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이 스며든다. [숨막혀 죽겠거든 철학하라]
아직 인생을 절반밖에 못 살았지만, 인생은 계속 질문을 던지는 일의 연속이다.
그리고 질문을 던졌으면 당연히 답을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답을 얻기 위한 과정은, 휴~, 쉽지가 않다.
수많은 철학자들이 각자의 답을 내놓지만 딱히 와닿는 것은 별로 없다.
설렁설렁 이해한 탓도 있고, 철학이 아직은 너무나 멀게 느껴져서 그런 것도 있다.
문학과 역사는 내 곁에 딱 붙어 있고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는 꽤나 만만한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반면, 철학이란 놈은 쉽사리 다가가지
못하게 항상 숨을 쉭쉭거리며 털을 곤두세우고 있는 예민한 고슴도치 같다고나 할까.
(얼마 전 분양받은 우리집 아치, 도치 두 마리 고슴도치 중에서 어미인 도치가 그렇게 까칠할 수가 없다. 좀처럼 곁을 내주지 않고 털을
눕히는 때를 보기란 하늘의 별따기와도 같다.)
인문학에서는 세 가지 질문을 던진다.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떻게 죽느냐?
진선미의 과제는 인문학의 기본 가치를 탐구해나가는 가장 기본적인 질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기본적인 질문을 항상 가슴에 품고 있기가 상당히 힘들다.
언제나 보다 현실적인 문제들에 이런 본질적인 문제들은 순위가 밀리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어제 신경질을 내던 딸아아이를 다독여주지 못하고 톡톡 쏘아붙인 내 행위를 반성하는 데 하루,
반찬투정을 하는 남편에게 성질을 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 데 하루,
평소 관계가 소원했던 가족이나 친지에게 연말연시 인사는 어떻게 하나 생각하는 데 하루...
어쩌다 인문학에 관련된 책을 손에 잡게 되는 날은, 우두망찰,
일 년 중 "나"를 제대로 돌아보는 날이 몇 일 안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끝이 안 보이는 우울의 나락에 떨어지기 일보직전에 가 있기
일쑤이다.
그러니 더욱더 나를 대면한다는 일을 피하게 되는 게 아닐까.
철학이란 것이 이렇게 가까이 접하기 힘든 것이다 보니, 철학서적을 점점 멀리하게 되고 머리 아픈 질문에 진지하게 파고들 의욕마저 잃게
된다.
그런데, 숨막혀 죽겠거든, 철학하라! 라니.
인생의 순간에서 어떤 고비를 당했기에 숨막혀 죽겠다는 말을 하게 되나?가 먼저 궁금했고, 그런 힘든 고비를 맞이한 사람이 철학을 통해 어떤
경험을 했을까?가 그 다음으로 궁금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저자는 2000년 초에 아버지가 사고로 죽고 이듬해 동생이 자살하는 비극적 운명에 닥치게 되었다고 한다.
겨우 일상으로 돌아오기는 했지만 영혼에 구멍이 뚫린 것 같은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내면을 들여다볼 시간을 갖게 되었다. 나와 대면한다, 는
어려운 숙제를 안았지만 차마 죽을 용기가 없었다는 그는 구걸해서라도 살고 싶다는 처절한 한마디를 남기고 축사 속으로 꾸역꾸역 울음을 삼키며
기어들어갔다.
"모든 것이 이유가 없다. 공원도, 이 도시도, 그리고 나 자신도. 그것을 깨닫게 되면, 속이 메스꺼워지고 모든 것이 요동치기 시작한다.
이것이 구토다."-사르트르, 구토 중에서
자신 앞에 펼쳐진 참담한 운명의 부조리 앞에서 그는 철학자들을 만났다.
쇼펜하우어, 세네카, 사르트르, 프로이트, 헤겔 등등..
죽음의 문제로 방황하던 그 때 그는 쇼펜하우어도 죽음의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아는 순간 위로를 받았다. 그리고 쇼펜하우어의
제자였던 니체의 치열한 삶의 에피소드로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쇼펜하우어의 삶을 부정하는 의지를 삶을 고양시키는 힘으로 바꿔놓은 니체. 저자는 자기와 세계 전체를 긍정하라는 운명에 대한 사랑인
"운명애"(아모르파티)를 만나면서 '한 번 더!'를 외치게 되었다.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 현실 앞에 망연자실 해 있던 저자는 철학을 만나면서 변했다.
삶은 예고 없이 전개된다. 어느 날 갑자기 불행이 들이닥친다. 운명의 수레바퀴를 피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그 운명에 좌절해서는 안된다.
고통스러운 삶이라고 해서 회피해서는 안 된다. 고통스러운 삶을 다시 살라면 기꺼이 다시 살겠다. 고통스러운 삶이 피할 수 없는 나의 운명이고,
이 고통스러운 삶이 반복되어도 기꺼이 살겠다. -115
축사에 쏟아져 내린 폭우로 인해 '실존적' 씻김굿을 경험한 저자는 축사 안에서 2년 반을 생활하는 동안 인문학 책을 읽었다.
극도의 절망 앞에서 희망으로 다가온 인문학의 끈을 잡고 다시 살아갈 의지를 다진 그가 쏟아낼 말은 책 한 권으로는 모자라다.
이제 그는 인문낙서 시리즈 1편으로 [숨막혀 죽겠거든, 철학하라]를 펴냈고
인문낙서 2권 [어느 낙서가의 인문학 공부]
3권 [결혼에 관한 문사철 스토리텔링]을 펴낼 예정이다.
그 어떤 철학책들보다 현실적으로 와닿는 체험이 함께하기에 절박한 심정에서 받아들였을 철학자들의 어록들이 그다지 낯설지 않게 느껴졌다.
밥이 밥공기에 가득해도 숟가락질을 해서 입에 퍼넣어야 피를 돌리고 근육을 지탱하는 힘이 생기는 것처럼, 널리고 널린 철학 서적을 읽어도
아무 감흥이 없다면 내게는 그냥 백지와 다를 바가 없다.
저자의 경험처럼 내게 고비가 닥친 다음에 철학에 심취하게 될까, 걱정했지만 간접체험이라도 내게 훅 끼쳐드는 영향이 미미하지 않으므로 철학의
자양분이 살짝 스며드는 것 같다.
아직 푹 젖어들려면 멀었지만 이 책이 가지는 장점이 확실히 내게는 약이 되는 것이리라.
철학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결코 쉽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개인적 체험을 바탕 위에 철학자들의 훈김을 쐬는 동안 철학이 서서히 스며든다.
네가 다시 태어나기를 영원히 바랄 수 있도록 그렇게 살아라!-니체
숨막히는 현실에 맞닥뜨렸을 때, 이 한 마디라도 가슴에 품고 있다면 숨통이 트일 것을 믿으며, 철학이 서서히 스며드는 이
책을 덮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