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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엔 돌아오렴 - 240일간의 세월호 유가족 육성기록
416 세월호 참사 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 엮음 / 창비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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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돌아오지 않는 이름들 [금요일엔 돌아오렴]

 

유난히도 거센 꽃샘 추위가 며칠간 밀어닥쳐 봄기운이 오시는 발걸음을 주춤거리게 만든다. 봄님이 오시려는 것은 누구도 막을 수 없고 언젠가는 오게 마련인 자연의 섭리다. 봄이 꼭 오고야 말리라는 기대 때문에 옷장 속에 넣어둔 두툼한 겨울 옷을 다시 꺼내 입어도 몇 번 구시렁거리다 마는 것이다.

"희망"이라는 것은 그렇게 봄기운처럼 두둥실 몸과 마음을 들뜨게 한다. 비록 꽃샘추위같은 시련이 닥쳐도 금세 지나가고 말 것이기 때문에 오슬거리는 어깨를 양손으로 꼭 껴안고도, 높게 올려 세운 깃이나 목도리 사이로 목을 구겨넣고도 눈동자에 어리는 기대감을 감출 수 없다.

하지만 이제 여기에 "희망"이라는 말을 감히 꺼내기가 힘들 정도로 어려운 싸움을 해 나아가는 단원고 학생들의 부모 앞에서는...그래, 차라리 계절의 변화를 느끼는 내가 비인간적인 사람이 되고 만다.

 

작년 4월 초, 지금처럼 꽃샘추위는 사라지고 한껏 봄기운을 머금은 날씨에 우리 가족은 제주로 떠났다. 시작과 끝이 모두 행복하리라는 순진한 생각을 품고서.

제주는 풍성한 먹을거리를 아낌없이 내주었고 풍성한 바람과 아름다운 자연을 자랑했다.

제주의 푸른 바닷가는 봄인데도 불구하고 어쩌면 여름을 미리 머금은 듯 짠맛의 소금기를 어서맛보러 들어오라며 쨍쨍 내리쬐는 햇볕을 선사하기도 했다.

마침 수학여행 기간이었는지, 가는 곳마다 한무리의 학생들이 재잘대며 떠드는 소리가 내내 우리를 따라다녔다. 용눈이 오름이며 용머리해안까지... 제주 아주머니들의 당최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과 아이들의 시끌벅적함이 그렇게 잘 어울릴 수가 없었다.

기분 좋은 추억을 잔뜩 안은 채 김해공항에 도착했는데, 공항 대기실의 거대한 TV화면에는 "영화인가?" 싶을 정도로 믿을 수 없는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다.

"세월호" 침몰 장면.

그 때만 해도 아직 세월호 승선한 사람들 전원 구조되었다는 자막이 주르륵 나오고 있을 때여서 사고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다만, 제주로 수학여행을 가려던 학생들이 탄 배가 침몰되었다는 사실, 그리고 삐딱하게 기울어져 자꾸자꾸 물 속으로 가라앉고 있는 배의 모습이 너무도 기이해서 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 그것만으로 제주여행의 기분좋은 흥분이 싹 가시는 기분이었다.

 

그 다음날부터, 세월호 침몰의 진상이 속속 밝혀지는 것과 함께  수학여행을 떠나는 길이었다는 단원고 학생들을 비롯한 희생자들의 주검이 단지 "숫자"로 새겨지는 과정을 지켜보게 되었다.

어쩌면 나랑 같은 용머리 해안의 풍경을 두 눈에 가득 담고 행복하게 웃으며 돌아올 수 있었을 학생들이었는데...

아침밥을 먹으면서도, 점심, 저녁을 준비하고 입에 넣으면서도 그들의 안타까운 희생을 생각하면 눈물이 어느샌지 모르게 주르륵 흘러내렸다.  내가 만든 밥이 왜 그렇게 짜게만 느껴졌는지.

눈물이 담긴 주머니를 여러 군데 바늘로 쿡쿡 찌른 것처럼, 눈물은 삐죽삐죽 새어 나왔다.

오열하며 쓰러지는 유가족들은 오죽하겠는가마는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나에게도 그 절망의 기운이 옮겨붙어 하루에도 몇 번씩 시무룩한 얼굴을 내보이곤 했다.  

