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디 맑은 진짜 음식 [녹색 고전]
오지 그릇 안에 가득 담긴 꽃, 무순, 파릇파릇한 녹색 채소, 그 위로 날아다니는 하얀 나비를 보자 새싹 채소 비빔밥을 버무려 한 입 가득 퍼넣은 듯한 기분이 든다. 누가 뭐래도 마음이 차분해지고 싱그러워지는 데는 녹색을 당할 자 없다. ‘환경 시대의 바이블’이란 작은 제목이 아니라면 음식에 관한 책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아기자기하고 어여쁜 색감을 자랑하는 책이다.
녹색 고전이란 어떤 책일까?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지구의 몰락’을 말하는 때. 비관적으로 말하는 학자들은 2050년이면 지구가 더 이상 인간이 살 수 없는 행성으로 변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문학을 연구하는 저자 김욱동은 일찌감치 환경의 중요성을 깨닫고 문학과 환경운동을 접목시켜 활발한 저작활동을 한 바 있고, 다섯 권이나 환경 문제에 관한 책을 쓰기도 했다. 그래서 더 이상 할 말이 없을 것이라고 장담했음에도 전 세계에 휘몰아치고 있는 이상기후 등의 이변을 목도하며 다시 한 번 생태주의 주제를 꺼내 들어 <녹색 고전> 한국편, 동양편, 서양편을 출간하기에 이르렀다. 이 책은 그 중, 한국편이며 생태주의와 관련한 보석 같은 글들 즉 고전이라 불릴 만한 글들을 한데 모으고 그의 해석을 단 책이다.
학창 시절, 어지간히도 소재, 주제 달달 외며 단락 구분하고 핵심 내용 파악하기 등에 주력하며 텍스트 분석에만 골몰했던 시기에 배웠던 이양하의 <나무>, <신록예찬> 같은 명수필은 “녹색” 이라는 키워드를 던지자 곧바로 떠오를 만큼 유명한 수필이다. 입시위주의 교육이 낳은 폐해라 하면, 지긋지긋하게 달달 외우듯이 머릿속에 집어넣어 꼭꼭 씹었던 유명한 고전들이 시험 후, 한겨울 강추위에 내뱉는 하얀 입김이 입에서 나오자마자 흔적도 없이 사라지듯이 기억에서 지워진다는 것을 꼽을 수 있겠는데, 그래서 다시는 떠올리기도 싫은 시며, 소설이며, 수필들이 한가득인데...이상하게도 이양하의 <나무>, <신록예찬>은 푸르름이란 말과 함께 고향의 그리움이 알싸하게 퍼지듯이 입 안 가득 그 싱그러움을 머금게 하며 다시금 떠오르는 것을 보면 명수필은 명수필인가 보았다.
그래서, 김욱동 교수도 이 책을 꼽았을까...하며 목록을 보니, 있다. 있었다!!
나무는 덕을 지녔다.
나무는 고독하다.
나무는 훌륭한 견인주의자요, 고독의 철인이요, 안분지족의 현인이다.
불교의 소위 윤회설이 참말이라면, 나는 죽어서 나무가 되고 싶다. ‘무슨 나무가 될까?’ 이미 나무를 뜻하였으니, 진달래가 될까 소나무가 될까는 가리지 않으련다.
<나무>, 이양하
저자가 생태주의 고전으로 꼽은 작품은 실로 상상을 초월할 만큼 다양한 시간과 장르들에서 가져온 것들이다. 서사무가 <성조 풀이>, 고려가요 <청산별곡>, 강령탈춤 한 토막, 이규보의 <슬견설>, 박지원의 <호질>, 최시형의 <해월신사 법설>중 <대인접물>, 문정희의 <물을 만드는 여자>, 법정 스님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김성동의 단편소설<산란> 등등. 저자의 박학다식함이 유감없이 드러나서 하나의 텍스트에도 다양한 해설이 녹아들어가 있다. 그러나 넓고 넓은 스펙트럼을 한바퀴 순례하고서 결국은 “자연”을 소중히 하자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일례를 들면, 이양하의 <나무>를 다루면서 미국의 생태주의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를 언급하기도 하고 탈무드를 인용하기도 하며 숭례문과 금강소나무에 얽힌 이야기를 집어넣기도 한다. 장자의 <소요유>까지 끌어들이고 서구 관념론의 대표격인 헤겔의 견해까지 인용하기도 하는 등 종횡무진 누비고 다니다가
생태주의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이 세계에 존재하는 것은 하나같이 옳고 소중합니다. 생태계의 집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식구들이기 때문입니다.
로 결론내고 있다.
이상하게도 이 책을 읽는 도중 마음이 저절로 누그러지며 동심의 세계로 나아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동심’이라 하면 아이의 깨끗한 마음을 이르는 것이 아닌가. 물질 세계에 너무 오래 노출되어 때가 덕지덕지 묻은 것이 절로 부끄러워 지고, 자연에서 빌려 쓸 따름인 모든 환경을 마음대로 훼손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반성하게 되면서 나는 점점 작아지고 작아지고 작아졌다. 마치 꾸중 듣는 작은 아이인 양...몸을 옹송그리게 되고 많이 부끄러워졌다.
그러다, 아이들의 세계를 너무도 순수하게 그려낸 미야자와 겐지의 글이 문득 떠올랐다.
우리는 얼음사탕을 원하는 만큼 가지지 못해도 깨끗하게 맑은 바람을 먹고 복숭앗빛 아름다운 아침 햇빛을 마실 수가 있습니다. (...)
제 이야기들은 그런 수풀과 들판이나 철도 선로 같은 곳에서 무지개와 달빛에게서 받아온 것입니다. 정말로, 떡갈나무 숲의 푸른 저녁을 혼자 지나가거나 11월의 산바람 속에서 떨면서 서 있다 보면 정말 아무래도 이런 느낌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작은 이야기들의 몇 조각이 끝나고 나서 당신의 투명한 ‘맑디 맑은 진짜 음식’ 음이 되기를 얼마나 바라고 있는지 모릅니다.
-<주문이 많은 요리점>의 서문, 미야자와 겐지.
미야자와 겐지의 투명한 언어들 못지않게 저자의 <녹색 고전>도 나에게 ‘맑디 맑은 진짜 음식’이 되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