몽영]과 함께 채근담 등을 엮어서 동양고전 잠언 500선으로 책이 나온다고 해요. 필사공책도 딸려나온대요. 어서 써 보고 싶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