 

배를 버리고 도주한 선장 이하 인면수심의 어른들이 행한 의롭지 못한 행동과는 달리, 아직 어리고 정직한 아이들은 구명조끼를 양보하기도 하고 기울어진 배의 경사면 때문에 떨어지려는 아이들을 서로 끌어올려 주기도 했다.

마지막 순간에 부모님께 남긴 메시지들은 하나같이 전국의 부모 가슴을 크게 요동치게 만들었다.

 

준비되지 않은 이별은 누구에게나 감당하기 힘들 테지만 아직 어리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학생들과의 이별은 그 부모들에게 평생 씻지 못할 상처가 될 터이다.

누구는 더하고 누구는 덜하지 않은 것이다.

남겨진 다른 아이를 위해 마음을 다잡은 부모가 있는가 하면, 트라우마로 힘들어하는 가족을 추스리는 것도 힘겨워 하는 집도 있고, 억울하게 떠나보낸 아이를 위해 간담회에 다니며 스스로에 대한 치유, 잃어버린 것에 대한 저항을 표현하는 부모도 있었다.

작가들이 열 세 명을 인터뷰하는 동안 가슴을 쥐어짜는 듯한 통곡이 몇 차례나 이어졌을까.

가슴 아프게 불러도 끝내 돌아오지 않는 이름들이 점점이 눈물 찍은 발자국을 남기고 돌아선다.

 

그는 증오와 분노, 그리움과 결연함을 넘나들며 감정을 완전히 터뜨렸다가도 다시금 가다듬기를 반복했다. 그가 이 끔찍한 비극에 맞서 어떻게 싸우고 있는지, 그 대단하고 고통스러운 에너지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112

 

준우 아빠가 나와서 하는 말이 가슴부터 팬티까지만 보여주는데 자기 아들이 아닌 것 같대. 믿고 싶지 않은 거지. (...)

준우 엄지랑 검지는 없어졌지만 나머지 손가락은 내가 잘라준 손톱 모양이었어...하늘이 통곡하는 듯했어..-249

 

이 대목을 읽고 또 가슴이 뻐개질 듯 아파오면서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내 자식 아닌데도 부모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말이라 이건, 무조건적으로 울게 되는 거였다.

'아, 이 생생한 고통의 증언들을 이제는 안 읽고 싶다. 내가 도리어 힘들다.' 하며 그만 이쯤에서 책을 덮어 버리고 싶었다. 시각으로 즉각 전달되는 정보인 TV를 보다가 하도 울어서 사고 일 주일 이후에는 아예 TV를 안 틀고 싶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정말 착하고 말 잘듣던 아이들의 부모도 그들을 그리워하며 애통해했지만 부모와 사이가 좋지 않다가, 서로 대치하다가 떠나보낸 아들 딸에 관한 아픔도 크고 후회가 많이 남는다고 했다.

 

남겨진 사람들은 그렇게 추억을 봉합하고 상처를 싸매가면서 저마다의 싸움을 계속하고 있었다.

금요일에 돌아오기로 되어 있었던 아이들이 끝내 돌아오지 않았을 때.

각각의 가정마다 펼쳐졌을 생지옥은 생각만 해도 암담한데 지켜보기만 하던 사람들이 어찌 감히 한마디 "위로"라도 건넬 수 있었을까.

 

 

세월호 특별법이 제정되고 진상규명이 이루어졌다며 세월호 사건을 스윽 밀어버리려는 움직임이 있다. 유가족들은 아이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시스템을 바꿀 것을 요구한다. 정부가 내놓는 대책이라는 것이 유가족의 마음에 100% 들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기댈 수 있는 울타리는 쳐줘야 하는 것 아닌가.

안전불감증에 빠진 사회, 정부가 제 할 일을 다하지 않는 나라.

 금요일에 돌아오겠다던 약속을 끝내 지키지 못한 채 깊고 어두운 바다 속에 수장된 아이들은 '유가족'을 남겼다.

우리도 또다른 형태의 "유가족"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남의 일 보듯 좌시하고 있어서만은 안되겠다.

이 나라의 일원이었다는 것을 후회하게 만들 만큼 " 믿을 구석 하나 없는 것이 대한민국이다", 라는 자각을 하게 만든 이 사건은 잊혀지지 말아야 한다.

꼭 기억해야 한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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