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의 위증 1 - 사건 블랙펜 클럽 29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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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향한 험난한 여정 [솔로몬의 위증]

 

 

 

가파르지 않은 벼랑은 없다.

 

아침마다 “다녀 오겠습니다.”하고 집을 나서서 열 네댓 살 또래의 아이들이 곧장 향하는 곳은 학교다. 맑고 싱그런 웃음을 머금은 아이들이 가방을 단단히 고쳐 메고 이보다 가벼울 수 없는 발걸음으로 삼삼오오 모여들어 학문을 연마하고 자기계발을 도모하며 우정을 다져나가야 하는 곳.

학생은 학생의 역할을, 교사는 교사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을 때에는 아무런 균열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학교는 어쩔 수 없이 “사회의 축소판”이라는 역할을 수행해 나가야 하기 때문에 알게 모르게 틈이 생기게 된다. 그리고 그 틈이 작은 선의의 거짓말과 미봉책들로도 막을 수 없게 될 무렵에는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이 일어난다.

아직 세상에 부딪칠 용기가 시나브로 단련이 되어 있지 않은 아이들에게 그 혼란은 판도라의 상자와 같은 것이라 생각한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열게 되는 판도라의 상자는 아찔하게 무섭지 않겠는가.

세상에 가파르지 않은 벼랑은 없다. 아이들은 학교라는 곳에서 언제 어느 곳에서 맞닥뜨릴지 모를 벼랑을 대면해야 할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며, 꾸준히 담금질해서 날카롭게 벼려진 칼날을 마음 속에 하나씩 품었을 때에야 비로소 세상을 두려움 없이 헤쳐 나갈 수 있다.

 

도쿄의 평온한 서민가에 위치한 조토 제 3중학교에서  놀랄 만한 사건이 일어났다.

1990년 겨울 어느 날, 가시와기 다쿠야 군이 눈에 묻혀 꽁꽁 언 채로 발견된 것이다.

가시와기는 등교 거부를 하고 있던 상태였고, 평소 행적이 언제 자살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불안함을 품고 있었기에 경찰에서든, 학교에서든 입을 모아 자살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말았다. 오이데 슈운지와 일당 두 명을 합해 오이데 패거리라 불리는 아이들과 가시와기가 과학실에서 사소한 다툼을 일으켰다는 증언이 있었지만 그것을 이유로 타살 당한 것은 아닐 거라는 얘기가 얼핏 나오긴 했다.

장례식장에서 가시와기의 부모가 자살임을 인정하고, 이로써 일단락된 것 같아 보이던 그 사건은 이제부터 시작될 사건들의 전초전에 불과했다.

오이데 슈운지 패거리가 가시와기를 학교 옥상에서 밀어 떨어뜨리는 것을 보았다는 고발장 이 전달된 것이다. 사태는 이제 학교폭력이 얽힌 끔찍한 살인 사건으로 커지게 되었고 그 소동 중에 아사이 마쓰코라는 여학생이 교통사고로 죽고, 오이데 패거리 중 하나인 이구치 미쓰루도 크게 다쳤다. 고발장 중의 하나가 언론에 흘러들게 되면서 <뉴스어드벤처>의 보도로 3 중학교 전체가 사건에 휘말리게 되기도 했다.

 

 

나를 구해줘

 

