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컵을 위하여
윌리엄 랜데이 지음, 김송현정 옮김 / 검은숲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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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컵을 위하여>

부모된 자의 무거움

 

 

<검은 숲>의 책은 믿고 보는 편이다. 추리소설의 기법이며 내용은 너무나 다양하기 때문에 개인의 편향된 취향도 있을 수 있고, 한 작가에 치중하는 수도 있기 때문에 리뷰를 믿는 것보다는 출판사를 믿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검은숲에서 이번에는 <제이컵을 위하여>에 대단히 힘을 실어주는 것 같다. 일본 추리소설 일색이던 요즈음에 영미권에서 제대로 한 방을 날리는 추리소설로는 <제이컵을 위하여>가 단연 눈에 띈다. 대대적인 광고도 그러하고 이벤트로서도 그러하지만 광고나 이벤트에서 던지는 묵직한 질문이 부모라는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당기기에 “제이컵” 주변에 사람들이 이리 북적거리지 않나 싶다.

 

여기 소름끼치는 질문이 있다.

“당신은 가족을 위해 무엇까지 할 수 있는가?”

 

이어지는 이야기는 이렇다.

2007년 4월 12일 목요일 오전 9시쯤, 시신이 하나 발견됐다. 뉴턴 공립학교의 벤저민 리프킨이 학교와 맞닿아 있는 콜드 스프링 공원에서 발견되었다. 톱니 모양의 칼날에 가슴을 세 차례 찔린 채로...그리고 지방검사로 일하던 ‘나’(-앤디 바버)의 아들 제이컵이 용의자로 지목된다.

우리나라였다면 14살이라는 나이에 살인 용의자로 지목되어 법정에 서게 되는 일은 없을 텐데, 미국은 다르다. 엄정한 심판의 잣대를 들이대어 비록 14살이라 할지라도 정의를 가려내는 과정에 대면하게 만든다. 제이컵은 평범한 14살의 아이였는데, 억울하게 누명을 쓴 것일까?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나랴’라는 속담이 이 경우만큼 적절하게 쓰일 일은 없을 것이다. 같은 학교 아이들로부터 제이컵은 좀 달라...라는 말이 심심찮게 나왔고, 그동안 제이컵이 왕따당했다는 것은 아이들의 비밀 통로인 페이스북이나 SNS를 통해 여봐란 듯이 증명되고 있었다.

 

 

교사출신이었던 엄마도, 지방검사였던 아빠도 아들의 이같은 일상생활을 짐작도 못했다는 듯이 망연자실 할 수밖에.

어떤 경우에도 부모는 자식의 편일 수밖에 없는지, 제이컵의 아빠인 ‘나’는 아들의 무죄를 무조건 믿어주었고, 아들을 위해 변호인, 증인을 자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아들에 대해 한 점 의혹 없이 완벽하게 믿어보려 했던 앤디의 양심을 아들의 방에서 나온 독특한 모양의 흉기 -살인에 쓰인 도구와 비슷한-가 쿡쿡 찔러대었다. 제이컵은 끝까지 아무것도 아니라며 발뺌하고 자신의 무죄를 믿어달라며 호소했고, 그런 아들의 아버지인 ‘나’는 아들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아들을 믿어주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다 못해 증거물을 숨기기까지 한다.

그러는 와중에 제이컵의 아빠인 ‘내’가 아내인 로리에게조차 숨겼던 사실을 어쩔수 없이 끄집어내게 될 날이 왔고, 아내인 로리는 그 사실을 알고는 남편에 대한 배신감과 숨겨져 있었던 저주받은 운명에 좌절하게 된다.

아들을 위해 “지옥에라도 갔다 올 수 있다.”라는 것이 모든 부모의 진짜 마음이겠지만, 이 책에서는 왜인지 자꾸만 제이컵이 진짜 살인자라면~이라는 극한상황으로 사건을 몰아 가며 과연 진짜 아들이 살인자일지라도 그 말을 할 수 있는가? 라고 지독하게 물어온다.

 

 

 

소설의 진행은 지방검사 출신이었던 작가의 이력을 그대로 드러내듯 법정 상황이 아주 리얼하게 묘사되고 있고, 검사와 증인, 변호사간의 공방이 치열하고도 세밀하게 그려져 있어서 자주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언젠가 읽었던 토마스 쿡의 <붉은 낙엽>은 주제는 비슷하나 전개 방법에서 아주 대조되는 소설이다.

유괴범으로 몰리던 아이로 인해 가족의 내부에서 서서히 일어나는 균열이 붉은 낙엽이라는 제목처럼 아름답게 그려졌던 소설로 기억한다. <제이컵을 위하여>는 그렇게 감성에 호소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상황과 대사를 통해 모든 것이 전달된다.

 

증인 : 따옴표 열고, 이러한 일단의 관찰 결과 즉, 공감의 결여, 충동 조절의 어려움, 우발적 잔인성을 요약하는 최선의 방법은 제이컵이 닥터 수스의 그림책에 등장하는 ‘그린치’를 닮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즉, 그의 심장은 남들보다 두 치수 작다. 따옴표 닫고.

라주디스 검사 : 당황한 표정이군요. 유감입니다. 그 표현 때문에 당황했습니까?

증인 : 맙소사, 닐. 맙소사.-324

 

앤디의 집안 내력을 밝혀내어 어떻게든 살인자로 몰고가려는 검사가 잠시 우세를 점한 때도 있었으나, 결국에는 앤디가 범인으로 지목했던 사람의 자결과 유서로 제이컵은 무죄방면된다.

 

 

그러나 진짜 이야기는 그 후에 벌어진다.

소설이 다 끝나가고 몇 장 남지 않은 그 사이에 이 소설 최고의 클라이맥스가 기다리고 있다.

지루한 법정 싸움과 흔하디 흔한 부모자식간의 믿음이 전부라고 착각하며 “이제 끝났네?”하던 독자들은 크게 뒤통수 맞을 일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기를...

아들을 위해서 지옥까지라고 갈 수 있다는 그 단순한 부모의 마음이 언제 어떻게 뒤틀릴 순간이 오는지...기다리며 책장을 덮는 그 순간까지 긴장하시길...

 

일단 책이 끝나고 나면 왜 이 책에 대한 평이 그렇게도 거창했는지 알게 될 것이다.

절대로 끊어지지 않는 혈육의 정이라는 것에 우리는 단단히 정신을 결박당한 채로 살아왔고, 무의식에 내재된 뿌리관념 또한 가족의 테두리를 공고히 엮어주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해왔다. 우리 가족, 내 자식. 절대적인 내 편. 그것이 와르르 무너져 내릴 때를 한 번쯤 상상이라도 해 본 적이 있는가? 가족의 두 얼굴이라고 흔히들 칭하는 그 모순적인 상황에 한 번쯤은 다들 봉착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비록 드러내놓고 크게 말할 수 없는 것들이기 때문에 공론화해서 크게 떠들지는 못하지만, 내면 속에 가두어 두었던 가족의 이기적인 모습, 혹은 다정하지 않은 그 모습들로 갈등을 겪어 본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죄의식을 덜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을 듯하다. 가족은 “무조건” 모든 걸 감싸안아주는 안전한 방공호가 아니라는 걸...깨닫는 계기도 될 것이다.

 

한우리 북카페 서평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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