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다 리쿠가 초대하는 이상한 나라 [불연속 세계]
온다 리쿠는 맥주 애호가. 나는 온다 리쿠 애호가.
온다 리쿠가 그려내는 세계는 분명 현실이지만 꿈과 같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만나는 이상한 세계를 어른이 되어서 만나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책의 표지에서 보이는 것처럼, 모자를 눌러 쓰고 다리를 아래로 늘어뜨린 채 앉아 있는 저 시커먼 사내는 앨리스의 세계에서나 볼 수 있었던
체셔고양이나 험프티 덤프티를 연상시킨다.
나무 위나 담 위에 걸터앉아 있는 것이 그렇고 평범한 감각으로 느끼기에 "이상"하다는 것이 그렇다.
어딘지 모르게 음울하고 기괴한 분위기가 좀 더 짙다는 것이 다를까.
온다 리쿠가 펼쳐보이는 이야기를 액자라 한다면 꼭 저 표지와 같이 액자의 위 쪽에 저 음습한 사내가 앉아서 지켜보고 있을 것만 같다.
이 책 이전에 [달의 뒷면]을 읽은 것이 올바른 수순이었을까.
[달의 뒷면]에는 물의 도시 야나쿠라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의문의 실종사건을 풀기 위해 꿈같이 이어지는 수로의 마을에 초대된 쓰카자키 다몬이
등장하는데...
다몬이 등장하는 중편만을 따로 묶은 것이 이 책이다.
어딘지 모르게 몽환적인 분위기의 다몬.
현실 속에서 분명 대형 음반사 프로듀서로 일을 하고 살고 있음에도 그의 정신은 어디 다른 불연속 세계와 잇닿아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보통 사람이 볼 수 없는 것을 보고, 평범하지 않는 것에 묘하게 잘 공감하는 사람.
첫 번째 이야기 <나무 지킴이 사내>는 온다 리쿠가 늘 산책하곤 하는 천변에 있던 집을 모델로 쓴 이야기라고 한다. 이야기 속에
등장했던 꿈도 작가가 직접 꾸었던 꿈이라고.
온다 리쿠의 머릿속이 갑자기 궁금해졌으나, 내가 그런 꿈을 꾼다 한들, 이렇게 몽환적인 소설을 쓸 수 있을 리가 없다.
현실에 닿아 있으면서도 어딘가 다른 세계로 훅~ 빠져들어버리게 될 것만 같은, 온다 리쿠 특유의 분위기 때문에 온다 리쿠를 놓을 수 없다.
그 순간 다몬은 공기가 물렁하게 일그러진 듯한 착각이 들었다. (...)
노인이 느닷없이 히죽 웃었다. 지금까지의 품위 있는 얼굴이 거짓인 양, 그야말로 입이 쭉 찢어진 것 같은 불길한 웃음이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얼굴이 해골처럼 칙칙한 색으로 변하고 움푹 꺼진 안와가 보인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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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런 놀랄만한 장면의 전환이 그야말로 물흐르듯이 전개되기에 이상한 나라를 그려내는 온다 리쿠의 능력은 특출나고 또 그만큼 탁월하다.
이 작품집의 첫머리에서 만난 나무지킴이 사내의 이미지가 끈질기에 뇌리에 들러붙어 있어서 이 책을 다 읽는 동안, 다몬이 만나게 되는
이야기마다에는 그 남자의 이미지가 그려진다.
<악마를 동정하는 노래>는 <글루미 선데이>처럼 음악을 들으면 죽고 싶어지는 저주받은 노래가 있다는 말을 듣고
"세이렌"을 찾아나서면서 이어지는 이야기다. 꽃이 아름다운 절들을 돌면서 세이렌이 불렀다는 <산 소리>를 듣고 가사에 의문을 품은
다몬. <산 소리>가 죽음의 상징이라는 데에 초점을 맞춰 세이렌의 정체를 찾아나선 다몬은 뜻밖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당신은 세간에 속하지 않습니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아요." 그 사람은 다몬을 믿고 이렇게 말하며 이야기를 해주었지만, 글쎄 어째 다몬을
이렇게 꿰뚫어 본 그 사람의 말 덕에 다몬의 존재가 더 으스스해진다.
<환영 시네마>는 영화 촬영 장면을 보고 나면 꼭 주위에서 아는 사람이 죽었다는 남자의 이야기이다. 빨간 개, 8밀리 필름,
낫을 든 아이. 세 사람의 상처. 드문드문 드러나는 과거의 편린들을 주워 모으다 보면 꽤 오싹한 진실에 마주하게 된다. 짧은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좋을 것 같다. 아주, 뒷부분의 반전이 끝내준다.
마지막 <새벽의 가스파르>를 읽으면 검은 사내의 감시를 받는 듯한 상황 속에서 내내 다몬이 펼치는 이야기를 읽다 문득 궁금해지곤
하는,,,다몬은 어떤 사내인가? 에 대한 답이 떠오른다.
밤의 열차 차창에 데스마스크처럼 떠오르는 얼굴을 쳐다보며 인생을 열차의 궤적과 오버랩시키는 다몬. 다몬과 친구들은 내일 아침 도착할
다카마쓰에 사누키 우동을 먹으러 가는 길이다. 자판기 에서 맥주를 한가득 뽑아서 밤을 샐 예정이다. 야간열차 객실에서 연필을 굴려 제비뽑기를
한다. 그들은 순서대로 무서운 이야기를 한다. 꽤나 운치 있는 여행인 것 같아 언젠가 따라 해보고 싶어진다. 하지만 여기에서 포인트는 "무서운
이야기."
이 이야기가 끝날 무렵에는 그들이 했던 이야기보다 진짜 무서운 "진실"이 기다리고 있다.
<새벽의 가스파르>를 읽으면 이 책을 처음부터 다시 읽어보고 싶어진다.
다몬을 알고 싶어 책에 바짝 다가들었는데, 진짜 다몬은 맨 마지막에 나오니 말이다.
야간열차를 타고 가면서 맥주를 홀짝이며 이 책을 읽으면 맥주의 차가움보다 더 서늘하고 오싹한 기운을 한껏 느낄 수 있을 텐데.
현재 선라이즈 세토와 선라이즈 이즈모의 자판기에는 소프트드링크밖에 없으니 애주가 독자들은 승차하기 전에 술을 사둘 것을 권한다는 온다
리쿠의 조언이 반짝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