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로 보는 성서 [명화의 거짓말 성서편]
어찌된 일인지, 성서를 제대로 한 번 읽은 적도 없는데, 성서의 몇 장면은 언제 책으로 읽기라도 한 듯이 내 머리 속에 쏙 들어와 박혀
있다.
아담과 이브, 카인과 아벨, 노아의 방주, 수태고지, 세례 요한, 살로메, 예수의 십자가 처형, 최후의 만찬 등등.
[젤롯]이란 책을 읽으며 역사적 인물로서의 예수를 짚어본 적은 있었지만, 성서의 전반적인 내용을 다루지는 않았었는데.
아마도 어린 시절 교회에 놀러(?) 다니면서 얻어들은 교리문답 속에서 알게 된 게 아닐까...했지만, 그건 내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것임을 스스로 잘 알고 있다.
일고여덟 살 때 무슨 수업을 얼마나 받았다고 그 때의 일을 기억할까.
기껏해야 찬송가 한 두 자락 읊을 줄 아는 게 다일 것인데.
성서의 몇 장면이 잘 기억되는 것은, 아마도 문학이나 미술 분야에서 성서의 내용을 다룬 것들을 알게 모르게 많이 접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특히나 성서의 몇몇 장면은 화가들이 시대를 아우르며 즐겨 그리던 테마 중 하나였고, 성서의 같은 장면을 각기 다르게 해석하여 그린 화가들도
있어 비교해 보는 재미가 있다.
나카노 교코는 <예르미타시 환상>이라는 영화의 한 장면 중, 엘 그레코의 종교화 앞에서 "너는 대체 이 그림에 대해 뭘
안냐, 알지도 못하면서 어처구니가 없다"며 버럭 하는 기독교인의 날카로운 기세에 도망친 젊은이의 모습에 자신의 모습이 겹쳐진다고 했다. 성경
가르침의 본질을 잘 알지 못하는 이교도. 나 또한 그런 사람 중의 하나다.
기독교라는 종교는 그러나 예수의 탄생일이라고 하는 크리스마스를 빨간 날로 만들어 기념하게 만드는 힘을 가졌을 정도로 우리 삶에 뿌리를 깊게
드리우고 있기 때문에 기독교를 도외시하고 살아가겠어, 하는 다짐은 애당초 하지 않는 것이 낫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종교에 귀의하지 않는 한에서, 기독교에 대한 상식을 쌓으며 교양인으로 남는 것.
기독교에 관한 한 교양인이 되기 위한 첫걸음으로 이 책은 탁월한 선택이라고 말하고 싶다.
성서의 세계에 있어서는 적어도 유아기에 해당한다고 할 정도로 지식이 부족한 나는, 문예부흥기이 막이 열린 르네상스 시대에 인쇄술의 발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책을 읽을 줄 모르는 평민과 같은 처지에 놓여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19세기 런던에서조차 글을 아는 사람은 20퍼센트밖에 안 되었다고 하니 말이다.
그래서 도상이 유효했다고 한다. 교회 내부에 자리잡은 회화와 조각, 스테인드 글라스 혹은 구하기 쉬운 값싼 판화가 귀로 들어서 깨우치는
성서의 세계를 보강해주었다.
나카노 교코는 명화 속에서 성서 속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들을 찾아내어 쉽게 설명해준다.
그 뿐인가, 재미있기조차 하다.
이교도가 보는 성경에는 <고사기>나 <일본서기>와 마찬가지로 '괴상한 부분'이 잔뜩 있다는 그녀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할 수밖에 없다.
그녀는, 항상 헷갈렸던 구약과 신약의 경계도 확실하게 그어주고, 예수의 어머니 동정녀 마리아와 예수를 통해 '참회한 죄 지은 여자'
마리아도 이름이 같아 동일인인가 했을 정도였는데, 그 궁금증도 풀어 주었다. 서양에서는 이름 자체에 그리 무게를 두지 않는 탓인지,
<신약성서> 곳곳에 마리아가 등장한다고 한다. 성모마리아, 글레오파의 아내 마리아(성모의 자매), 베다니아의 마리아(부활한 라자로의
여동생), 사도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 마르코의 어머니 마리아, 바오로의 제자 마리아, 바오로의 친구 마리아, 그리고 막달라 여자 마리아
(마리아 막달레나)...
나카노 교코는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종교화를 즐기고 싶은 사람, 혹은 종교화를 통해 성경과 역사와 화가에 대해 알고 싶다고 생가갛는
사람들을 위해 이 책을 썼다고 한다.
그림 속에서 성서를 배운다고나 할까.
명화를 쭉 감상하면서 나카노 교코의 설명을 들으니, 성서의 거의 모든 것이 한 눈에 보였다.
기독교인이 아닌 내 아이가 좀 더 커서 "예수가 누구야?"
라고 물으면, 긴 설명 대신 이 책을 휙 던져 주리라.
그림과 함께 단시간에 성서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