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에프오 같은 소설집 [라면의 황제]
유에프오.
미확인 비행물체.
내게 [라면의 황제]의 이미지는 그렇게 비춰진다.
첫 단편으로 실린 <페르시아 양탄자 흥망사>의 이야기에는 사람을 아무 이유 없이 훅 빨아들이는 뭔가가 있다. 페르시아 양탄자의
흥망에 관해 이제껏 관심조차 없었는데, 25세의 김영식이라는 웬 낯선 청년이 집안에 전해져 내려오는 양탄자의 진위에 관해 두 팔 걷어붙이고
나서는 순간부터 급 흥미가 생기기 시작했다.
페르시아 양탄자가 이란 북동부 호라산의 전통 수공예품이라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었던가?
아님 말고.
아부 알리 하산이라는 카페 가게 주인이 우리 나라에 양탄자를 처음 납품한 사람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나?
그러게..그건 좀 궁금한데.
작가가 어디까지 조사해서 얼마나 사실을 밝힐까, 아님 이거 전부 다 허구인 거야?
이런 식으로 작가가 슬쩍 풀어놓은 덫에 확 걸려들어 나 스스로 질문을 던지며 "진실 파헤치기"에 나선다고 착각하면서 다음 이야기, 또 그
다음 이야기로 은근슬쩍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두 번째 단편이 작가가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한 작품, <교육의 탄생>이다 .
이 이야기에선 확실히 덜커덕 걸려버리고 말았다. 작가의 의뭉스런 질문 던지기에.
유리 가가린과 라이카 때문에 불이 지펴진 우주 개척 전쟁에 우리 나라도 한 발 슬쩍 담가놓으려는 시도가 있긴 있었을까. 과연 그러한 시도가
있었다면 누가 그 임무에 적임자일까.
작가는 만 일곱 살에 아이큐가 가장 높은 아이로 소개되었던 어린 최두식을 슬쩍 밀어놓는다.
그 어린 아이, 최두식의 흔적을 따라가며 어린 시절 "국민교육헌장"을 외우며 밑도 끝도 없이 '성실한 마음과 튼튼한 몸으로 학문과 기술을
배우고 익히는' 과정에 휩쓸리게 된 바로 우리의 모습을 냉정한 시선으로 다시 바라보게 된다.
작가는 끝부분에서 그 천재 소년이 <미스테리 월드>의 취재대상이 될 뿐인 이상한 역학관계를 드러내며 화들짝 놀란 채 우리의
현실을 직시하게 만든다.
이거...만만치 않은 내공의 작가인 걸.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다는 말만으로는 부족하다.
이 세상 온갖 확인되지 않은 것들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수법이 뻔하지 않고 언제나 허를 찌른다.
그녀의 상상은 정말이지 유에프오 같은 것이다.
모든 작품은 아니라도 꽤 자주 단편에 등장하는 W시라는 곳은 그저 편의상 붙인 이름인지, 아니면 모두 다 그 곳을 배경으로 벌어진
곳인지조차 헷갈린다.
같은 곳이라기엔 너무 다양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유에프오 같은 그녀의 상상은 기네스북에 오르기 위해 25년간 라면만 먹고 산 남자 '라면의 황제',
<물거울>이란 동화를 보며 호기심을 키워 오다 불사의 유전자 조작법을 발견해냈지만 홀연 사라진 남자, 도시의 상공에 나타나 오색
색종이만 뿌려대다 사라진 유에프오, '프리온'이란 단밸질로 인해 발병하는 병에 대한 음모론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싸이코 등등으로 어지러운 궤적을
그리며 날아오른다.
이번에는 이렇게 허술하게 당했지만 다음엔 정신 단단히 차리고 그녀의 작품을 맞이해야지,
하는 이상한 오기를 불러일으키는 단편집이다.
다음번에는 유에프오를 꼭 붙들어 볼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