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네임 이즈 메모리
앤 브래셰어스 지음, 김지현 옮김 / 비채 / 2014년 7월
평점 :
절판


 

천 년을 기억하는 남자 [마이 네임 이즈 메모리]

 

프루스트는 전생을 기억하면서 지금은 켄터키 남부에서 주부가 되어 살고 있다. 브리지 카드 게임을 무지 열심히 하면서.

프로이트와 제임스 조이스는 딱 한 번만 눈부시게 살다 떠났다.

융과 융의 어머니는 확실히 전생을 기억했다.

 

이 책에서 언급된 내용이다. (덧붙여 이 책은 소설이다^^)

1000년도 넘게 전생을 기억하는 대니얼과 그의 친구 벤은 이런 대화를 주고받는다.

1000년도 넘게...기억을 쌓아가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나는 100년도 안되는 이 생을 한 번 살면서 40을 바라보는 나이에 벌써부터 일상의 자질구레한 일들에서 깜박,깜박을 경험하고 있는데 이들은 1000년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믿을 수 없는 사실을 전제로 하고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는 막을 올린다.

 

서기 520년, 자신이 기억하기에 첫 번째 생을 시작하게  되었던 한  청년은 비잔티움의 신민으로서 형과 함께 출정을 하게 된다. 누군가를 위한 복수라는 명목 아래, 혹은 다스릴 길 없는 열정을 전쟁터에 쏟아부을 양으로, 형의 지휘 아래 자그마한 마을을 습격한다. 혹시 숨어 있을지도 모를 적들을 없애려고 집이란 집은 모조리 불태우고 마는데, 그 와중에 한 소녀와 마주치게 된다. 긴 머리에 커다란 녹색 눈동자를 한 소녀를 보는 순간, 두려움과 광기에 휩싸인 그는 이 마을을 습격하는 게 아니었다는 공포에 휩싸이게 되었다. 끝내 그녀를 구해내지 못한 채 "미안해"라고 울부짖으며 그토록 아름다운 사람을 죽인 수치심에 어찌할 줄을 모른다. 이것이 그녀와의 첫 만남.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오히려 기억이 선명하고 풍부해지며 전생이 더 많이 떠오르는 사람. 이름, 장소, 장면, 냄새까지도. 환생할 때마다 그는 문간에 선 한 소녀의 얼굴을 본다. 그는 그녀를 소피아로 기억하고 자기 자신을 대니얼이라 말한다.

 

소피아는 나의 원죄다. 나의 삶은 언제나 그 원죄와 함께 시작되고, 나는 소피아를 통해서 비로소 나 자신을 안다. -76

 

일곱 번째 생에서 그는 드디어 그녀를 만나게 되지만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그녀는 형 조아킴의 아내가 되어 있었다. 난폭한 형은 소피아에게 폭력을 휘둘렀지만 형수가 되어버린 그녀를 그가 어찌할 수는 없었기에 형의 손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것밖에 달리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녀를 안전한 곳으로 도피시키고 어머니의 집에서 나오는 길, 그는 조아킴의 칼에 찔려 일곱 번째 생을 마감했다.

 

대니얼은 환생할 때마다 소피아가 어디서 다시 태어났는지, 어떤 사람으로 태어났는지를 찾아 헤매느라 모든 힘을 쏟는다. 그러나 그 둘은 스치기만 할 뿐, 제대로 된 인연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잡으려 할수록 멀어지는 신기루처럼 그들은 서로를 잡지 못하고 슬픈 사랑의 역사만을 쌓아갈 뿐이었다.

 

드디어 2000년대의 어느날, 대니얼은 소피아(이름은 루시이다)를 찾아내게 되고, 우여곡절 끝에 소피아는 대니얼의 전생을 이해하고 운명적 이끌림을 인정할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대니얼보다 한 발 앞서 그녀를 찾아낸 이가 있었으니...그는 바로 전생의 악연이 끔찍하게 아로새겨져 있는 조아킴이었다.

전생의 악연이 현생에서도 악연으로 이어져 이제야 행복해지려는 둘 사이를 가로막다니...

아주 오랜 시간의 기다림 끝에 만나게 될 두 사람의 이야기는 과연 해피엔딩이 될까.

 

환생이니, 전생의 기억이니 하는 것들은 사실 우리에게 익숙한 것이라, 아시아가 아닌 다른 지역의 작가에게서 이런 주제의 책이 나오리라곤 상상을 하지 못했었다. 과연 이 정서를 잘 녹여낼 수 있을까? 그것은 나의 기우임이 곧 밝혀졌다. 앤 브레셰어스는 아주 능숙하게 천 년이 넘는 세월을 가로질러 닿을 듯 말듯 안타까운 사랑 이야기를 직조해냈다. 아득하면서도 신비로운 환생의 세계를 눈부셔하며 바라볼 수 있도록...541년의 북아프리카, 584년의 콘스탄티노플, 2006년의 버지니아주 호프우드, 1918년의 잉글랜드 해스턴베리 저택, 2009년의 인도 콜카타. 시공을 넘나들며 아름답게 수놓아지는 무늬들은 화려하진 않지만 은은하면서도 기품 있는 무늬로 기억된다.

 

항상 쉽사리 패배하고 낙담하고 죽으면서 더 나은 다음 생만을 꿈꾸었던 대니얼이 소피아와의 완전한 삶을 경험할 수 있을까?

수없이 태어나고 수없이 죽으며 단 한 사람만을 기억한 대니얼의 기적같은 사랑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어디에 있든 너와 함께 있다는 걸, 나를 네게서 떼어놓을 힘은 이 땅과 이 시간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알아주기를. 너에 대한 내 사랑은 이토록 기나긴 삶에서 알았던 그 무엇보다도 진실해. -492

 

1000년이 지나도록 간직하고 있는 사랑이라면 무엇보다도 진실할 것임을,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단단하다는 금강석보다도 견고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비록 이런 진실한 사랑을 이 세상에서 찾아보기는 어려울지라도 어딘가에 대니얼과 소피아라는 한 쌍의 남녀가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는 상상만으로도 마음에 위안이 된다.

위대한 사랑의 힘이 있음으로 해서 딱딱한 마음들이 조금씩 허물어질 수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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