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손 밀리언셀러 클럽 104
모치즈키 료코 지음, 김우진 옮김 / 황금가지 / 2014년 9월
평점 :
절판


글쓰는 사람이라면 이런 것을 원할까?[신의 손]

 

1. 그림을 잘 그리는 손  2.  요리를 잘하는 손 3.  조물락조물락 무엇을 잘 만드는 손 4. 곧게 뻗은, 가늘고 예쁜 손  5.글을  잘 쓰는 손.

 

이 중의 하나만 나에게 허락된다면 지금의 나는 망설임 없이 글을 잘 쓰는 손을 택할 것이다.

그 손만이 나에게 있어 "신의 손"이라 일컬어질 것이다.

 

그런데...

이 책 [신의 손]에서는 4번과 5번을 겸비한 "신의 손"을 가진 인물이 나온다.

기스기 교쿄.

스스로 창작한 작품 [녹색 원숭이]에 나오는 녹색 원숭이처럼 도저히 이 세상에 있을 것 같지 않은 그녀는 필력이 대단한 사람이었다. 악마적이라 할 정도로 강렬한 의지의 눈빛을 뿜어냈고, 그녀를 본 남자들은 누구랄 것도 없이 단번에 매료되고 만다. 7년의 세월을 소설에 바쳤고 막대한 양의 저작을 남겼지만 어느날 홀연히 사라져버렸다. 그녀가 남긴 원고뭉치는 1만 5000매 정도. 원고를 본 사람들은 한결같이 그 원고에서 박력이 느껴졌다고 했다.

 

그로부터 3개월 후 어느 문학상 시상식장에서 [꽃의 사람]이라는 작품으로 수상의 영예를 안게 되는 작가가 나타난다. 사람들은 그 작가의 실력으로는 어림도 없을 작품이라며 표절, 혹은 도작이라고 수군거렸지만 출판계의 생리상, 누구 하나 앞장 서서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터뜨리려 하지 않았다.

 

한편 한 저널리스트는 고베 연쇄유아유괴 사건을 좀더 확실히 파헤쳐 보겠다며 3년이나 지나 지금은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일에 열성을 보인다. 모두 네 건의 유괴 사건인데 피의자는 앞의 세 건을 인정했고 아이들도 다들 돌아왔으나, 아직 돌아오지 않은 네 번째 아이의 경우 피의자가 부인하고 있다고 했다. 유일한 목격자 증언으로는 작은 아이 앞에 상냥이 몸을 굽히던 여성 한 명이 있었다고 했다. 손가락이 무척 아름다운 여성이었다고 한다.

 

[꽃의 사람] 도작 사건과 유아 연쇄 사건이 어떻게 연관되는지를 내내 궁금해하며 책을 읽어나갔다. 간간이 기스기 교코가 써 냈던 작품 구절이 인용되고 있는데 특히 [녹색 원숭이], [자살하는 여자]라는 작품이 언뜻 언뜻 비춰지면서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던져준다.

 

[신의 손] 초반부의 전개는 대단히 신선하면서도 사람을 혹하게 하는 부분이 있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만 같은 악마적이면서도 천재적인 필력을 가진 기스기 교코라는 존재를 슬몃 띄워놓고 그녀의 흔적을 따라가는 방식이다. 조금씩 밝혀지는 그녀의 정체는 알면 알수록 소름끼친다. 가늘고 여린 손가락에 현혹되었던 것일까. 나는 천재적 작가의 탄생을 알리는 박력 넘치는 원고 투고 장면에서부터 푹 빠져버려 어느새 그녀에게 응원을 보내고 있었다. 그녀가 훌륭한 편집자를 만나 자신의 작품을 무사히 세상에 내보내기를, 그리하여 그에 합당한 세상의 평가를 얻게 되기를 숨죽여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녀의 인생은 어디서부터 방향을 틀기 시작한 것일까.

