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연애 - 서가에서 꺼낸
문아름 지음 / 네시간 / 2013년 12월
평점 :
품절


달콤하면서도 쓰디쓴 오독(誤讀) [서가에서 꺼낸 책과 연애]

 

저자는 사적인 연애와 사적인 책 읽기의 만남을 시도하면서 오독의 즐거움을 말했다.

 

연애를 하는 동안 읽는 모든 텍스트는 두근거림으로 바뀌었고, 섣불리 읽기 어렵다는 책을 내 멋대로 바꿔 생각하며 책이라는 바다를 여행했다. 오독의 즐거움.

연애를 하며 내 안에 어떤 감정들이 있는지 들여다보기 시작했던 사람들은 그제야 책 속에서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던 바다를 만난다. 아마도 그 학자나 작가를 연구하거나 좀 안다 싶은 선생님들의 눈에는 큰일 날 독서였을지도 모르겠다. 작가가 낸 물길과는 영 딴판인 어느 곳에 독자가 멈춰 서 있으니. 그러나 때때로 오독은 진실이다.

 

아, 용감하다. 박수쳐 주고 싶다.

그리도 나도 연애할 때 저자의 이런 방식을 따랐다면 진실로 연애의 모든 감정을 오롯이 들여다보고 성찰하고 느끼면서 나라는 사람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을 텐데...하는 후회를 해본다.

연애는 사람을 한층 더 깊어지게 하고 어른스러워지게 한다.

겉에서 보기에 한없이 달콤하고 포근하고 부드러울 것 같이 보이는 연애라는 것은 실상 그 속에 들어가보면 가시밭길 투성이고, 내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여줄 것 같던 그 보금자리는 자꾸 나를 드러내보라고 채근하는 채찍질이 난무한다.

연애를 시작하기도 전에 섣불리 마음의 문을 열지 못했던 나는 과감하게 그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의 희열을 잊을 수 없지만, 시간이 갈수록  결국은 나 자신에게 던지는 물음들이 눈덩이처럼 커지는 것을 알아채게 되면서는 연애라는 것이 쉬운 길이 아니었구나 하는 것을 시나브로 느낄 수밖에 없었다.

저자는 어떻게 사적인 연애를 사적인 책읽기와 결부시켰는가...

 

푸코가 <감시와 처벌>을 통해서 국가 권력을 이야기하려 하든 말든 나는 가끔 그 파놉티콘 안의 감시자가 내 안의 다른 누군가가 아닐까 생각했고, 프로이트가 내 어린 시절을 성적 욕망으로 해부하려 리비도를 들이밀어도 ‘그딴 건 모르겠고, 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꿈의 해석이 꽤 마음에 드는데?

 

 

읽다보면 결국 자살밖에 방법이 없는 것 같은 쇼펜하우어는 내게 좀 더 그럴듯하게 자신을 믿어야 할 근거를 제시한다. 일단 사랑하기 전에 사랑의 고통을 먼저 알아야 한다며, 그는 내게 너네가 말하는 사랑은 없다며 온갖 이유를 가져다 붙인다. 쇼펜하우어를 읽으면서 저 거지 같은 조언들(결국 남자는 큰 가슴과 자신과 섹스하지 않은 여자에게 반하는 동물에 다름없다는 이야기를 펼치고 있으니까)이 지금도 자주 듣는 말이라는 것에 경악했다.

 

“감히 나의 뫼르소를 연애로 쓰다니 너 미친 거 아니냐? 라는 말을 이 글을 쓰면서 세 번은 들은 것 같다.(...)

뫼르소가 알제리인을 죽였을 때의 감정은 아직 잘 모르겠다. 하지만 감옥과 재판소를 오가며 자신은 쏙 빠진 채 자신의 삶을 쥐고 이리저리 흔드는 검사와 변호사를 보는 뫼르소의 모습은 마치 짝사랑의 ‘권태’에 빠진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이쯤이면 짝사랑에도 권태가 있다는 사실을 사랑받고 있는 오만방자한 사람들이 알아차릴까?

 

연애의 온갖 얼굴들을 저자는 참 많이도 알고 있다. 시시각각 연애를 하면서 느꼈던 감정들을 책 속에서 잘도 끄집어 내어 연결시킨다. 이런 오독은 너무나도 재미있다. 진작에 이런 재미를 알았더라면, 나의 연애 시절은 몇 권의 오독으로 연결지을 수 있었을까?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지금은 연애와 너무 멀어져서 생각조차 할 수 없으려나...쯧.



한우리 북카페 서평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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