일련의 사건이 일어나는 동안 고발장을 쓴 인물인 미야케 주리 홀로 지옥을 맛보아야 했다. “나는 진짜로 보았는데...”라는 말을 하며 오이데 패거리가 가시와기를 밀어 떨어뜨렸다는 자신의 말을 끝까지 관철시키려 하는 미야케 주리는, 실은 소리 없는 아우성을 지르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잘 봐줘도 친해지기 어려운 아이, 고집 세고 자의식이 강해 누구나 싫어하는 아이. 그런 그녀에게 단 하나의 친구가 되어줬던 아사이 마쓰코만은 바보같이 미야케 주리의 말을 한사코 따라주며 그녀 곁에서 떠나지 않았었는데...그랬던 마쓰코마저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던 것이다. 거기다 유일한 친구였던 마쓰코의 교통사고마저 미야케 주리 때문이란 말까지 들어야 했을 때는 그녀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집단 따돌림과 왕따 때문에 괴롭힘을 당했다면, 오이데 패거리와의 갈등은, 죽은 가시와기 군보다는 미야케 주리에게 해당되는 것이 더 많다고 할 것이다. 여드름이 너무 심해 오이데 패거리에게 얼굴을 짓밟힌 적도 있었고, 비웃음과 경멸의 말들은 수시로 그녀에게 날아들어 그녀의 마음 속에 차곡차곡 쌓였다.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에 짓밟힌 자존심은 그녀가 세상에 한 발조차 내디딜 수 없게 만들었다. 마쓰코의 죽음 이후 등교거부를 하며 집에 칩거하던 그녀는 실어증에 걸렸고, 대화할 상대조차 잃은 그녀는 어긋난 길로 나꾸만 나아가려 한다. 그녀의 행동은 제발, 제발 “나를 구해줘” 하고 말하는데...그것은 잠꼬대를 하면서 허공에 대고 손짓하는 것처럼, 아무도 보는 이 없는 가운데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허공으로 긴 계단이 놓이고 있는데, 그 계단은 올라도 올라도 끝이 보이지 않고 배경은 온통 암흑천지이다. 심장은 오그라들고, 계단을 오르는 미야케 주리의 그림자도 점점 오그라든다. 오이데 패거리를 향한 증오와 분노는 이글이글 타오르다가 급기야 미야케 주리의 몸을 서서히 태운다. 고통 받고 있는 그녀를 이끌어줄 따스한 손 하나가 절실한데, 주위를 둘러봐도 도움의 손길은 쉽사리 닿지 않는다. 따끔 따끔할 것만 같은 가시에 둘러쳐진 미야케 주리에게 “이해”의 손길을 건넬 사람은 누구일까...“나를 구해줘”라는 외침에 대답해 줄 사람은 누구일까...

 

 

법정을 열다

 

학교는 사회의 필요악이야. 하지만 지금 같으면, 그리고 이대로 두면 미래에는 ‘필요’가 빠지고 그저 ‘악’으로 전락할 거야. 사회악으로.

 

가시와기와 같은 반이었던 아이들은 반장인 후지노 료코의 건의로 가시와기 사건에 대한 재판을 열기로 한다.

 

열네 살이야. 겨우 열네 살밖에 안 된 소년이 목숨을 잃었다고. 누군가가 그 억울함을 파헤쳐서 대변해주지 않으면 이 세상에서 정의는 사라질 거야. 학교 측은 골치 아픈 일을 무조건 덮어버리고 모르쇠로 일관하니까.

 

학교 폭력과 왕따 문제를 무조건 덮으려는 학교 측에 맞서 무모하게나마 진실을 파헤치려 노력했던<뉴스 어드벤처>의 모기 기자와 후지노 료코의 생각이 어렵사리 맞닿는 부분이다.

이대로라면 중학교 3학년으로 진급해서도 과거의 꺼림칙한 일들로부터 헤어 나오지 못하고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리라는 생각에 재판을 열어 진실을 알아내려는 후지노 료코.

아이들과 뜻을 모아 모의법정을 열기로 하고, 각각의 인물들에게 역할을 분담한다.

피고 오이데 슈운지, 원고는 사망한 가시와기. 판사 이노우에 야스오, 검사 후지노 료코. 여기에 오이데 슈운지를 변호할 변호사로 간바라 가즈히코가 선임되어 5일간 열릴 재판을 준비해나간다.

여기서, 뜬금없이 나타난 도토대 부속중학교의 간바라 가즈히코. 가시와기와는 한 때 학원에서 친분을 쌓게 되었다나.

그를 처음 본 순간, 가시와기의 최초 발견자이자 이 재판에서 변호인 조수를 맡게 된 노다 켄이치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강 건너편을 보고 온 눈빛이다.

그건 착각이 아니었다. 간바라 가즈히코는 정말로 강 건너편을 보고 온 소년이었다.

“오이데 아버지가 어떤지는 몰라도 내 부모님은 아니까 무섭지 않아. 난 입양됐어. 지금 부모님은 친부모가 아니지. 친부모는 없어. 둘 다 죽었으니까.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였거든. 술 때문이었지. 자기가 저지른 일을 깨닫고 두려워졌겠지. 병원 화장실에서 청소도구함에 있던 걸레를 묶어서 에어컨 도관에 걸고, 목을 매 자살했어.

