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카와 전설 살인사건 명탐정 아사미 미쓰히코 시리즈
우치다 야스오 지음, 김현희 옮김 / 검은숲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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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이 살아숨쉬는 덴카와 골짜기에 홀리다. [덴카와 전설 살인사건]

 

 

 

우선은 표지에 반해 버렸다!!고 할까.

일본적인, 너무나도 일본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인물들 뒤로 민화 풍의 밝고 화려한 이미지가 펼쳐져 있다.

한껏 피었다 한순간에 지고 마는 벚꽃의 처연함을 익히 알고 있기에 만개한 벚꽃의 짧은 생명을 그리도 기뻐할 수밖에 없는가...

그림 속의 벚꽃은 화려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데 한 몫 톡톡히 하고 있다.

뭔지 모를 절 같은 분위기의 신사가 한 켠에 자리잡고 있는 데다, 전면에 자리하여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는 두 인물은 얼굴을 노로 가린 채 일본 전통극 노가쿠에 나오는 차림새를 하고 있다.

똑같은 자세에 똑같은 몸짓이지만 얼굴을 가린 가면 노의 표정으로 상반된 분위기를 내뿜고 있다. 일본 전통극 노에 관해 문외한인 나로서는 고개를 갸웃할 따름이다. 뭐, 책을 읽어나가면서 차차 알게 되겠지...

일본의 신사와 전통극 노가쿠. 생소한 소재라서 일단 관심이 갔고, 일본 추리소설의 살아 있는 거장 우치다 야스오의 작품이라고 해서 더욱 읽어보고 싶었다.

명문가의 차남이자 프리랜서 르포라이터, 게다가 매력적인 외모와 섬세한 감정을 지닌 훈남 탐정인 아사미 미쓰히코를 주인공으로 한 시리즈만 총 113편이라니 실로 어마어마하지 않은가.

작가는 전설이나 역사물에 특히 애착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고토바 전설 살인사건]으로 작가 데뷔, 그 이후로 [헤이케 전설 살인사건] 등의 시리즈를 이어나갔는데 그 중 이 작품은 작가 스스로도 ‘하나의 도달점에 이르렀다’고 할 만큼 이야기의 완성도 뿐 아니라 역사성이 뛰어난 작품이라고 한다. 작품 중의 작품을 영접하는 황송한 기분으로 첫 장을 넘겼다.

 

노가쿠 스이조류의 종가인 미즈카미 가문. 그 가문에서 종가인 미즈카미 가즈노리가 뒤를 이를 후계자와 함께 무대를 꾸민다고 하여 성황인 노가쿠 무대. 과연 스이조류의 총수를 이을 이는 손자 가즈타카인가, 손녀 히데미인가를 두고 관심이 모아진 가운데, <후타리 시즈카>와 <도조지>라는 작품이 무대에 올려졌다. <

<후타리 시즈카>는 시즈카 고젠의 영혼이 나물 캐는 한 처녀에게 빙의되는 내용으로 두 배우가 똑같이 시즈카 고젠으로 분장. 춤까지 똑같이 춰야하는데, 주연인 시테(망령)는 당연히 마지막 무대를 장식하는 종가인 가즈노리이고 조연인 쓰레(나물캐는 처녀)는 히데미가 맡게 되었다.

그러면 스이조류의 총수를 이을 것으로 점쳐졌던 손자 가즈타카는 ? 무대의 마지막 순서에 박력 있는 춤이 요구되는 <도조지>를 추게 되었는데, 뱀의 탈로 불리는 아메후라시의 탈을 쓰고 무대에 올랐다. 오직 종가에게만 허락된 탈이었는데, 종가는 손자 가즈타카에게 그 탈의 착용을 허락해 주었던 것이다. 이것은 암묵적으로 손자에게 뒤를 물려주겠다는 뜻인가?

 

그러나 가즈타카는 무대 위에서 <도조지>를 추던 도중, 아메후라시의 탈을 쓴 채 종 속에 들어갔다가 죽은 채 발견되고, 그 직후 가즈타카의 조부이자 노가쿠의 대가인 미즈카미 가즈노리는 실종된다.

 

비슷한 시각, 신주쿠의 고층 빌딩에서 한 남자가 갑자기 쓰러지는데, 그의 손에서 떨어진 것은 노가쿠 관계자만이 가질 수 있는 덴카와 신사의 부적인 기묘한 방울 ‘이스즈’였다.

