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가루 백년 식당
모리사와 아키오 지음, 이수미 옮김 / 샘터사 / 2014년 1월
평점 :
품절


마음을 잇다.[쓰가루 백년식당]

 

쓰가루 백년식당이 전하는 감정은 무엇일까.

왠지 콧날이 찡해져 오면서 눈물이 또르르 코를 타고 흘러내린다.

  그저 이제 곧 가게가 생긴 지 백년이 되는 메밀국수집 오모리 식당의 이야기가 4대손인 오모리 요이치를 주인공으로 해서 죽 펼쳐지는 이야기일 뿐인데...

 

이 책에는 흔히들 말하는 폭풍 감동은 아니지만 잔잔한 감동이 있다. 그런데 이 잔잔한 감동이 꽤 오래 간다.

내 경험상, 확 밀어닥친 폭풍우 같은 감동을 느낀 책은 그 순간이 지나면 책을 덮고 난 이후로 다시 넘겨보기가 힘들다. 그걸로 끝이다. 그러나 잔잔한 감동을 주는 책들은 삶의 순간순간에 불쑥 읽고 싶은 생각이 올라와서 책장에서 빼내 펼쳐보게 된다. 신기하게도 이런 책들은 내 책장의 한가운데,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놓여 있지, 몇 겹씩 겹쳐 쌓아놓거나 제목이 안 보이게 옆으로 세워 둔 자리에는 들어 있지 않아서 쉽게 찾아 읽을 수 있다. 무의식적으로 앞으로 다시 또 한 번 더 보게 될 책이라고 자동적으로 분류를 해 놓는 듯하다.

신기하게도...^^

 

현재의 일본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일본 드라마나 책들을 보면 대대로 가게를 이어받는다는 것을 일본인들은 대단히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듯하다. 무슨 가게든 자부심을 가지고 대물림을 해오면서 장인의 솜씨가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더 넓은 세계를 보고 배우기 위해 도시로 나와 훌륭한 직업을 가지고 일을 하고 있다가도 부모님이 은퇴할 시기가 되면 가업을 잇기 위해 집으로 돌아가는 젊은이들이 꽤 많다. 그러나 과연 젊은이들은 자기만의 인생을 잘 꾸려가다가 가업을 이어야 하는 시기가 되었을 때 갈등을 하지 않을까? 부모와는 다른 삶을 살고 싶다는 열망이 피어나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선택을 한 뒤 실패했을 때 가업을 잇는다는 것은 피난처이자 불투명한 앞날에 대한 훌륭한 대비책이 되기 때문에 돌아가는 것이 아닐까?

각자의 사정에 따라 다르겠으나 이 책에 나오는 오모리 요이치의 경우, “소중한 것은 시간을 넘어 이어진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여러 갈래의 인생길에서 지혜롭게 앞날을 선택해야 하는 것이 젊은이들의 숙명이라면,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한 번쯤 생각해보아야 할 텐데, 이 책은 많은 해답 중에서 하나를 제시하는 셈이라고 보면 되겠다.

 

도쿄에서 “삐에로”아르바이트를 하며 살아가던 요이치는 운명적으로 나나미라는 사진작가 지망생을 만나게 된다. 알고보니 나나미는 고향 후배. 모든 것이 응축된 듯한 낯선 공간 도쿄에서 똑같은 아픔과 공포를 맛본 사람끼리라는 의식 때문인지, 아오모리 현의 히로사키라는 마을 출신이라는 공통점에 쓰가루 사투리가 통한다는 반가움 때문인지, 둘은 곧바로 의기투합하게 되었고 연인 사이가 된다. 그러나 나나미는 사진 수업을 받고 있는 작가 선생님으로부터 인정을 받게 되고 선생의 건강 문제가 악화되자 곧바로 “후계자” 대우를 받게 되면서 이제 막 꿈을 향해 한발 내딛고 있는 때였고, 요이치는 “삐에로”일 뿐인가...하며 혼자 자괴감에 열등감으로 시달리고 있는 참이었다. 요이치는 때마침 고향의 누나로부터 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당해 곧 있으면 시작되는 벚꽃축제에 요이치가 필요하다는 연락을 받자 감추고 있었던 메밀국수집에 대한 열망이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골든위크 때 나나미와 여행을 가기로 했으나 고향으로 내려가 오모리 국수집 일을 도와야 한다는 핑계로 여행 약속을 못 지키게 된 요이치. 도쿄에 남아 사진작가의 길을 가고 싶기도 하고 요이치와의 미래를 꿈꾸고 싶기도 한 나나미는 갈라지는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요이치와 싸움을 한 채 골든위크를 맞이하게 되는데...

