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를 말하다 - 폴오스터와의 대화
폴 오스터 지음, 제임스 M. 허치슨 엮음, 심혜경 옮김 / 인간사랑 / 2014년 8월
평점 :
품절


왜 글을 쓰는가? [글쓰기를 말하다]

 

가을 바람이 옷깃을 스치울 때는 왠지 트렌치 코트에 어울리는 차림새를 하고 낙엽 위를 거닐고 싶어진다. 봄 탄다, 가을 탄다. 등 계절이 바뀔 때마다 유난히 까칠해지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계절이 바뀌면 옷 한 가지 정도 사는 것으로 묘하게 울렁거리는 마음의 파도를 다스리고 싶어진다. 가을은 역시 버버리~하면서 옷장을 확 열었으나 안에 변변히 받쳐 입을 옷이 없다. 아니, 사실은 여름 방학 내내 아이들과 함께  세 끼 꼬박 챙겨먹고 늦잠을 즐기며 뒹굴거리느라 살이 불어서 맞는 옷이 없다고 해야 맞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잘만 맞춰 입고 다녔던 트렌치 코트에 팔 꿰어 넣기가 왜 갑자기 어려워진단 말이냐. 그걸 몰라서 물어? 팔뚝에 살이 붙어서이지...

 

뻔한 질문에 뻔한 대답이다.

 

괜히 책을 뒤적이며 읽고 난 뒤 정리할 문장을 뽑아 본다.

아무 생각 없이 하루를 지내는 식충이는 되지 말자며 책을 읽고,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리뷰를 쓰고 블로그 활동을 하지만 글쓰기가 좀처럼 느는 것 같지가 않다.

역시, 글쓰기는 내게 있어 맞지 않는 옷인가, 싶다.

옷이 유행따라 변해서 해마다 새 옷을 사야한다는 것은 핑계고 사실은 살이 쪄서 멀쩡한 옷도 못 입게 되었다는 것이 맞는 말인 것처럼.

글쓰기도 애초에 내게는 뱁새가 황새를 좇아가는 격이 아니었나 싶은 것이다.

문학상을 바란다거나 이름을 날리는 리뷰어가 되어 책이라도 한 권 내고 싶다거나 하는 거창하고 원대한 포부를 가지지 않아서인가? 거의 매일이다시피 써대는 리뷰는 내가 보기에도 한심한 수준이다.

욕심만 앞섰지 글쓰기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거나 생각의 깊이와 넓이를 확장시킬 공부조차도 하지 않았으면서...

 

글쓰기에 관한 답답한 마음에 혼자 질문해보았댔자 돌아오는 것은 또한 뻔한 대답이다.

 

폴 오스터는 "글쓰기"를 무엇이라고 생각했을까?

그의 작품을 참, 부끄럽고 민망하게도 아직 한 편도 읽어보지 못했지만 현존하는 최고의 미국 작가라고 하니, [글쓰기를 말하다]에는 속시원한 대답이 들어 있을 것 같았다.

 

자, 그럼 답을 내려주시죠. 짠.

 

"왜 쓰는지는 나도 모릅니다. 답을 알고 있었다면 아마 쓸 필요가 없었을 테니까요. 글쓰기를 우리가 선택하는 게 아니라 글쓰기가 우리를 선택합니다. "-399

 

오호라~ 알 듯 말 듯. 꽤나 내공이 느껴지는 말이다.

장난처럼 읽고 쓰기를 반복하는 나의 글쓰기가 한 단계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내게는 속에서 끓어오르는 "쓰고 싶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글쓰기는 나를 선택하지 않은 것이다.

좌절.

 

이 책은 폴 오스터가 스스로 쓴 에세이가 아니라 인터뷰집이다. 대개 철학적인 성향을 보이는 글을 발표하여, 기꺼이 세상과의 단절을 선택할 것으로 생각되는 작가치고는 인터뷰 횟수가 많았다고 한다. 각자 다른 인터뷰어들이 폴 오스터라는 한 사람과 인터뷰한 내용으로부터 우리는 다양한 각도에 초점을 맞추어 그를 살펴보고  재구성할 수 있다.

