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색, 무취, 무미의 청춘은 재미없다. [청춘은 찌글지글한 축제다]

블랙코미디인 인도 영화들도 끝은 항상 해피엔딩이다.
온갖 고난과 역경을 다 딛고서 눈물 콧물 다 짜내고서도 마지막은 꽃이 뿌려지는 배경에 흥겨운 음악이 나오고 대동단결이라도 한 듯이 다 함께
어울려 춤을 춘다.
청춘도, 그래야 재미있다.
발 딛고 있는 그 시절은 찌질하고 우울하고 세상 끝이 금방이라도 닿을 듯 보이지만 그 시절에서 한 걸음만 빠져 나오면 "그 때가 좋았지"
하거나 "그 경험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 이라고 말한다.
재미있는 청춘.
찌글찌글한 청춘을 보낸 이가 여기 또 하나의 성공담을 보탠다.
아니, 성공담이라기보다는 실패의 과정을 담았다고 해야 하나.
[청춘은 찌글찌글한 축제다]
웬 찌그러진 양푼 냄비를 연상케 하는 제목이냐? 하면서 관심을 두었다.
그렇지만 저 표지에 커다랗게 박힌 JAZZ라는 글자가 발목을 잡았다.
재즈를 전~ 혀 모르는 내가 이 책을 읽어도 될까?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을 성공으로 이끈 총감독 인재진은 혹시나 현학적인 말과 감상으로 재즈의 세계로 모두들 어서어서 입문하시라고...유혹하는
글들을 줄줄이 늘어놓은 것은 아닐까?
재즈라는 말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머뭇거렸다.
푸르스름한 어둠의 장막 속에서 희뿌연 연기와 한 몸이 된 느슨한, 혹은 흐느적거리는 움직임의 선율은 뭔가 퇴폐적인 분위기를 떠올리게 하기도
하고 몽환적인 나른한 영화 속 한 장면을 연상케 하기도 했다.
그런데, 어라~표지에 커다랗게 찍힌 JARASUM JAZZ 라는 커다란 글자의 설치물 앞을 유쾌한 걸음걸이로 걷고 있는 그의 모습이
자유로워 보였다.
빨간 머플러를 유머러스하게 휘날리며 뭔가 프로페셔널한 사람들이 쓰는 것 같은 모자에 한 손을 척 올린 모습은 , 한 마디로 "파격"이었다.
찌글찌글이라는 단어와 위대한 실패의 기록들이라는 문구가 어울리지 않는 듯 어울리면서 너울너울 나에게 손짓하고 있었다.
꿈틀꿈틀, 태동을 시작한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이 찌글찌글한 삶을 살았던 인재진을 만나 와글와글 인파가
몰리는 "잔치"로 자리매김하기까지 뚜벅뚜벅 걸어온 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어깨에 목에 전혀 힘주지 않고 헐렁헐렁하게 걸어온 인재진의 삶이 한 눈에 보였다.
최대한 가볍게, 낮은 곳으로 내려와 보따리를 풀어놓으려 한 흔적이 역력히 보였다고나 할까.
비가 오면 잠기는 섬, 가평을 재즈 페스티벌의 거점으로 삼고, 감히 "못할 게 뭐가 있겠습니까?" 라며 다짜고짜 판을 짜고 뛰어든 용감한
사람. 그는 예산과 감사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공무원들을 "음악의 힘"으로 한편으로 끌어들여 최상의 비즈니스 파트너로 바꾸어버리는
능력자다.
폭우가 내리던 페스티벌 첫 해의 기억--
비와 하나가 되어 혼란과 감동 속에서 무대를 즐긴 사람들에게서 찐한 공감을 나눈 그는 실패를 성공의 발판으로 삼아 지난 10년 동안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을 이어왔다.
전국의 무수한 음악 페스티벌들이 연계성 없는 행사진행으로 1,2 년을 넘기기 어려운 상황을 감안할 때 그의 성공은 놀라운 것이라 할 수
있다.

페스티벌이 열리는 10월 초, 해가 지는 저녁 6시 쯤. 서쪽으로 지는 멋진 노을을 배경으로 아티스트의 음악이 울려퍼진다. 10년이 지나도
그 때의 기억으로 미소지을 수 있는 추억으로 남게 해야 한다며 공연 기획자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해 온 그는...여러 가지를 해냈다.
페스티벌 브랜드 "자라섬 R&B FESTIVAL(RHYTHM & BARBECUE F.)를 만들어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힘을
썼고, 같은 맥락에서 재즈 막걸리, 재즈 와인 이름하여 뱅쇼를 만들기도 했다. 재즈 벽화를 가평 곳곳에 그려 문화를 조성했고, 재즈 콩쿨,
크리에이티브 뮤직캠프, 찾아가는 자라섬 재즈 등 여러 가지를 기획하여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이 일회성 기획이 아님을 실천으로 보여주었다.
'사'자 직업을 걷어차고 남들이 걷지 않을 길로 뛰어들어, 여기서 얻어맞고 저기서 얻어터졌지만, 근성 하나는 끝내주는 찌글찌글한
양은냄비같은 모양새를 하고 있는 그.
그러나 그냥 누리끼리한 색에 덕지덕지 검은 때 묻은 양은냄비 아니고, 명품 무쇠냄비 못지 않게 멋진 요리를 담아낼 수 있는 저력 있는
찌글찌글한 양은냄비라 부르고 싶다.
인생이 케이크라면, 재즈는 설탕이라구. 알겠어? -윈턴 마살리스
재즈는 집단 연주를 하면서 동시에 개인적인 자유가 보장되는, 거의 유일한 예술 형식-데이브 브루벡
인재진은 어려운 재즈에 대해 입도 벙긋하지 않았다.
아웃사이더로서 살다 공연 기획자로서의 삶을 사는 지금에 99% 만족한다며 그저 자신의 인생 한 토막을 잘라 보여주었을 뿐이다.
그런데 왜 재즈가 갑자기 궁금해지는 것이냐.

한없이 긍정적인 영혼을 가진 그를 따라 붉은 머플러를 휘날리며 우스꽝스런 걸음마나마 떼어보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배경음악으로는 흥겹고 즉흥적인 재즈가 인도영화의 엔딩에 나오는 음악처럼 흘러나와 모두들 자라섬의 호밀밭 아닌 잔디밭에서 춤을
추었으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