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 호러작가가 사는 집 미쓰다 신조 작가 시리즈 1
미쓰다 신조 지음, 김은모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1년 12월
평점 :
절판


<기관>호러작가가 사는 집

미쓰다 신조 ‘작가’ 시리즈 첫 번째 이야기.

 

 

“와아아아아아~악”

“오래 기다렸지.”

 

오랜만에 머리털이 쭈뼛 서는 기분이 드는 책을 읽었다.

고전적인 줄거리이긴 하다.

모르고 들어가 살았던 집이 알고 보니 귀신들린 집이었더라...하는.

 

미쓰다 신조.

작가와 주인공의 이름이 같다.

이런 설정의 추리 소설은 처음이다.

실제 인물과 상상 속의 인물이 이름이 같기 때문에 이 소설의 이야기는 더욱더 경계가 애매모호해진다. 마치 에셔의 그림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구성.

 

 

 

 

 

에셔,[그리는 손], [올라가고 내려오고], <진중권, 미학 오디세이2> 중에서.

 

 

편집자이자 호러작가라는 상황도 똑같지 않은가.

소설 속으로 들어가 보자.

 

나(미쓰다 신조)는 호러작가이다. 그런데 내가 쓰지도 않은 [백물어라는 이름의 이야기]라는 소설이 일본 호러소설 대상에 응모되었다고 한다. 응모된 소설 속의 화자인 ‘나’조차도 ‘미쓰다 신조’라는 것이다.

 

쓰구치 이자히토라는 필명을 사용했다고는 하나, 내 이름을 사칭해서 응모한 것만으로도 기분이 나쁜데 작품 속의 일인칭 인물이 나 자신이라고 하니까 더더욱 떨떠름했다. -15

 

나는 편집자로 일하면서 괴기 환상 계열의 동인지 <미궁초자>에 <나뭇잎 사이의 밤 이야기>라는 이야기가 실리면서 연재를 제의받았다. 내년 봄부터 <악마의 집>이라는 괴기소설을 연재할 생각으로 있던 차에 숲을 거닐며 소설을 구상하다가 “그 집”을 발견하게 되었다. 소로센엔 근처의 숲에 버려지다시피 한 채로 서 있는 영국식 ‘하프팀버’양식의 그 건물을...왠지 괴기스런 분위기를 자아내는 건물이었지만, 집 자체에 쏠린 관심이 불안감을 웃돌았다. 석연치 않은 부동산 업자의 태도에도 불구하고 나는 인형장이라 불리는 이 집에 살게 되었고, 거기서 <미궁초자>에 연재할 <모두 꺼리는 집>을 집필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다락방에서 인형장과 완전히 똑같은 형식으로 만들어진 돌 하우스를 발견하면서 꺼림칙한 느낌이 점점 더해지는데 이상한 것은 그 이후로 연재 소설을 쓸 때마다 실제로 이야기가 내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것이었다.

괴기소설을 쓰는 작가 스스로 공포를 느끼는 소설.

하지만 무섭다고 느끼면서도 이야기를 자아내고 싶다는 욕구가 강렬하게 들끓는 나.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왠지 내가 자꾸 피곤해 보인다며 쉬라는 말들을 한다.

 

이 소설의 구성은 '내'가 그 집에 살면서 <모두 꺼리는 집>을 집필하는 과정과 <미궁초자>에 연재되는 소설인 <모두 꺼리는 집>이 교차편집 되는 구성이다.

나는 3회 연재분을 쓰고 나서 료코라는 여인을 알게 되었고, 그녀는 나의 팬이라면서 자주 찾아오지만 자꾸 야위어 가는 나를 보고 이상한 말을 남긴다. “홀린 거죠.” “홀려요?” “예, 집에 홀린 거예요...”

 

# 이 소설의 첫 번째 매력. 

독특한 구성 그리고  섬뜩한 불안감이 등뒤에서 서서히 몰려오면서 조장하는 공포감이 압권이다. 맨 첫머리에서 잠깐 공개했던 “와아아아아악” 소리는 소설 속에 나오는 대사이기도 하지만, 내가 그 부분을 읽으면서 엉겁결에 같이 내지른 소리이기도 했다. 휴~~정말 엄청 놀랐지 뭔가. 그나마 내가 책을 읽는 방 밖에 누군가 있는걸 알았기에 망정이지, 혼자 있을 때 읽었더라면 책을 내던지고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가, 나 아닌 다른 살아 있는 사람의 존재를 확인하고서야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쉴 뻔 했다.

인형장의 역사를 파헤치면서 서서히 드러나는 인형장의 진실.

그리고 료코의 비밀.

내가 쓰지도 않은 소설을 응모한 사람의 정체.

 

 

# 이 책의 두 번째 매력.

나와 료코가 나누는 대화 속에서, 혹은 '내'가 읊는 말 중에서 줄줄이 엮어져 나오는 탐정소설의 역사가 무척이나 흥미롭다는 것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를 부르는 전형적인 케이스이다.

한 두 작가나 작품의 나열에 그치지 않고 박학한 지식과 평가가 곁들여진 그야말로 본격적인 탐정소설 역사이기에 두 말 않고 여기 소개된 책을 찾아 읽고 싶어진다.

에도가와 란포의 <붉은 방>,<음울한 짐승>,<바쇼 한 명의 문제>,

확률의 범죄가 처음으로 나타난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도상>

렌조 미키히코의 <변조 2인 하오리>,<연문>, <화장>시리즈.

탐정소설의 독자적 요소와 문학성을 두루 갖춘 단 하나의 작품으로 란포의 <음울한 짐승>을 꼽고 있는데, '나'는 란포 이후로 미스터리와 문학을 한층 높은 수준으로 승화시킨 사람을 렌조 미키히코라고 말한다. 그와 생각을 같이한 모리무라 세이치가 기억에 남는 미스터리로 렌조 미키히코의 <회귀천 정사>를 꼽자 작풍이 완전히 다른 사람이 이 작품을 골랐다는 사실에 새삼 대단하다고 느낀 걸 기억한다고 말했다.

지금도 에도가와 란포상 하면 일본에서도 대단한 권위를 가진 추리 문학상 아닌가?

본격이니, 탐정이니, 추리니...다 같은 말 같은데 알고보면 풍기는 뉘앙스가 살짝 살짝 다른 것 같다. 나는 아직 그 정도로 추리소설광은 아니라서 구분지을 수 있을 정도는 못되고 혼용하고 있으니, 추리소설 매니아들은 이 리뷰를 보고 분노하지 마시길...

어쨌든, 등줄기가 서늘해 지는 소설을 읽고 한나절을 시원하게 보낸 나는 부지런히 렌조 미키히코의 <회귀천 정사>를 찾아 읽고 있는 중이다.

<화장 시리즈>8작품 중에서 3작품이 실려 있었던 <저녁 싸리 정사>는 이미 읽었고, 그 서늘한 매력이 기억에 아스라이 남아 있는 상태이니...나머지 5작품이 실려 있는 <회귀천 정사>를 어서 마저 읽어야겠다.

사랑이야기가 주제이고 꽃이 공통된 모티프이니만큼 그 문장들은 유려하고 아름답기 그지없다.

 

<기관>의 두 가지 매력에 푹 빠져 오랜만에 시원한 여름을 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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