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잔한 마음 풍경에 도달하는 미스터리 [꽃사슬]
주말이면 K-POP**오디션 프로그램을 찾아 본다.
다양한 이력을 가진 참가자들이 예선에서 뽑히고 그들 각자의 면면을 부각시키는 히스토리가 매년 탄생한다. 이제껏 보지 못한 새로운 인물들의
신선한 스토리가 탄생하는 순간에는 어김없이 심사위원들의 찬탄이 뒤따른다. "정말 감동적이야. " "쓰러지겠어."
"이제껏 이런 음악은 들어 본 적이 없어."
하지만 매주 시간이 흐르면서 처음의 찬란하게 반짝이는 빛을 잃어가는 참가자들이 속속 등장한다.
그들 또한 어김없이 눈물을 흘리며 쓸쓸히 무대에서 퇴장하게 된다.
그리하여 결국 최종 라운드까지 올라가는 몇 명, 그들만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자리하게 될 것이다.
작가의 경우도 이와 비슷하다 할 수 있을까?
혜성같이 나타나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사람들을 패닉에 빠뜨릴 정도로 엄청난 작품을
처녀작이라 떡 하니 내놓는 작가들이 있다.
사람들이 그들의 다음 작품에 거는 기대는 어마어마하다. 작가들의 스트레스 또한 이만저만 아닐 것이다.
미나토 가나에의 경우도 [고백]이란 작품으로 엄청난 인기를 얻었으며 그 인기는 '미나토 가나에 신드롬'을 일으켰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
이후 속속 작품을 발표했고 지속적인 인기를 증명이라도 하듯 그녀의 작품들은 영화, 드라마를 넘나들었다.
그녀의 전작들 중에 내가 읽은 것은 [고교입시] 뿐인데,
이번 [꽃사슬]은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
작가 인터뷰에서 [고백]으로 서점대상을 받으며 오 년 후에는 [고백]이 아닌 새 작품으로 기억되는 작가가 되겠다는 수상소감을 밝혔다는
미나코 가나에.
[꽃사슬]을 탈고하고 나서 작가인생 제2막이 시작된 듯하다고 말했다.
전작들이 엄청나게 충격적인 사건을 던지고 그 사건을 추적해 나가면서 얼키고 설킨 애증의 관계를 풀어나가는 데 탁월한 실력을 발휘하는 것에
주력했다면, 이 소설은 처음엔 느슨하게 고삐를 풀어놓았다가 끝부분에 가서 바투 쥐고 애잔한 마음 풍경을 펼쳐보이는 데 힘을
쏟는다.
세 명의 여자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말하자면 꽃 (梨花-리카), 눈 (美雪-미유키),
달(紗月-사쓰키)인데,
소설은 각각의 여주인공들이 번갈아 가며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히 말하는 형식으로
이어진다.
리카 梨花 는 K라는, 말하자면 키다리 아저씨 격인 사람으로부터 매년 10월 20일이면 화려한
꽃다발을 선물받는다. 해마다 꽃을 배달해주는 꽃집 주인인 겐타에 의하면 K는 리카의 어머니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부모를 교통사고로 잃은 이후로 외할머니와 함께 살아왔는데 외할머니는 지금 암으로 수술을
앞두고 있다. JAVA어학원에서 영어 강사로 일하다 하루아침에 해고당한 그녀는 생활비마저 막막한 상황에서 수술비 걱정을 하다가 후원자인 K에게
연락해 딱 한 번만 신세를 지기로 결심한다.
드디어 리카와 K의 만남이 이루어지면서 지금껏 베일에 싸여 있던 슬픈 이야기가
드러나는데...
미유키 美雪 는 외삼촌의 회사에서 일하다 가즈야라는 멋진 남자를 만나 결혼한다. 미유키의 외사촌
요스케 오빠는 기타가미 건축 사무소를 만들어 가즈야를 영입한다. 가즈야는 요스케의 일 대부분을 처리하며 능력을 인정받지만 스스로 건축 설계를
하고자 하는 꿈이 있었다. 미유키와 함께 <미명의 달>이라는 그림을 보고서 용기와 영감을 얻은 그는 국립 미술관 설계 도면을 건축회사
사장인 요스케 몰래 제출하고 수상의 영광을 안게 되지만 이상하게도 그 도면의 제출자는 요스케로 되어 있다. 억지 웃음을 지으며 출근한 가즈야는
그날 싸늘한 주검이 되어 돌아온다. 과연 그날의 소나기 계곡에선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미유키는 진실이 궁금하다.
홀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사쓰키 紗月 는 시장 상가에서 미스 아카시아라 불린다. 매향당 화과자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얻은
별명이다. 대학 시절 등산 동아리에 들어 알게 된 선배 고이치를 첫 만남에서 얼떨결에 '아버지'라 부르고 만 그녀는 곧 고이치와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그와 그녀는 알고보니 육촌 남매였고 결국 고이치는 삼각관계를 형성했던 사쓰키의 친구인 기미코와 결혼한다. 어쩔 수 없이 떨떠름한 사이일
수 밖에 없는 사쓰키에게 어느날 기미코가 찾아와 고이치에게 골수를 기증해달라고 부탁한다. 과연 사쓰키는 고이치에게 골수를 기증할
것인가?
팔십 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유서 깊은 가게 '매향당'에서 긴쓰바를 샀다. 한 개에 백
엔. 매화 투각 무늬가 들어간 자그마한 연분홍색 상자에 다섯 개를 포장해달라고 했다. -8
[꽃사슬]의 첫 문장이다. 꽃 이름이 들어간 리카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되는 꽃의 사슬이
매향당의 역사와 같이 팔십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간다. 무섭거나 기묘하다거나 잔혹하지 않으면서도 애잔한 떨림이 있는 미스터리이다. 사슬이란 말의
의미는 갑갑하게 가둔다는 의미라기보다는 무언가가 이어져 있다는 뜻에 가까울 것이다.
사슬의 의미를 푸는 순간, 설. 월. 화.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온다.
꽃향기에 흠뻑 취해 세 여인의 인생을 따라 읽다가 사슬의 연결고리가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하면 이 소설의 진가를 알게 될 것이다.
꽃사슬로 엮인 설월화의 삶이 슬프도록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