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선화에게 - 정호승 시선집
정호승 지음, 박항률 그림 / 비채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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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한 자락에 '해우(解憂)' 하다 [수선화에게]

 

 

예전에 학교 앞에 <차밭골>이라는  전통 찻집이 있었다.

 

바람결에 얻어 들은 문자 하나 있었으니

풍다우주  (風茶雨酒)라 하였다.

바람 불면 차를 마시고 비가 오면 술을 마신다.

 

그 말을 금과옥조로 여기고 바람이 불면 발길을 <차밭골>로 돌리곤 했었다.

무슨 세상 고뇌를 다 짊어진 것도 아니면서 괜히 '서시'처럼 이마를 찌푸리거나 얼굴을 어둡게 하고서 쓸쓸히 거닐어 보고 싶어지는 바람 부는 날.

전통음악 흘러나오는 전통찻집에 앉아 쪼르르 녹차를 따르며 근심거리를 풀어냈다.

차를 많이 마시면 뒤따르는 고통이 있었으니 ~

마시는 족족 아래로 내려오는 신호 때문에 화장실을 자주 들락거려야 하는 것이 그것이었다.

<차밭골>의 화장실에는 절집에서나 볼 수 있었던 "해우소(解憂)"라는 팻말이 정갈하게 쓰여 있었다.

근심 걱정을 풀어내시오.

차를 따르며 그 맑은 소리에 귀기울이느라 한 번, 차를 마시느라 생기는 근심을 버리러 가느라 또 한 번.

 

 

정호승의 시선집 [수선화에게]를 읽으며 해우소(解憂)가 떠올랐다.

4월이라 봄이 한창 무르익어야 할 때인데 이상하게 바람이 불어 봄날의 흐뭇함을 만끽하지 못하고 우울 모드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요즘이다.

박항률의 어딘지 모르게 고요하고 너무나 정적인 그림들이 곁들여진 시집은 어느 곳을 펼쳐도 그 곳이 바로 해우소가 된다.

쭉 늘어선 제목을 훑어내려가다가 마음이 머무는 어느 하나를 콕 집어 그 페이지를 펼치면 금세 그 시가 불러내는 정경에 사뿐 발을 내딛게 된다.

 

 

 

 

미안하다

너를 사랑해서 미안하다

 

 

이 한 마디 외에 더 무엇이 필요하랴.

누군가에게 한없이 미안해지는 날,

이렇게 되뇌어 보리라.

 

 

외로움의 실체는 손에 잡히지 않는데

그 외로움이란 것이 미치는 파장은 여간 큰 것이 아니다. 

그 외로움이란 놈을 

물안개 자욱한 물가에 핀 수선화 바라보며

이렇게 이렇게 어루만질 수도 있구나.

 

산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는데...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는데...

 

헛헛함을 무엇으로도 달랠 수 없을 때

정호승 시인의 시가 내게로 와서

해우소가 되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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