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가득한 시,서,화 [그리움은 언제나 광속]
시인의 감성을 따라가기는 언제나 버겁다.
시인은 풍경을 읽는 자가 아니라 풍경
속의 일부가 되어 풍경과 나란히 걷고 있는 자
라고 밝힌 김주대 시인.
그 말 앞에 또 한 번 겸손하게 고개 숙일 수밖에 없다.
허투루 보아 넘기는 풍경 하나에서 의미를 건져 올리고
그 의미를 똑똑 두드려 맑은 편경 같은 울림을
전달하는 시인.
시 한 수에
상상을 보태어
머릿속에 그려보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시서화가
황홀하리만치
풍부하게
펼쳐지는
책을 보는 것도
참. 좋다
먹의 번짐 하나만으로도
기가 막힌 풍경을 연출할 수 있다니..
달의 지평선에 지구가 뜨면
어느 날 나는 거기 있을 것이다
그림을 보고 글 한 줄 읽었을
뿐인데
내 몸 가득 묵향이 번지고
아름다운 말들이 스며든다.
요즘은 손글씨를 많이들 선호한다.
키보드로 찍어눌러 탄생한 글자들은
종류가 많고 다양하긴 하지만
왠지 글쓴이의 감정이 쏙 빠져버린 듯
알맹이가 없는 것 같이 보인다.
내 온전한 마음을 담아 꾹꾹 눌러쓴
손글씨가 그리워지는 요즘.
연필보다 펜이나 만년필
그보다는 붓.
작은 감정의 기복 하나도 다 담을 수 있어서
선 하나 그어도
그을 때마다 다른 맛이 느껴지는
그 붓의 맛과 멋을
이 책에서 미치도록 맡았다.
<죽음>
그 한 번의 경험을 위해
목숨을 바쳐야 하는
죽음은
가장 위대한 통찰
가장 먼 탈출
-170
마음의 소를 찾아 여행을 떠나라고 권유하는 듯.
우연히 맞아떨어진 "봄"이라는 같은 시간에
나는 무엇을 찾아 떠나볼까.
빌딩 꼭대기에서 연푸른 새싹을 찾아가는 소의 마음을 헤아려 볼까나.
무엇보다 싱숭생숭해지기 쉬운 봄에
내 마음 한자락을
꽉 붙잡아주는
시,서,화
묵향 가득한 시, 서, 화를 찬찬히 넘겨 보며
참으로 호사스러운
봄날을 즐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