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에서 되살아난 황금제국의 찬란한 유산 [황금보검]
순장이 국법으로 금지된 시기의 무덤에서 남자 둘의 함장된 시신이 발견되었다. 진골 이상의 신분만이 입을 수 있는 비단 옷이 남아 있었다.
각자 검을 패용하고 있었고, 한 남자는 황금보검을 차고 있었다.
천년의 황금제국 신라.
그저 박물관에서 몇 점의 유물로 재구성해내기엔 너무나 오래 전의 제국이다. 그러나 쉽게 흥하고 쉽게 스러져간 이민족의 나라들과 비교했을
때, 로마 정도가 비견될까 , 천 년의 세월을 유지한 나라이기에 '왕국'이 아닌 '제국'으로 불릴 만한 이 나라의 한 무덤에서 발견된
황금보검.
'아버지 신드롬'을 일으켰던 작가 김정현이 신라와 황금보검을 박물관에서 건져 올려 유려한 문체로 그 시대를 재현해 냈다.
당시 세상 동쪽 끝의 나라였던 신라를 '개방'과 '관용'의 나라로 설정하고 푸른 눈의 이방인을 포용한 가슴 뛰는 이야기를 창조해냈다.
푸른 물결 넘실대는 바다를 관문으로 하여 세계를 껴안은 신라가 생동감있게 살아나기 시작했다.
순장을 금한 지증왕대, 신라장군 이사부의 활약을 역사적 사실로 깔고 서역에서 온 사람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촘촘하게 그 시대를 그려낸다.
금발의 사내, 씬스라로프는 서역의 한 왕국의 왕자였다. 정벌 전쟁으로 나라가 황폐해지자 부왕의 명으로, 부하 50을 이끌고 동쪽 끝의
황금나라로 기약없는, 그러나 한편 절박한 발걸음을 옮겨야 했다. 드넓은 초원길을 건너는 동안 하나둘씩 부하이자 벗들은 사라져갔고, 마침내 애마
벤투스와 씬스라로프 왕자만이 신라의 해변 모래사장에 반죽음이 되어 당도하게 되었다. 덕업이 날로 새로워진다는 뜻의 '신', 사방을 망라한다는
뜻의 '라'. 이미 이름 안에 '포용'과 '관용'의 정신을 담은 신라에서 상화 공주에게 발견되어 손님의 자격을 얻게 된 씬스라로프는 이방인들의
말을 이미 알고 있는 공주와 유강 장군을 친구로 얻게 된다.
롭 성의 왕자였던 그는 '신수라'라는 새로운 이름을 하사받고 상화 공주를 지키고 공주의 명을 수행하는 호위무사가 된다.
제국은 땅이 커서 제국이 아니었다. 아니, 제국을 만드는 것은 영토와 힘이 아니라 마음과 문인 것이었다. -86
"천 년은 갈 것입니다. 어쩌면 만 년을 갈지도 모르겠습니다. 신라는 참으로 제국입니다. 저도 언젠가 아버지의 나라를 다시 세울 수 있다면
반드시 신라와 같은 나라를 만들겠습니다. -87
넓은 대문과 열린 마음으로 교역을 하는 신라인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롭성의 멸망원인을 곱씹는 신수라였다. 공주를 따라다니던 그는 원각법사를
만나면서 신라의 호국불교를 접하게 되고, 불법에 기반을 둔 호국에 점차 감화되기 시작한다. 가야국에서 태어났으나 국왕의 양녀가 되어 공주의
신분이 된 상화공주는 가야국 출신답게 쇠에 밝았으며 우산국 정벌에도 관심이 있었다. 왕으로부터 우산국 정벌을 명 받은 이사부는 되도록이면
피흘리는 일 없이 우산국을 복속시키려 했고, 신수라가 내놓은 목각사자의 계책은 큰 도움이 되었다. 우산국을 자비의 정신으로 껴안은 이번 전쟁에서
신수라는 '자비'와 '관용'의 불법을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한편, 오래 전부터 상화 공주를 연모해오던 유강은 신수라에게 마음을 쓰는 상화공주 때문에 속을 끓이고 있었지만, 신수라는 그런 유강과
상화공주의 사정을 알면서 아니, 알고 있기에 그럴수록 롭 성에 두고 온 자신의 아내 니데지나가 가슴에 사무쳤다.
이방인의 신분으로서, 잃어버린 나라에 대한 책임을 진 자로서, 신라에 몸을 의탁하고는 있으나 깊게 뿌리내리지 못한 신수라.
마음을 갈무리하지 못한 채 가야에 들이닥친 왜구와 맞닥뜨린 그는 과연 자신의 왕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인가?
황금보검을 지닌 금발머리의 사내. 그의 눈을 통해 서역과도 활발한 교역을 했던 신라의 황금제국으로서의 면모가 드러났다.
지금 당장이라도 여러 나라의 말이 뒤섞인 시장에서 흥정하는 시끌벅적한 교역의 한중간에 끼어들고 싶어진다.
살생유택, 임전무퇴 등 화랑의 정신이 살아 숨쉬고 불법의 호위 아래 자유스러움이 살아 숨쉬는 천년제국 신라가 문득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