 

달콤하지만 약간은 숨막히도록 가슴을 꽉 조르는 듯한 “고향의 냄새”

고향으로 돌아온 요이치는 옛 친구들을 만나고 옆집 아주머니를 만나면서 옛 추억에 젖어 들었고, 벚꽃 축제 준비를 도우는 동안 도쿄 국수와 맛내기 방법이 다른 쓰가루 국수를 비하하는 손님의 말에 욱하기도 하면서 결국은 자신이 오래도록 바래왔던 것은 메밀국수를 만드는 것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메밀가루에 뜨거운 물을 붓고 반죽을 한다. 그걸 주먹 크기로 둥글게 빚어 하룻밤에서 이틀 밤 정도 우물물에 담가둔다. 물에서 꺼낸 반죽에 콩즙과 콩가루를 섞어서 얇게 펴고 자른다. 그 면을 삶아 국물에 넣고 바로 먹으면 된다. 또 다른 방법도 있다. 삶아서 바로 먹지 않고 일단 식힌 다음, 면을 1인분씩 사리로 만들어 다시 하룻밤에서 이틀 밤 정도 놔뒀다가, 먹을 때 다시 재빨리 데쳐서 국물에 말아 먹는 방법이다. 후자가 바로 전통 Tm가루 메밀국수이다.-199

 

신선한 정어리만 골라서 머리와 내장을 하나하나 손으로 제거한 후 물로 정성껏 씻어서 꼬챙이에 끼우고 숯불에 천천히 구워 바람에 말리는 작업부터 시작된다. 이렇게 구워 말린 정어리로 국물을 낸다. -199

 

 

고교 졸업문집에서 <10년 후의 나에게 보내는 편지>를 기어코 찾아낸 요이치는 자신의 꿈을 한 번 더 확인하게 된다.

 

내 꿈이었다. 정말로.

이 식당을 이어받는 것이......-217

 

 

태어날 때부터 오른쪽 발가락이 없어서 느릿느릿 걸어야 했던 오모리 겐지는 느리모리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매사 느렸으나 아내가 될 인연의 여인 도요를 기적적으로 만나 청혼을 했고, 구운 정어리로 국물맛을 내는 메밀국수집 “쓰가루 식당”을 만든다. 건어물 행상을 했던 도요는 구운 정어리로 국물맛을 내는 전통을 만들어 아내는 국물을, 남편은 메밀 국수를 만드는 식으로 일을 분담하여 가게를 일으켜 세우기에 이른다. 오모리 식당의 2대 주인은 방탕한 주정뱅이여서 3대째인 데쓰오는 아버지의 뒤를 잇느라 여섯 살때부터 가게 일을 도와야 했다. 아들 요이치에게는 고생을 물려주고 싶지 않아, 100주년이 되는 가게임에도 불구하고 자기 대에서 오모리 식당을 접으려 했다.

 

 

벚꽃축제가 시작되고 정신없이 하루를 보낸 날 저녁, 바람이 심하게 불어 행사장의 텐트가 날아가지 않을까 염려하던 요이치와 아버지는 폭풍이 몰아치는 한밤중에 텐트로 향하고...빗소리가 큰 탓에 묘하게도 생생하게 다가오는 침묵 속에서 서로의 진심을 털어놓으며 바야흐로 이 소설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하려 한다.

 

“이건 내가 어릴 때, 이 식당을 처음 만든 할아버지한테 몇 번이나 들은 이야긴데.”

“네...”

“모든 일의 끝에는 반드시 감사가 있어야 한다...그렇게 배웠단다.”-279

 

 

사랑을 지킬 것이냐, 100 년 식당을 이을 것이냐 고민이 많던 4대손 요이치는 폭풍우 치는 밤에 텐트 안에서 아버지로부터 “요이치, 고마워.”라는 말을 듣고 그만 눈물을 후두둑 흘리고 만다.

100년 동안 오모리 식당을 배경으로 초대 주인의 애틋한 사랑이야기에서부터 4대인 요이치의 고민에 이르기까지 잔잔하면서도 끊임없이 이어지는 이야기를 식당 앞의 벚꽃 나무는 지켜보고 있었을 것이다.

 

“소중한 것은 시간을 넘어 이어진다.”

사랑과 인연의 이야기를 간직한 쓰가루 백년식당 오모리 식당.

 

잊고 있었던 나의 소중한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해보게 하는 시간이었다.

사과 과수원을 배경으로 가족이 나란히 서서 활짝 웃는 사진 한 장이 소중한 무엇을 담고 있을수도 있으니 나나미처럼 중요한 순간을 사진으로 찍어 보면, 나중에 되돌아 보았을 때 그 시절의 소중함을 끄집어 내볼 수 있으려나...

초대부터 물려받았다는 쓰가루 칠기 자개 서랍장 맨 위칸 서랍에는, 똑같은 부위가 똑같이 닳아서 해진, 수가 예쁘게 놓인 천이 다섯 장 정도 들어 있다. 거기에 요이치의 꿈이 들어 있는 봉투까지 곱게 넣어져서 칠기 자개는 또 대를 이어 물려질 것이다. 여러 사람의 마음과 마음이 이어지는 과정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따뜻해져 온다.

눈에 보이는 것,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마음을 이어주는 아름다운 광경. 이제 책장 한 가운데 얌전히 들어 앉아 있는 [쓰가루 백년식당]을 눈으로 스쳐지날 때마다 그 광경이 떠오르며 슬며시 웃음 짓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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