폴 오스터는 프리랜서 서평가, 번역가로 생계를 이어가던 시절을 거쳐 자전적 에세이 [고독의 발명]을 쓰고, <유리의 도시>, <유령들>, <잠겨있는 방>을 함께 묶어 [뉴욕 3부작]이라 불리는 소설로 유명해졌다. 픽션, 논픽션, 그리고 3편의 영화대본까지 대단한 필력을 선보이며 작가생활을 영위한 그는 새로 쓰는 책마다 늘 새롭게 시작한다고 한다. 전에는 써본 적이 없는 책을 쓰면서 스스로 방법을 터득해가는 것이다.

 

각각의 책에는 다른 책들과 구별되는 음률이 있고, 바로 끝낸 새 책(선셋 파크)은 내가 전에 시도했던 책들과는 모양새가 다릅니다. 아주 긴 문장이 여럿 있죠. 3페이지나 되는 긴 문장들도 나옵니다. -398

(선셋 파크를 옆에 두고 보니 실제로 긴 문장이 대부분이다. 윌리엄 포크너에 버금가는 긴 문장들이 나를 잔뜩 주눅들게 만든다. 이걸 읽어, 말어? 고민 중.)

 

 

그는 글쓰기에는 왕도가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글 쓰는 법을 가르칠 수 없다고. 자신에게 맞는 것을 찾아야만 한다는데...그 과정이 참으로 어렵다는 것이 아닌가.

 

글쓰기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문제는, 소설이든 비소설이든 '다음 문장은 무엇인가?' 입니다. 온갖 생각이 꼬리를 뭅니다. 이 때 다른 쪽으로 방향을 틀 수도 있죠. 내게는 주제에서 벗어나 엉뚱한 곳으로 빠지려는 경향이 있어요. 내게 글쓰기가 힘들게 느껴졌던 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가야 할 길을 아는 것. 모든 갈등은 여기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래서 한 단락을 쓸 때도 그토록 많은 시간이 걸렸던 겁니다. -186

 

폴 오스터는 남달리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작가로,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오렌지 주스 한 잔, 홍차 한 잔을 마시며 45분 가량 뉴욕타임스를 읽고는 집필실로 향한다. 오직 세 사람만 전화번호를 알고 있는 곳에서 매일매일 일한다. 한 번에 한 단락을 쓰고 다음 이야기를 이어간다. 수차례에 걸친 수정 작업도 병행한다. 처음 몇 년 동안, 기껏해야 하루에 한두 단락 을 쓰던 때도 있었다....로 유명한 작업 방식은 인터뷰 내내 수시로 등장한다.

만년필이나 샤프펜슬로 페이지를 채워 나가면서 느끼는 고적함을 사랑하고 올림피아 타자기로 정서한다.

왜 글을 쓰는가, 어떻게 쓰는가에 대한 궁금증이 조금 사그라들 무렵에는 인터뷰어의 질문 사이사이로 폴 오스터의 민낯을 볼 수 있다.

감추어진 기억, 트라우마, 어린 시절의 깊은 상처들...로부터 소설이 시작된다고 말하며 열 네살 때 여름 캠프에 참가했을 때 번개가 철조망에 떨어진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기억이 소설을 쓰고 나서야 떠오른 경험이 있다고 털어놓는다.

자신의 작품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건 전통적인 스토리텔링 방식인 구비문학 형태의 동화-그림 형제의 동화, 천일야화-였다고도 했다.

폴 오스터-빔 벤더스-페터 한트케- 잔 모로로 이어지는 우연의 일치 혹은 인연에 대해 이야기한 부분도 흥미로웠다.

 

역시나 말과 글은 한 사람을 알아보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나를 잘 드러내고 싶으면 말과 글에 신경 써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

폴 오스터 스스로는 쓰고 난 원고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지만 그의 원고는 높은 값이 매겨져서 팔리는 귀중한 것이 되었다.

아직은 아무도 내가 쓴 글에 값을 매길 수도 있다는 중압감에 시달리는 '작가'라는 타이틀을 부러워하는 처지다.

나는 '작가'라는 타이틀을 갖고 싶어하는가? 글쓰기로부터 선택당하고 싶은가?

글쓰기에 대한 답을 얻고 싶어 쉽게 집어든 책인데...얻어가는 질문이 많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