 

기스기 교코를 알고 가까이 지내던 사람들은 그녀의 묘한 매력에 푹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구멍을 파놓고 개미를 유인하는 개미귀신처럼 자신의 세계를 완벽하게 창조한 다음 사람들을 자기 세계에 끌어들이는 여자. 상대가 의식하지 못한 부분을 간파해서 매력적인 말로 파고들면 그녀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자신만만하게 가공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신의 손"을 가진 여자. 그녀의 말은 마력을 가지고 있어서 그것을 듣는 사람들은 진리로 여겼지만 그녀에게 있어서는 놀이에 지나지 않았다. 바로 그 사실이 섬뜩한 것이다. 다리를 절고 신경증을 호소하기도 했지만 그녀의 정신 상태는 정상이었고 결코 연약하지도 않았다.

 

결국 사건의 진실을 단번에 꿰뚫어 본 사람은 기스기 교코를 직접 만나 본 적이 없는 저널리스트 뿐이었다.

그녀에 대한 감정의 동요 없이 한발짝 떨어져서 사건을 관망할 수 있는 사람이 적격이었던 것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말이죠, 몸속에 괴물을 한 마리 키우는 것과 같아요. 그건 숙주를 먹이로 삼아 성장하고, 일단 성장을 시작하면 다 먹어 치울 때가진 만족할 줄 모르죠. (...)

자가들은 어째서 자살하는 걸까? 인간으로서 그 괴물을 품고있을 수 없게 된 때, 안식을 얻고 싶은 거에요. 난 지금 거기에 발을 디딘 것 가아요. 바닥 없는 늪이란 것을 알면서도 저항할 수가 없어요.-101

 

악마의 속삭임에 넘어간 작가의 최후를 보게 된 느낌이랄까.

"신의 손"을 가지게 된 대가로는 이보다 완벽한 결말은 없을 듯하다.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다시 한 번 나에게 "신의 손"-글을 잘 쓰는 손을 갖고 싶냐고 물어본다면 "아니오."라고 단호하게 대답해야겠지만...여전히 흔들린다.

단 하루만~ 그 재능을 주십사, 하고 사정해 볼까...

인간의 모든 능력을 일깨우는 알약이 있다면, 이라는 가정에서 시작하는 영화가 있었다.

[리미트리스] 였던가. 잘 써지지 않는 원고로 고민하고 있던 그에게 주어진 알약. 결국 약을 먹고 글을 잘 써냈고 다른 능력 또한 풀가동하여 돈도 벌지만 약을 먹지 않으면 더이상 집중할 수 없다는 부작용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면 안된다.

신들린 듯 작품을 써내려간 그녀가 구축한 논리는 다른 이들을 끌어들여 파괴했을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 또한 야금야금 갉아먹었다.

개미가 고막을 갉아먹는 소리는 본인에게는 천둥소리처럼 크게 울린다고 했던가.

능숙하게 죽음을 다루고 인생을 우롱하고 애정을 깔보던 그녀가 스스로에게 다가오는 붕괴의 조짐을 알아차렸을 때에 바깥을 향해 도움의 손길을 뻗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스스로에게 다가오는 끝을 충분히 감지하고 있었지만 어쩔 수 없이 다가오는 천둥같은 고막 갉아먹는 소리는 양손만으로는 막을 수가 없었다.

기괴하고 섬뜩하면서도 쓸쓸한 결말.

 

 

역시...천재 작가에 대한 꿈은 접는 것이...좋겠다.

나는 아직 흩날리는 벚꽃 사이를 좀 더 걷고 싶고 사랑하는 이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나누고 싶으며 삶의 희로애락을 오래도록 누리고 싶으니 말이다.

 

중반을 넘어서면서 좀 축축 처지는 면이 있고 후반부의 결말이 좀 아쉬운 듯하지만 전반부의 매력과 기스기 교코라는 인물에 대한 호기심이 작품 전체를 뒤덮고 있어서 괜찮다. [신의 손] 안에서 기스기 교코가 썼던 1만 5000천 매에 해당하는 원고 속의 작품, 즉 [녹색 원숭이], [자살하는 여자], [꽃의 사람] 이 실재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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