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춤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1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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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나는 환상 속 나비 [나와 춤을]

 

 

 

 

 

온다 리쿠의 본격적인 단편을 읽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달의 뒷면] 이후 '다몬'을 주인공으로 하여 옴니버스 식으로 이어진 단편 5개가 합쳐진 [불연속 세계]를 읽어본 것이 다이다.

온다 리쿠는 장편이어야 제대로 읽는 맛이 난다고...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가 [불연속 세계]를 읽어본 이후로는 단편으로도 충분히 환상 세계를 경험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었다.

[나와 춤을]은 그 확신에 도장을 한 번 더 "꽝" 하고 찍어주는 것 같다고나 할까.

 

19편의 단편들은 서로 연결되기도 하고 짝을 이루기도 하며 예전 작품의 후편 성격을 띠기도 한다.

 

예를 들면 <변심>에서는 동창회 연락을 묻는 전화를 마지막으로 사무실에서 사라진 사람을 찾다가  그가 남긴 흔적을 시선으로 따라가니 창밖 풍경이 눈에 들어오더라. 왠지 모르게 섬뜩한 기분이 들어서 그를 꼭 찾아 주어야겠다 생각하는 남자의 이야기가 나온다.

무지 뒷이야기가 궁금해져서 스스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되지만 <오해>라는 단편에서 그 뒷이야기가 짠~ 하고 나타난다. 어느 정부 부처에서 기밀이 누설되고 있다. 내부 사람에 의해 데이터가 빼돌려지는 것 같다는 보고가 올려졌다. 수사 팀에서 내사를 위해 팀을 꾸렸고 자신들만의 암호를 정해서 다른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했다는 이야기다.

 

개에 관한 이야기를 쓴 <충고>와 고양이를 쓴 <협력>은 역시 짝을 이루는 엽편.

 

<변명>은 모노드라마의 형식으로 한 여인이 무대에 오른다. 구직 활동 중인 학생이라는 설정으로 어떤 일의 상황을 혼자 쭉 설명한다. [호텔 정원에서 생긴 일]에 나오는 에피소드의 숨은 뒷이야기라고 한다.

 

역시나 대부분의 이야기들은 들어본 적 없고 읽어본 적 없는 이야기들 뿐이라 무슨 작품의 뒷이야기라고 해도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다.

단편 하나하나가 그 나름대로 독자적인 매력을 유지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짧은 것은 짧은 것대로, 좀 긴 것은 좀 긴 것 대로.

무작정 시작하고 약간 아쉬운 듯 할 때 끝나버리긴 하지만 그것이 바로 단편의 매력.

 

무엇보다  나와 춤을]에서는 환상적으로 펼쳐지는 배경을 상상만 해도 저절로 이야기의 물결이 넘실거린다.

[달의 뒷면]에서 물의 세계를 다루었을 때도 느꼈지만 어쩜 상황 설정이 물흐르듯 저렇게 자연스러울 수가 있을까.

<주사위 7의 눈>보이지 않는 7의 나라에서 나온 여자가 선동 행위를 한 사람을 체포하는 장면은 무지 비현실적이지만 금도끼, 은도끼 설화의 친숙함 때문인지 어느덧 현실로 받아들이고 만다.

 

 

<소녀계 만다라> 수시로 움직이는 교실 너머로 부쩍부쩍 다가오는 범선. 세계를 움직이는 '그녀'가 움직이는 만다라 속에서 무언가를 발견한 소녀는 끔찍한 모습에 긴긴 비명을 질렀다.

이것 역시 걷잡을 수 없는 호기심만을 잔뜩 키워놓은 채, 아쉽게도 끝나고 말았다.

 

이집트와 에게 해, 교토.

온다 리쿠의 시선이 닿는 지구상의 어떤 곳이라도 곧 SF영화의 배경이 되어버리는 것을 눈앞에서 보게 된다.

다음 단편을 읽으면 보다 확실히 온다 리쿠가 창조한 세상의 성격을 이해할 수 있다.

 

<도쿄의 일기>

간토 대지진 직전이 배경인 영화는, 의자 속에 남자가 있고 그 의자 위에서 남녀가 정사를 나눈다는 내용이었다. 일본의 저명한 미스터리 작가의 단편이 원작이라는데...-266

 

나는 일본의 자동판매기가 영 불편하다. 꼭 로봇 같은 게 인격이 느껴진다. 괜히 뿅뿅 소리를 내면서 불빛은 깜박이지 (도쿄는 점멸을 좋아하는 것 같다.), '감사합니다' '이후 세 시간 뒤 날씨 흐림' '뜨거우니 주의하세요'하고 말을 걸어온다.(...)

이윽고 그들은 서로 연락해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정보를 주고받아 단일한 의식을 갖게 되지 않을까.-275

 

벚나무 숲에 피의 비가 내린다.

일본 문학작품의 제목이 아니다. 실제로 벌어진 사실이다. (...)

귀신 가면을 쓰고 긴 기모노를 입은 여자가 춤추고 있다.

피리와 북을 든 작은 동물들이 발치를 달려간다.-279

 

비행기에서 친구가 준 꾸러미를 풀어보니 색색의 예쁜 별사탕이 나왔다.

조그만 분홍 별을 살며시 입에 넣었다.

은은한 단맛과 함께 하나의 우주가 입 안에서 팡 터졌다.-295

 

 

 

 

어느덧, 나는 팔랑팔랑 가볍게 날개를 펄럭이며 온다 리쿠가 펼치는 세상을 가볍게 내려다보며 날아다니는 나비가 되었다.

내가 나비인 것인지, 나비가 나인 것인지.

현실과 환상을 구분할 수 없게 만드는 시간 동안 그야말로 푹~ 빠져 있었다.

온다 리쿠의 [나와 춤을]을 읽는 동안, 세계는 조금씩 움직였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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