같은 변호인측의 동의를 얻어내기 위해 노다와 오이데에게 담담하게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은 간바라. 오이데는 “거짓말이지?”하며 펄펄 뛰었지만, 노다는 그의 눈빛이 진심임을 알 수 있었다. 그 자신도 하마터면 강 건너의 세계를 보고 올 수도 있었던 기로에 서서 갈팡질팡해보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체계가 잡혀가고, 속속 증인과 증거물들을 모으는 동안, 결전의 날이 다가왔고, 학생들로만 이루어진 배심원과 방청객들이 보는 앞에서 재판은 시작되었다.

 

법정에서 드러난 서슬 퍼런 진실

 

엎치락 뒤치락 하는 재판의 과정 속에서 고발장이 언론에 흘러 들어가게 된 것은 담임이었던 모리린의 무관심 때문이 아님이 밝혀지면서 법정은 한 번 술렁였고, 미야케 주리가 고발장의 내용을 사실이라고 증언했을 때 또 한 번 술렁였으며, 그녀의 말을 정면으로 맞받아치는 증인의 증언이 나왔을 때 이미 사건은 서슬 퍼런 진실을 드러내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검사와 변호인은 사건 당일 있었던 가시와기 집전화의 통화 기록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며 그날의 행적을 재구성하다, 결국 사건의 진실을 손에 쥐고 있는 단 한사람. “그”의 결정적인 증언을 이끌어내기에 이르렀다.

길고도 긴 과정이었지만, 아이들이 물어 나르고 캐물었던 것들은 차곡차곡 쌓여 제단 앞에 놓인 진실에 다다르기 위한 단단한 디딤돌이 되어주었다.

마침내 “그”의 입을 빌어 “가시와기”라는 인간, 고집스럽고 냉혹한 에고이스트의 전형이었던 가시와기를 되살려내는 순간, 나의 멈추고 있던 호흡이 드디어 숨 쉴 길을 찾아 드나들 수 있었다.

 

-나는 표적을 잃은 킬러다.

나는 고독하다. 그러나 많은 것을 짊어졌다. 스스로는 내려놓을 수 없는, 누가 내려줄지도 알 수 없는 짐을.

내가 나를 잃자, 어깨의 짐도 사라졌다.

 

가시와기가 남긴 노트에 적힌 글의 일부이다.

 

열네 살이란 본래 그런 나이가 아닐까. 누구나 자의식이 과도하고, 끊임없이 주위와 부딪치고, 마음은 우월감과 콤플렉스가 뒤섞여 불안정하고,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고, 그렇게 몇 년을 지내다가 만신창이가 되어 그 시기를 빠져나온다.

재판이 끝나고 누구도 법정을 웃으며 나갈 순 없었으리라. 이성이 지배하는 법정에서 미숙한 중학생임을 빌어, 감정에 호소하는 그들만의 외침이 울려 퍼졌다. 학교라는 곳에서 희망을 발견하지 못하고 자신의 안에 틀어박힌 가시와기는 끝내 죽음으로써 마지막 일침을 가한 셈이다.

 

“자, 똑똑히 보라고. 지금의 학교라는 곳을. 내가 보여 줄 테다.”

가시와기가 날카로운 칼을 들어 허공을 가르자, 단칼에 베어진 공간 속에서 일그러진 열 네댓 살 어린 그들의 자화상이 꿈틀꿈틀 하는 움직임을 보이며 빠져나오려 하는 듯했다. 눈빛을 번뜩이며 와하하 웃어젖히는 가시와기. “난 그런 곳에서 빠져 나온 거라고. 너희들은 아직 거기서 그렇게 헤매고 있지. 교사에게는 획일교육이라는 하나의 잣대로 평가받고 선별되고, 학생들 사이에서는 외모나 신체적 능력, 사교성 등으로 또다시 추려져 배척당하거나 공격당한다. 거기에는 엄연한 ‘악’이 존재하지만 누구도 그것을 악이라고 지적하지 않는다. 누구도 감히 왜 그런 짓을 하느냐고 반문하지 않는다. 난 그게 싫었다고...”

