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시간을 수리합니다 2 - 내일을 움직이는 톱니바퀴
다니 미즈에 지음, 김해용 옮김 / 예담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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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도 고칠 수 있다 [추억의 시간을 수리합니다. 2]

 

낡은 서양식 건물에 자리한 시계 수리 가게. 아니, 시계방이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리려나.

주인인 슈지가 벽시계의 태엽을 감아주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 자연스럽다.

 

'추억의 시時  수리합니다'

한구석의 간판에 은색 문자로 새겨진 이 말이 긴장된 마음을 무장해제시킨다.

추억이라는 단어 때문일까.

시계방 주인이 태엽을 감으면 저절로 과거로 돌아가게 되기라도 하는 것처럼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서면 과거의 어느 한 시점을 마주하게 될 것만 같다.

내가 잃어버린 과거의 한 점. 다시 되돌리고 싶어지는 그 시간. 추억을 바꾸어 놓을 만한 뭔가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늘씬하게 쭉 뻗은 시계방 주인을 보자마자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에 나왔던 "바론 남작"이 떠올랐다.

<귀를 기울이면>과 <고양이의 보은>에 나왔던 그 고양이 남작 말이다.

사랑했던 사람과의 슬픈 추억을 안고 있던 고양이 인형이 왜 반짝 떠올랐을까.

반듯한 이미지의 슈지가 한 손에 모자를 쥐고 지팡이를 든 채 깍듯한 예의를 차리며 훌륭한 인사를 선보였던 바론 남작과 닮아서인가...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고양이의 슬픈 눈동자가 사람의 마음과 추억의 시간까지도 꿰뚫어보는 슈지와 닮아서인가.

 

생물을 키우듯 매일 시계 태엽을 감아주거나 꼼꼼하게 오래된 기계식 시계들을 관리하는 슈지와 미용실에서 일하는 아카리는 이제 막 시작하는 다정한 연인이다.

자신의 마음을 내보이기 어색해하는 아카리를 따뜻하게 보살피고 한 발 앞서 배려해 주는 슈지의 러브라인이 2권에서 서서히 진행된다.

 

아카리의 여동생 카나가 쇠락해진 쓰쿠모 신사 거리를 찾아 온 것으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언니 아카리를 찾아 길을 헤매다 카페에 들른 카나는 웬 기모노를 입은 여자와 대화를 나누게 된다. 어지러운 가정사 때문에 가족간의 관계가 정상을 회복하지 못한 면이 카나와 통해서였던 것일까, 낯선 여인은 억지로 카나에게 사연 있어 보이는 시계 보관증을 맡기고 훌쩍 떠나 버린다.  

"받으러 올 거야. 시계는 주인을 선택하거든."

기모노 여인의 사정을 풀어나가는 동안 아카리는 자신 또한 가족 관계의 갈등에서 자유롭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매의 정을 다시금 되살려내게 된다.

현재의 관계는 잊고 있었던 과거의 추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얼마든지 회복될 수 있다는 것을 슈지는 깨닫게 해준다.

 

이어서 동네 과일가게 부부의 러브스토리가 얽힌 딸기맛 아이스크림의 약속, 돌이 되어버린 손목시계, 멈춰버린 괘종시계의 비밀 등. 소소한 인연으로 슈지나 아카리와 이어진 사람들이 토해내는 추억들이 아름다운 잔영을 남기며 슬쩍 슬쩍 떠오른다.

멈추거나 고장난 시계는 시계 주인들이 현재 만족스럽지 못한 상태에 있거나 과거의 일을 후회하고 있다는 뜻으로 비춰진다.

시계라는 물건은 시간을 꼬박꼬박 체크하고 알려주는 기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시계 주인이 시계와 함께 해온 모든 시간을 품고 있는 커다란 블랙홀이다.

시계의 주인이 블랙홀에 겁먹고 다가가기 두려워할 때 슈지는 그 곳으로 저벅저벅 걸어들어가 추억의 덩어리들을 쑤욱 뽑아 내 온다.

슈지가 다시금 그 시절의 추억들을 뽑아 내 오면 사람들은 그것을 곰곰이 들여다보고 어긋난 발자국들을 다시 정리한다.

기계식 시계의 정교한 톱니바퀴가 정확한 시간을 알리기 위해 착착 맞물려 돌아가는 것처럼 현재와 과거의 일들도 원인과 결과가 뚜렷한 것을...

컴컴한 블랙홀의 무리에서 슈지는 시계 주인들에게 필요한 것을 정확히 찾아내서 보여준다.

마침내 가라앉아 있던 "진실"과 "진심"이 떠오르면 사람들의 마음은 망가지거나 멈춘 시계가 다시 재깍재깍 돌아가는 순간의 환희를 느끼며 비로소 과거와 화해한다.

 

세 번째 이야기까지는 용케 참아왔던 눈물이 마지막 이야기에서 터져 버렸다.

너무 늦어버린 건 아닌가, 내내 마음 졸였던 노부부의 이야기였는데

퉁명스런 남편은 다시 한 번 아내에게 용기내어 다가가 주었던 것이다.

 

"단추를 잘못 채운 시간을 이런 식으로 잊고 또 다시 고칠 수 있다니."-311

 

사무에를 입고 염색한 머리에 여러 개의 피어스, 온갖 잡동사니를 매단 은색 목걸이를 한 너덜너덜한 차림의 다이치 또한 톱니바퀴가 빚어내는 "기적"의 순간에 끼어들어 그 순간을 빛내주는 "조연"이다.

이 시리즈가 계속 이어진다면 다음 번엔 다이치의 이야기가 속시원히 공개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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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2-23 1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처음에 책 제목이 `추억의 시간을 추리합니다`라고 봤어요. 어떤 책인지 알고 싶어서 찾아 봤는데 장르가 추리였군요. ㅎㅎㅎ 혹시 이 책 만화입니까?

남희돌이 2015-02-23 1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이트. 노벨 이라고 할까요. 만화는 아니지만 가벼운 추리~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을 보셨다면 이해가 빠를 텐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