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장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7
나가오카 히로키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14년 10월
평점 :
품절


'보통' 아닌 경찰 소설 [교장]

 

잠결에 베어문 붕(어)싸(만코)의 맛!

담백한 붕어 껍질 안에 숨겨져 있던 바닐라 맛의 아이스크림이 차갑게 터져 나와 기절해 있던 혀를 깨우면 그 뒤를 이어 콤한 팥이 살며시 밀고 들어온다.

뜨거운 붕어빵에서 맛볼 수 없었던 새로운 맛의 조합이 그렇게 신선할 수가 없다.

 

 

[교장]은  내 혀 위에서 요동치는 붕싸처럼 그렇게 신선하게 내게 다가왔다.

자다 일어나서 졸린 눈을 비비며 붕싸 한 입 먹으며 이 글을 적고 있어서, 라고 절대 말 못한다!! (지금은 밤 11시 40분)

 

더는 새로울 것이 없는 '경찰 소설' 분야라서 고심을 했다는 작가는 도전정신으로 단단히 무장하고 무작정 경찰학교의 졸업앨범을 구해 뚫어져라 쳐다보았다고 한다. 희미하게 등장인물이 그려지자 무엇보다 신선한 경찰소설로 승부를 걸고 싶어졌다는데...그래서인지 무엇보다 인물들이 실제 모델이 있기나 한 것처럼 생동감이 넘친다.

특히나 장소가 경찰학교인 만큼 초임 경관들을 교육시키는 교관으로 등장하는 인물이 꽤 나오는데 그 중에서도 작품 속 에피소드마다 등장하며 선 굵은 자취를 남기는 "가자마" 교관이 인상깊다.

주인공 중의 주인공이랄까.

오십대. 백발. 초점이 흐릿한 의안 같은 눈...

심상치 않은 모습의 가자마는 경찰 학교의 존재 이유 바로 그 자체인 듯, 구석구석을 휩쓸고 다니기도 하고 학생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꿰뚫어 보기도 하면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초임과 98기 단기과정 학생은 처음 41명으로 시작했으나 성적 불량으로 퇴학을 종용당하거나 스스로 자퇴하기도 하는 등의 과정을 거쳐  36명, 35명으로  학생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아무래도 경찰을 동경하는 마음으로 경찰에 입문한 학생들에게 단단히 정신무장을 시켜 일선에 내보낸다는 뚜렷한 목표를 냉정하게 실현하려는 듯 교관들은, 특히 가자마는 학생들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

모두 6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진 이 책에서는 가자마를 중심으로 학생들의 성장기가 펼쳐진다.

 

빡빡한 커리큘럼과 엄격한 교칙, 집단 생활 등을 거쳐 학생들은 "경찰"모습을 갖춰나간다.

필요한 인재를 육성하기 전에 불필요한 사람을 걸러내는 "체"의 역할을 하는 곳. 그것이 경찰학교다.

 

개인 소지품에 이름을 제대로 기입하지 않았을 때엔 따귀 공격

수업 때 졸면 이유를 불문하고 퇴학

면허증 및 휴대전화는 사용 금지

외출은 주말에만 가능

담임 및 교관들이 돌려보는 일기에는 사실만 써야 한다.

(만일 잘못된 기술이 있다면 팔굽혀 펴기로 끝나지 않는다. 밤새도록 기숙사 복도에 무릎을꿇고 있어야 한다.)

단체생활에 필수인 세세한 교칙이 학생들을 옥죄고 때로는 연대책임으로 인한 벌칙도 가해진다.

이런 혹독한 단련을 실시하는 경찰학교에서 98기 학생들은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생명의 은인에 대한 동경으로 경찰을 지원했다가 동기에게 동정심을 발휘한 대가로 생명의 위협을 받은 학생.

약혼자를 죽인 범인에게 처벌을 내리겠다며 경찰에 들어왔으나 범인을 착각한 것을 알고 경찰을 그만두겠다는 학생.

무단외출한 친구의 알리바이를 대주어야 했으나 자신의 벌점을 두려워하여 우정을 배반한 학생.

경찰학교에서의 성적이라는 미끼를 덥석 문 대가로 집단광기를 누그러뜨리기 위한 희생양이 될 뻔했던 학생.

훌륭한 자질을 지녔으나 말벌에 대한 트라우마로 중대한 실수를 저지른 학생.

끝내 자신을 온전히 뒤흔들만한 경험을 하지 못한 채 훌륭한 성적으로 경찰학교를 졸업한다는 이유만으로 교관에게 퇴학을 권고받은 학생.

 

경찰학교 안에서 사고라니, 미스터리라니...

각각의 에피소드들은 따로 떼어 보면 훌륭한 단편 미스터리가 되고 전체로 보면  미숙하기만 했던 학생들이 경찰학교를 거쳐 단단한 경찰로 태어나는 성장 소설이 된다.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가자마 교관한테 찍혔으면 끝난 거야. 절대 벗어날 수 없어. 반드시 간파당할 거야."-89

 

흐릿한 의안으로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가자마는 엄격한 교칙과 집단 생활로도 막아낼 수 없는 개인의 사정을 베테랑 경찰답게 관찰하고 추리해낸다. 경찰의 자질이 없는 학생은 가차없이 걸러내려는 듯 "포기해"라는 말을 서슴없이 던지고 퇴학신청서를 내라는 말을 밥먹듯이 해댄다. 똘똘한 학생을 스파이로 활용한다. 여차하면 고문으로 학생의 자백을 받아낸다. 이건, 뭐 경찰인지 깡패인지 헷갈릴 정도다. 그래도 그가 남긴 명언들 속에서 따뜻한 마음 한 조각을 건져볼 수 있다.

 

"자네에겐 장점이 있어. 잃기엔 아깝다. 계속할 마음이 있다면 목발을 짚고서라도 수업에 나오게."-104

 

"여기는 그래, 체가 맞아. 하지만 그 반대이기도 하지. 교관이 남겨야 할 인재라고 판단하면 일대일로 지도해서라도 남긴다. 여긴 그런 곳일세."-224

 

"사람을 상처 입힌 경험이 있는 사람일수록 사람을 잘 지킬 수 있지. 그런 법이다."-231

 

"배짱이다. 경찰 일을 하려면 배짱을 빼놓을 수 없다. 한계 상황에서 싸워보지 않은 사람은 배짱이 없기 때문에 제일선에서는 무용지물이지. 그만두게 하는 게 본인을 위한 일이야."-269

 

밤 11시 넘어서 다시 일어나야 했던 것은, 당직 근무가 잡힌 경찰 남편을 밤에 출근시키기 위해서이다. 경찰에 대한 로망은 본인 외에 배우자에게도 있다. 왠지 경찰이 멋져 보여~때문에 콩깍지를 뒤집어 쓴 나는...밤에 일어나 남편을 깨우고 달아난 잠을 달래듯 붕싸 한 입 했던 것이다.

지독히 현실적인 경찰의 모델을 매일 보고 있건만도, 신선한 경찰 소설, 특히나 파릇파릇한 경찰학교 시절의 광경을 펼쳐보여 주는 이 책의 인물들은 다시 또 내 맘을 설레게 한다.

"보통" 아닌 경찰 소설, [교장]. 꼭 한 번 읽어보길 강력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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