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만을 보았다
그레구아르 들라쿠르 지음, 이선민 옮김 / 문학테라피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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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씌워진 굴레를 들여다 본다. [행복만을 보았다]

 

 

엄마는 속삭였지. 그럼 당연하지, 널 위해 우리 목숨도 내줄 거야.

(...)

살면서 한 번도 납치된 적이 없었고, 그래서 두 사람이 날 위해 목숨을 내준 일도 없었지.

결국 아무도 날 구해주지 않았어. -14

 

소년 앙투안은 아홉 살 때 학교에서 '린드버그 사건' (영아 유괴, 살해 사건)을 접하고 생애 첫 충격을 받게 된다. 누가 자신을 납치하면 부모님은 자신을 구해 줄 것인가?

아홉 살 아이가 충격적인 일을 접했을 때 으레 그러하듯 엄마 품을 파고들자 앙투안의 엄마는 흠칫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엄마는 아이를 위로하는 말을 흘렸지만 그 말은 공허한 메아리로 울려퍼진다.

앙투안은 구원받지 못했다.

 

아홉 살 아이가 화목한 가정이 아니라는 것을 금방 눈치챌 정도로 앙투안의 가족은 살가운 사이가 아니었다. 서로 다정한 손길이나 말을 주고받지도 않았고, 아무도 자신의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자라서 손해 사정사가 된 앙투안은 야수로 변하기 전 자신의 일을 회상할 때 인생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한다.

 

아이를 피하지 못해 오토바이 사고를 냈지만 스스로도 다친 운전자는 개조한 오토바이를 몰고 있었기에 3만 유로 이하의 벌금 및 2년 이하의 징역에 해당한다. 끝장난 인생에 맞닥뜨린 운전자의 운명은 앙투안의 결단에 따라 지옥으로도, 천당으로도 갈 수 있었지만 비겁한 앙투안은 최소한의 돈을 지불하게 만드는 일로 돈을 받는 사람이었기에 비겁함을 선택한다. 자신의 비겁함을 알아차리는 일에 대한 가치는 3만 유로.

 

앙투안의 쌍둥이 여동생 중 한 명이 죽었다. 12세 미만의 어린이 시체를 보존 처리하는 데 650프랑 70상팀. 장례식 이후 어머니는 아무것도 짊어질 수 없다며 가족을 두고 떠났다.

 

피팅룸에서 한눈에 반해 사랑을 나눈 뒤 결혼한 나탈리는 아트디렉터와 바람이 나서 집을 나가 버렸고  앙투안은 비겁한 대신 용감함을 선택했다는 이유로 실업자가 되었다. 자신을 버리고 떠난 친어머니는 초라한 방에서 일생을 마쳤고 아버지는 암에 걸렸다. 아내가 나간 후 아이들과의 일상을 견디려 했던 앙투안의 인내심은 점점 극한에 몰리게 된다. 집에 있던 라디에이터가 터진 것을 수리하는 비용, 끝자리 떼고 700유로. 배관공에게 사기를 당한 것을 알아챈 그 순간, 앙투안의 안에서 잠자고 있던 호랑이가 깨어났다.

 

얼간이 취급 받고, 개처럼 쫓겨나고 아무 이유 없이 버림받았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을까.

앙투안 속에 잠자던 괴물은 자신의 딸, 조세핀을 총으로 쏘아 버린다.

 

"왜 당신은 날 먼저 쏘았나요?"

조세핀은 아버지 앙투안에게 이 말을 묻고 싶었다.

 

앙투안은 스스로를 먼저 쏘지 않고 딸을 쏘았다. 딸의 턱은 날아갔지만 죽지는 않았으므로 앙투안은 정신과 치료를 받고 풀려난다. 그 이후 앙투안은 멕시코 서안의 휴양지로 떠나 이방인으로 살아간다.

앙투안은 앙투안의 삶을, 그의 딸 조세핀과 나머지 가족들은 또 그들만의 삶을.

 

이 소설은 하나의 가정이 처참히 붕괴되는 과정을 간결하면서도 감각적인 언어로 풀어내고 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도 이슈가 되고 있는 동반 자살이라는 문제와 일맥상통하는 듯 보이지만, 다른 점은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살아 있다는 점이다.

가장 끔찍한 기억을 서로 서로 간직한 채.

동반 자살로 마무리된 집안의 이야기는 거기서 막을 내린다. 하지만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살아 있을 때에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끈질긴 생명력으로 살아가는 그들에게는 아픈 기억이 새겨지기 때문이다.

아버지 앙투안, 딸 조세핀.

그들의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전쟁들, 기름이 들끓는 지옥불과도 같은 고통을 수반한 그 전쟁들이 너무나도 아프게 그려진다.

아프게 그려진다고 느끼는 이유는, 작가가 그려내는 그 사고 이후 그들의 일상이 생생하고 세밀하기 때문이다.

어느 가정에서나 있을 수 있는 사소한 갈등들은 상처를 만들었다. 상처는 서서히 곪아서 드디어 터져 버렸다. 터져 버린 자리는 언젠가는 아물겠지만 그 과정을 지켜보는 일은 생각보다 고통스럽다.

 

앙투안의 삶을 읽으면 어느새 내게 씌워진 굴레를 물끄러미 들여다보게 된다.

정신과 상담의 형식을 빌어 진행되는 대화 속에서 그들의 속마음이 하나씩 드러날 때면, 낱말 하나 하나를 파내서 내 주머니 속에 털어넣어 버리고 싶어진다.

"바로 그거야. 내가 느꼈던 감정이 바로 그거라고."라며 금세 주먹을 부르쥐게 된다.

아들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원망하며 자라고, 아들의 자식들은 또 그들의 부모에게 이를 갈고...

지겹도록 되풀이되는 흔한 운명의 굴레를 벗어던지는 계기는 누가 만들어야 하는 걸까.

내 스스로에게 입이 마르고 닳도록 묻고 또 물어보았다.

 

이 소설의 마지막이 선사하는 감동적인 장면이 하나의 대답이 되어 주었다.

이해와 공감의 따스한 눈물로 감사함을 대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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