 

미야베 미유키는 학교라는 곳을 지나치게 냉혹하게 파헤쳤다. 보통은 학교에서 부당함을 느끼더라도 대충 그런 곳이지, 뭐 하고 몇 년 적응한 뒤 곧바로 잊어버린다. 그리고 다시 그런 체제를 옹호하는 어른이 되어버리고 자신의 아이들을 그 곳으로 밀어 넣는다. 어른이 되고서 다시 흐물흐물해져 어른들의 입장에서 학교를 보는 데 물들어 있던 나는, 아이들 하나하나의 행동이 껄끄럽게 느껴졌다. 아이들의 눈에 비친 어른이란, 학교란 정말 이것밖에 안 되는 것일까. 은폐하고 책임을 뒤로하는 어른들이 부각되는 한편으로, 세상의 악을 자신들의 손으로 척결하려는 학생들의 의지가 너무도 새파래서, 정면 돌파를 시도한 작가가 미워지기조차 했다.

선명한 선악의 대립을 원하며 간결한 끝맺음에 길들여져 있던 내게, 악인으로 비춰졌던 오이데 슈운지가 살인의 허물을 벗는 것은 좋았으나, 강도치상의 전과를 아버지의 합의로 덮어버리고 가정의 소리 없는 폭력에 속수무책 당하는 무기력한 아이로 그려진 것이 영 마뜩지 않았다. 거짓 고발장을 언론에 보내고 거짓 증언을 했던 미야케 주리를 따돌림과 학교폭력의 피해자였다는 이유로 그렇게 너그럽게 “이해”할만한 것은 또 아니지 않나...가시와기를 마지막으로 지켜 본 "그"가 '나 때문에 가시와기가 죽었다'며 죄의식에 괴로워하고 있을 때, 그의 손을 잡아준 이가 미야케 주리라는 것은 또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미야케 주리의 눈물과 절규로 얼룩진 증언이 "솔로몬의 위증"인가...

그러나 학교에서 학생들이 진행한 재판은 형사 혹은 민사상의 처벌을 위한 것이 아니고, 오직 “진실”을 밝히는 데 있다는 것을 무섭도록 강조하는 판사 이노우에 야스오의 말에 나의 항의는 묵살되어야 했다.

 

 

진실을 향해 흐르는 강물의 흐름을 읽어라. 

 

이렇게 책을 읽는 동안 움푹 꺼진 눈자위...책장을 넘겨야하는데, 자꾸만 멈칫거려 졌었다. 좋지 않은 세상에서 아이들의 슬픔을 생각한다. 감고 있는 눈을 뜬다. 냉소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었던 가시와기를 이해해야 할까, 자기도 모르게 모나고 사나와진 미야케 주리를 동정해야 할까, 강 건너의 세계를 보고 왔으나 반듯하게 이 세상에 정착한 간바라를 어른스럽다고 칭찬해야 할까.

열 네 살 아이들의 법정 치고는 꽤 어른스러웠고, 정말 저만한 역량이 충분할까? 하며 소설의 억지 구성에 아이들이 끼워맞춰진 것은 아닐까...의아하기도 했지만, 그 과정은 충분히 어른들을 반성하게 만들었고, 꽤 효과가 있는 장치였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의 무섭도록 순수한 “진실”에 대한 집착이, 현실에 안주하고 진실을 파헤치기 두려워 덮어두려는 어른들을 움찔하게 만들었다.

 

세상에 사막은 이제 없을 거라고. 모래는 내 안에도 충분하다고. 애써 자위하며 세상을 어른답게 살아가고 있던 나는, 다시 한 번 사회체제의 부조리에 맞닥뜨리자 흔들렸다.

잔혹했고 지겨웠던 학교가 생각이 나버렸다. 그 때는 애써 귀를 막고 눈을 감고 견뎠었는데...부당하다 여겨도 입을 막고 버텼었는데...

 

그러나, 이렇게라도 이 책을 읽어준다면...

아주 옛날부터 썩어가는 중이었다 해도

그 강물의 흐름을 읽는 이 가 있다면.

겹겹의 강물을 읽어주는 이가 있다면 , 물길이 바뀔 날도 오리라...

 

"진실"을 향한 험난한 여정이 도도한 강물로 흐르게 되었고, 이제 내가 할 일은 그 흐름을 읽어주는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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