썼다 지워도 가슴에 남는 시 [시인 동주]
지나간 시간은 추억 속에 묻는 것인가.
추억도 추억 나름이지,
주권 잃은 나라에서 숨쉬는 지식인의 한사람으로서
자신의 기억 속에 아로새긴 참담한 풍경들을
그는 차마 외면하지 못했다.
부끄럽다 참회 하며 썼다 지우고 썼다 지웠을 수많은 시들.
무엇을 그리 고민하고 괴로워하며 한숨 지었을지...
그가 남긴 시들은 명료하게 말하고 있다.
그는 갔지만 그의 시들은 아직도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있다.
말간 표정과 맑은 마음으로 시를 적어내려가던
해사한 용모의 동주는 쉽사리 잊히지 않는다.
그를 기억하던 벗들에게도 동주는 잊을 수 없는 사람이었나 보다.
동갑내기 사촌지간이었던 몽규와 함께 경성에 첫발은 딛은 동주는 잘 알려진 것처럼 연희전문 문학부에서 수학했다.
늘 단짝으로 붙어다니던 동주와 몽규는 간도 용정 사투리를 쓰는 것이 비슷했지, 다른 면은 확연히 차이가 났다. 활달하고 언변이 뛰어난
몽규, 조용하고 말이 없던 동주.
중앙 일간지 신춘 문예에 몽규가 떡하니 당선된 것에 자극을 받아서였을까,습작노트를 본격적으로 쓰게 된 동주는 계속 시를 썼지만 몽규는 임시
정부 군관 학교로부터 은밀한 제안을 받아 독립 운동에 뛰어들게 된다.
힘 없는 나라의 지식인으로서 문학의 본질, 문학의 나아갈 길을 끊임없이 고민하던 동주는 시에 있어서도 변화의 과정을 거친다.
죽음에 이르는 병과 같은 절망의 끝에 결국 동주는 닿아 본 것일까. 끝없이 빠져드는 깊은 늪 속을 허우적거리다 마침내 바닥까지 내려갔을
때, 거짓말처럼 고요히 몸을 떠오르게 하는 부력의 그 순간을 느낀 것일까. 동주의 새로운 시는 맑고도 담담했다. -161
연희 전문을 다니며 엷은 연정을 느끼기도 하고, 꽤 긴 산책을 즐기기도 했던 동주의 인간적인 모습이 세밀하게 그려지고 있는 가운데,
휘파람으로 곡조를 흥얼거리거나 부드러운 테너로 노래를 부르던 동주가 떠올랐다. 예술에 관심이 많고 음악을 좋아했던 하숙집 주인 덕에 북국의
침엽수림에서 불어오는 겨울바람 소리를 머금은 러시아 음악가의 레코드판을 듣던 동주에게도 그렇게 빛나던 찰나의 순간이 있었다. 스쳐지나가는
눈웃음과도 같은 젊은 날의 한순간이 있었다.
동주는 그동안 쓴 시를 모아 열 여덟 편의 시를 묶었다. 졸업 시집의 제목을 '병원'으로 하려 했으나 서문을 대신해 쓴 짧은 글이 한 편의
시 같기도 하여 오늘날 "서시"로 불리우고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을 읽고 알게 되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일본으로 유학을 떠난 동주는 몽규와 자주 어울려 다니다 치안 유지법 위반으로 기소되었다. 바닷가 후쿠오카 형무소에 갇혀 시도 빼앗기고
모국어도 빼앗긴 동주는 하루종일 노역에 시달리면서 점점 멍한 눈빛이 되어 갔다. 감옥에서 알 수 없는 주사를 맞은 후로부터 점점 기력이 쇠한
그는 결국, 광복을 눈앞에 두고 꽃다운 나이에 유명을 달리했다.
해방 이후, 동주의 벗 처중 등은 동주의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펴냈다.
일본에 붙어 호가호위하던 사람들이 판을 치는 문학계에 동주의 시집은 묵직한 울림을 던져주었을 것이다.
우리말로 된 우리 시.
가슴 속에 울분과 처량함을 담고 살았을 사람들에게 맑은 의지를 심어주었던 시.
스스로는 부끄럽다 하였지만 결코 부끄럽지 않고 되뇌어 보면 슬프고 아름다운 시를 남기고 시인 동주는 떠났다.
하지만 동주는 아직도 우리 가슴에 남아 있다.
썼다 지워도 가슴에 남는 시를 썼던 시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