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항설백물어 - 항간에 떠도는 백 가지 기묘한 이야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2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금정 옮김 / 비채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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짤랑! 어행봉위!  [속 항설백물어]

 

항간에 떠도는 백 가지 기묘한 이야기

 

굼실굼실, 어둠이 움직였다.

드륵, 하고 문이 열렸다. 그 순간...

후욱, 사방등에 불이 들어왔다. 희미하게 행자두건이 떠오른다. 마타이치다.

(,,,)

마타이치는 그렇게 말한 후 짤랑, 하고 요령을 울렸다.

<노뎃포 중, 39>

 

항설백물어에서 잊을 만 하면 나오는 후렴구 같은 문구가 바로 마타이치가 요령을 울린다는 표현이다.

이 문구가 나오면 기묘한 이야기 속에 푹 젖어 있다가 흠칫, 몸을 떨며 내 몸이 현실에 속해 있음을 다시금 실감하게 된다.

교고쿠 나츠히코의 항설백물어,는 모두 2권으로 된 시리즈물이다.

(교고쿠 나츠히코가 [항설백물어]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 [후 항설백물어]로 제 130회 나오키상을 받았다, 고 작가소개란에 쓰여 있지만, 우리나라에는 두 권이 전부다.)

귀신이야기를 물어물어 얻어들으러 다니는 모모스케가 괴담을 찾아 돌아다니며 얽히게 되는 사건들을 단편 형식으로 싣고 있지만 연결해서 보면 하나의 거대한 서사가 된다.

전작인 항설백물어를 읽을 때만 해도 그저 단편집이겠거니, 했고, 궁금한 인물이 있어도(산묘회의 오긴, 요령을 울리고 여운을 남기며 사라지는 마타이치 등) 캐릭터가 그러려니 하면서 과거를 캐낼 일이 이어지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후항설백물어]에서는 산묘회의 오긴과 마타이치의 과거가 밝혀지고 꽤나 질긴 인연으로 이어져 있음을 알게 된다.

 

 여러 지방의 괴담을 탐문하고 수집하는 것을 더없는 즐거움으로 삼고 있는 모모스케는 언젠가 백 가지 괴담을 모아 책으로 엮어낼 생각으로 일본 각지를 여행하고 있다.

여행길에서 일명 잔머리 모사꾼으로 불리는 마타이치, 산묘회의 인형사 오긴,신탁자 지헤이를 만나 독특한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사건에 휩쓸리게 되는데, 그 초반의 이야기가 [항설백물어]에 그리고 [속 항설백물어]에서는 방랑무사 우콘, 고에몬 등의 인물이 더해지면서 본격적으로 등장인물들의 관계도가 그려진다.

뭔가 특이한 이력을 지닌 듯한 신비한 여인 오긴의 과거가 밝혀지면서 이들이 맞물리는 사건들이 자꾸만 연결되는 것이 앞의 [항설백물어]와는 또다른 재미를 선사한다고 하겠다.

 

사람의 마음은 참으로 이상하여 무언가 맺힌 것이 있으면 그것이 풀릴 때까지 번뇌와 괴로움에 시달린다.

악행을 저지른 이도, 마음의 상처를 받은 이도, 어떤 일을 계기로 하여 그 응어리를 풀어야만 편안한 마음에 이를 수 있다.

현대에는 정신과적 치료를 통하여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다고는 하나, 여전히 점집을 찾거나 무당을 찾아가 푸닥거리를 하고 굿을 하는 등의 행위를 통해 마음의 짐을 날려버리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보면 딱딱한 의학적 치료료는 해결되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쉽사리 풀리지 않는 그 무언가를 누군가는 종교를 통해, 누군가는 무속 신앙을 통해 풀려고 하는데, [항설백물어] 속 일본의 시대 배경에서는 "어행봉위" 를 행하는 이의 한 판 잘 짜여진 무대를 통해 해소하는 방법이 소개된다.

그야말로 마술처럼, 멋들어지게 사람들의 눈을 속이는 데 이용되는 것이 바로, 그 시대에 통용되었던 민간전승 이야기였다.

 

노뎃포-북녘의 심산에 있는 짐승으로 사람을 보면 박쥐처럼 무언가를 뿜어내 눈과 입을 막고 숨을 멎게 하여 사람을 잡아먹는다고 한다.

 

고와이-고와이는 아만과 아집의 다른 이름으로 세간에서 말하는 무분별자다. 살아서는 법을 거들떠보지 아니하고 남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남의 것을 빼앗아 먹으며 죽어서는 망념 집착의 마음을 끊지 못하고 무량의 형상으로 나타나 불법세법을 방해한다.

 

이런 식으로 민간전승이 소개되면 이 이야기를 모티프로 한 사건을 한 판 멋들어지게 짜서 그야말로 그 사건이 진짜인지, 귀신의 짓인지 고개를 갸웃하게 만들 정도로 사람들을 눈속임한다.

교고쿠 나츠히코 식의 "별스러운 연극"은 실로 내 마음에 쏙 든다.

모모스케 조차 의도치 않은 상황에서 연극에 끌려들어갔지만 나쁜 역할을 맡는 것은 언제나 악한 사람들 뿐. 죄를 지어 벌을 받아 마땅한 이들에게 벌을 내리고 양심의 가책을 받고 있는 이들에게 그 가책을 덜 수 있는 기회를 주며 법의 그물망 안에서 해결할 수 없는 일까지 말끔하게 해결하는, 이 기가 막힌 "연극"을 읽으며 어찌 빠져들지 않을 수 있겠는가.

 

때로는 기가 막힌 연출에 찬탄을 금치 못하겠고 때로는 악한들의 최후에 고소해하며, 때로는 느닷없는 안타까운 결말에 눈물도 흘린다.

전작 [항설백물어]보다 더 강력해진 기묘한 미스터리를 선보이는 [속 항설백물어]

기다리고 기다리다 때를 놓쳐 너무 늦게서야 만나게 된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짤랑! 어행봉위!

이젠 현실로 돌아올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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