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왜 존재하는가 - 역사를 관통하고 지식의 근원을 통찰하는 궁극의 수수께끼
짐 홀트 지음, 우진하 옮김 / 21세기북스 / 2013년 6월
평점 :
품절


<세상은 왜 존재하는가>

 

장 폴 사르트르와 시몬느 드 보부아르가 매일 출근 도장을 찍다시피 드나들었다는 카페 드 플로르의 표지사진과 함께 묵직한 무게감을 자랑하는 책이 도착했다.

 

역사를 관통하고 지식의 근원을 통찰하는 궁극의 수수께끼.

세상은 왜 존재하는가.

 

바꿔 말하면 하이데거가 <형이상학 입문>에서 제기했다는 의문 ‘세상은 왜 무가 아니라 유인가’와도 상통하는 질문이다.

지금 이 시각 현재 2013년 6월 25일을 살아가고 있는 나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이런 의문을 품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사람이다.

철학 같은 어려운 용어는 일부러 기피하려 했고, 가끔 날이 흐리거나 사색하기 좋은 날에만 가끔 하늘을 우러러 보며 “아~~”하는 장탄식에 삶의 무게를 실어 날려 보내곤 했을 뿐이었던 평범한 사람이다.

세상은 왜 존재하는가.

나같은 보통의 가정주부가 매일같이 맞이하는 북새통의 아침, 점심, 저녁 그 사이에는 이런 묵직한 철학적 주제와 문제의식들이 끼어들 틈이 없다.

나는 하루하루를 살아가기에도 버겁기 때문에 그런 문제들은 철학자들에게 맡겨 버리고 대충대충 살았다.

그런데도 제목에 왠지 눈길이 가고 마음이 이끌리게 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역시 사람은 생각하는 동물이라는 명제가 생활의 번잡함보다 더 상층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어서일까.

데카르트, 라이프니츠, 볼테르, 흄...벌써 책장을 몇 장 넘기지도 않았는데, 쟁쟁한 철학자들이 저마다 목소리를 내며 “으흠...”하고 장광설을 늘어 놓을 준비를 하고 있다.

 

존재의 수수께끼라는 문제 앞에서는 그 누구도 자신의 지적 우월성을 자신 있게 내세울 수 없다. 미국의 철학자이자 심리학자인 윌리엄 제임스의 말처럼, “우리 모두는 이 문제 앞에서 똑같이 무지할 뿐”인 것이다.

-31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용감무쌍하게 당대의 저명 인사를 만나 이 질문에 대한 인터뷰를 거치며 수수께끼를 밝혀내려는 시도를 하고 있고, 당당히 책으로 펴냈다.

그것도 아주 재기발랄하게.

제목이 내뿜는 위용에서 한 번 놀랐다면, 몇 장 안 넘기는 동안 나오는 이름들에 한 번 더 놀랄 것이고 더 나아가 이름만 들어도 골치 아파지는 사람의 대명사인 철학자들과 여러 학자들이 열거됨에도 불구하고 지루할 틈이 없다는 사실에 마지막으로 놀라게 될 것이다.

철학과 신학과 과학을 넘나들면서 본질의 문제를 깊고 깊게 탐구해가는 방식이 너무나 재미있다.

어려운 제목의 책을 읽으면서 재미있다는 표현을 하기란 쉽지 않은데, 저자는 그것을 이루어냈다 .

 

핑퐁, 핑퐁.

경쾌한 소리를 내며 여기서 저기로, 튀고 튀면서 주고받는 문답이 마치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이 될 순간을 앞둔 탁구 경기와도 같다.

포레스트 검프의 그 유명한 탁구 장면을 기억하실는지.

짐짓 유쾌하면서도 집중을 잃지 않게 만드는 바로 그 명장면을 보는 것처럼 흥미진진한 문답이 펼쳐지니, 책을 덮으려 하다가도 다시 넘기고 넘기고 하는 동안 푹 빠져들게 되는 신기한 책이다. 종교와 과학 철학자, 인문학자, 생물학자, 끈이론가들과의 논쟁, 그리고 하이데거와 파르메니데스, 피타고라스 등 과거 학자들의 연구, 존 업다이크와의 인터뷰 등등.

일부러 찾아 읽으려 해도 이런 조합들은 쉽지 않을 텐데, 저자의 땀방울에 힘입어 책 한 권으로 깔끔하게 정리된 복잡한 이론들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저자가 이 문제 하나를 놓고 파고드는 분야는 실로 다양하고 방대한데 그가 다룬 영역 중에서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디서부터 비롯되었을까?’

라는 질문이 유독 나의 레이더망에 포착되었다. 이 대목에서 그는 린데 교수의 ‘혼돈 인플레이션’이론을 소개하는데 그 내용은 유명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나무> 중에서 [취급 주의:부서지기 쉬움]이라는 단편을 떠올리게 했다.

 

내가 혼돈 인플레이션 이론을 고안했을 때, 나는 우리 우주와 똑같은 우주를 만들어내는 데 필요한 것은 고작해야 수십만 분의 1그램 정도에 불과한 물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지금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수백 수천억 개의 은하들로 폭발할 수 있는 작은 진공 덩어리를 만들어내는 데는 충분하니까요....그렇다면 과연 어떤 존재가 우리가 실험실에서 우주를 만들어내는 것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도 신처럼 될 수 있는 것입니다!-34

 

꼬마 조물주를 선택하신 행복한 구매자 여러분, 이제 여러분의 세계를 창조할 차례입니다. 여러분이 책임지게 될 이 작은 세계를 우주라 부르기로 합시다....빛의 씨앗을 심는 것, 다시 말해서최초의 섬광을 일으키는 것을 빅뱅이라고 합니다. -189 <나무>[취급 주의:부서지기 쉬움]베르나르 베르베르, 2003, 열린책들.

 

여기서 저자가 잠깐 소개한 이론으로부터 베르베르의 <나무>를 연상케 하는 내용이 나왔을 때 나는 황홀함을 느꼈다.

과학에 대한 많지 않은 지식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저기로 이어지는 매개점을 찾았을 때, 나도 세상의 존재 이유에 대한 커다란 비밀을 발견한 것만 같은 희열을 느끼게 되었다.

단지 책을 읽고 이 책과 저 책의 내용을 연관지어 본 것 뿐인데...이것이 바로 내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를 하게 되는 이유다.

이런 식으로 가다간, 이 책 옆에 연관되는 책 몇 권이 쌓이게 될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흐뭇하고, 내 자신이 대견스러워진다.

“잘했어..쓱쓱.”

 

이 책을 읽는 것보다 더 재미있는 사고의 방식을 상상하기는 어려웠다.

는 구절처럼,

이 책의 구석구석에 이런 식으로 공감 100배 할 수 있는 종류의 글들이 숨어 있다.

그걸 찾아서 밑줄 좌악 긋는 재미도 만만치 않다.

이미 십 대 때에 존재의 수수께끼에 흥미를 가진 짐 홀트.

그가 엮어내는 진지하면서도 유머가 있는 철학적 대화는 위대한 인터뷰이에 대한 세밀하고 생동감 넘치는 묘사와 어우러져 최고의 책으로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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