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통달한 마음을 비웃어라 [사랑할
시간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이 책은 故 장영희가 여러 라디오 방송에서 했던 '문학 강연' 원고를 정리한 것이라고
한다.
안타깝게도 병으로 떠나면서도 많은 이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었던 그녀가 남긴 글이라서인지 "사랑할 시간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란 제목이
그렇게 쓸쓸해 보일 수가 없다.
"오늘"이란 시간을 충분히 가치 있게 써야겠다, 생각하지만 정신 차리고 보면 어느덧 오늘 하루도 손 뻗어 잡기에는 아쉬운 꼬리만을 남기고
슈욱, 자취를 감춰버린다.
이 책은 하루를 인생에 비유했을 때, 40 살 언저리 쯤의 나절인 정오 즈음에 읽으면 좋겠다.
하루의 한가운데, 타오르는 태양을 머리 위에 얹어 두고서
마음에 점 하나를 찍듯 가벼운 점심을 즐기며
사랑에 관한 구절을 하나씩 곁들이면 좋겠다.
불혹의 나이를 넘기면서 어느 정도 여유롭게 삶에 대한 포용력을 가지고 조금은 호기를 부릴 수도 있는 나이가 되었다는 그녀는 그러면서 불혹을
슬픈 말이라고 했다.
보고 듣는 것에 유혹받지 아니하고 마음이 흔들리지 아니 함.
아름다운 것을 보고 감격하지 않고, 슬픈 것을 보고 눈물 흘리지 않고, 불의를 보고도 노하지 않으며, 귀중한 것을 보고도 탐내지 않는 삶은
다만 허망할 뿐이라고.
그리하여 사랑에 익숙지 않은 옹색한 마음이나 사랑에 '통달'한 게으른 마음을 비웃고 동정하며 열심히 사랑하라고 한다.
나 역시 사랑에 '통달'하고 만 게으른 마음을 가지고 널부러져 있는 건 아닌지.
위대한 개츠비의 "위대함"을 비웃으며 불가능한 사랑을 향해 불나방처럼 뛰어들어 제 한 몸 불살랐던 그를 연민의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는 건
아닌지.
피츠제럴드는 책의 첫 부분에서 개츠비가 '위대한' 이유를 분명히 밝혔다.
삶 속의 희망을 감지할 수 있는 능력
사랑에 실패해도 다시 사랑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능력, 즉 언제라도 사랑에 빠질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는 '낭만적 준비성'
그리고 삶의 경이로움을 느낄 줄 아는 능력
아. 사랑이라는 감정에 게을러진 나를 개츠비의 위대함이 일으켜세운다.
화초에 물을 주면 싱싱함을 되찾는 것처럼, 사랑이란 감정도 날씨와 습도 등을 고려하여 물을 뿌려주면서 살뜰히 챙겨주고 관심을 보여주어야
시들지 않는다.
히스클리프가 폭풍우 치는 언덕에서 바람과 싸우며 마음 속에 쌓아 올렸던 지독한 사랑
가슴 속에 언제나 시가 넘쳐 흐르게 만드는 사랑
병마조차도 물러가게 하여 사람을 살게 하는 사랑
문학 작품 속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랑을 소개하며 오래 전에 내게서 잊혀졌던 "사랑"이라는 것을 환기시켜 주는 이 책은 참
좋다.
한 번도 사랑해 본 적 없는 것보다
사랑해 보고 잃는 것이 차라리 낫다는 것을. -테니슨, 사우보
지옥이란 다름 아닌 바로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 데서 오는 괴로움이다. -도스토예프스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