부검 결과 그 남자는 캡슐에 든 독극물을 먹은 후, 위 속의 캡슐이 녹아내린 시점에서 즉사한 것으로 밝혀졌다. 오사카에 간다고 말하고 집을 나간 아버지가 회사나 가족에게는 알리지 않고 반대방향인 도쿄에 간 사실에서 무언가를 의심한 딸 치하루는 아버지가 남긴 방울을 실마리 삼아 덴카와 신사까지 찾아가게 된다.

 

마침 아버지의 지인 미야케 씨의 부탁으로 노가쿠와 요곡 등의 유래에 관한 여행 잡지 취재차 11박 12일의 여행을 떠났던 탐정 아사미는 실종된 노가쿠의 종가 가즈노리를 찾으러 온 손녀 히데미를 우연히 만나 사건에 발을 들이게 된다.

 

결국 종가는 요시노의 도로 옆 절벽에 떨어진 채 발견되고 그의 죽음에서도 독살의 흔적이 보인다. 히데미와 치하루를 만나면서 두 사건의 연관성을 의심하다가 이 일의 중심에 한 여성이 있음을 눈치 챈 아사미. 사건을 끝까지 파헤친다면 종가의 속사정이 알려질 것을 염려하는데...경찰청 형사국장인 아사미의 형 요이치로에게 비밀로 한 채 아사미의 어머니 유키에와 미야케 씨는 아사미에게 사건을 전적으로 맡긴다. 섬세하고 착한 아사미에게 명탐정의 자질이 있음을 인정해주는 격인가. 묘한 책임감을 짊어지게 된 아사미. 어떤 사건의 결말을 보여줄지...

 

나라 현 요시노의 깊은 산 속 덴카와 신사.

‘모든 것은 덴카와에서 끝납니다.’

 

넓은 욕조에 몸을 담그자 덴카와 골짜기의 강물 소리인지 아니면 봉우리들 사이를 불어대는 바람 소리인지 분명치 않은 소리가 윙윙 들려왔다.

어쩌면 이 독특한 소리는 천 년의 역사를 가진 이 마을에서 영겁의 세월 동안 늘 변함 없이 연주되었으리라. (...)

어쩌면 이곳 덴카와는 그런 퇴영적인 기분에 빠져들게 하는 마력을 지닌 곳인지도 모른다. -507

 

덴카와 신사와 남북조 시대를 중심으로 한 덴카와 골짜기가 품어온 역사의 무게, 요곡의 세계의 깊이 등 다채로운 소재를 매력적인 탐정 아사미와 함께 풀어나가는 [덴카와 전설 살인사건].

책을 읽는 데 할애한 두 시간이 너무 짧게 느껴졌다. 어찌됐든 괴이하고 매력적인 공간 요시노, 그리고 덴카와 신사에서 모든 것이 끝나게 되지만, 참 묘하게도 사람과 사람을 가까이 느끼게 만드는 기를 뿜어대는 이곳에서 일어난 사건에 저절로 두 손을 가슴에 모으게 된다. 뭐랄까 손에 잡을 수 없는 것을 잡으려하는 안타까운 마음에 갈 곳을 잃은 두 손이 저절로 가슴에 모아졌다고나 할까...덴카와의 밤은 사람의 마음을 녹아내리게 하고 육체의 눈이 아닌 마음의 눈을 뜨게 만드는 것 같다. 희뿌연 밤기운에 어슴푸레한 어둠이 내려앉았을 때, 속세의 때가 스르륵 벗겨지고 사람과 사람, 오직 그것에만 집중할 수 있게 만드는 덴카와의 신비한 기운. 그 신비한 기운 때문에 비극의 역사가 잉태되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덴카와에서 이루어진 인연이 만든 슬픈 역사. 차라리 모든 게 다 이 독특한 덴카와의 분위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어서 다행인지도...

 

“그리고 나서 그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내 팔을 잡았고...나는 따라 일어나 함께 걸어갔지. 그리고 가구라덴 계단을 올라갔어.(...)

“바닥에 깔려 있던 돗자리에서 장뇌 향이 났어.”

치요에의 그 한 마디가 강하게 인상에 남았다. -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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