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것도 하지 않는 즐거움>-무위자연이 아니라도...

아무 것도 하지 않는대서 진짜, 정말 “無爲自然”(무위자연)인줄로만 알았다.
그러다가 작가가 직접 그린 삽화가 들어 있는 에세이인 걸 알고는, 제목을 맹신한 나를 꾸짖었다.
행복은 삶의 최소주의에 있다.
이 말은 1부의 첫 꼭지 제목이 “삶의 최소주의”라서 끌어다 붙인 말일 게다.
이 책의 모든 꼭지를 관통하는 주제가 아닌 것이다.
작가는 그야말로 들쑤시고 다니지 않는 곳이 없는 전천후 인간인가 보다.
오죽하면 자칭, “오지래퍼”라고 명함에 새기고 다닐까.
“극단적으로 호기심이 많고 거절을 잘 못하는 성격”
이 말이 이 책의 주제를 알아내는 데 필요한 키워드이지 싶다.
카툰 에세이.
건축, 음악, 미술, 만화, 여행 등 많은 분야에 걸친 그의 지식이 전개되어 있고, 가끔 가다 만화를 사랑한다는 그의 그림도 볼 수 있다.


시인이기도 한 그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글솜씨를 보이긴 하지만, 음~그림은 좀 기괴하달까.
잠 오는 눈으로 책장을 넘기다가 화들짝 놀라 깰 수 있으니, 조심하라고 미리 경고해 두고 싶다. 진심으로!!!
쉬엄쉬엄 읽다가 쨍~하고 깨는 명징한 얼음 깨지는 소리 같은 울림을 들을 수도 있고,
(책에서 고인의 뜻과 만난다는 말도 있지만, 나무 한그루를 보면서도 고인과 만날 수 있다. 더군다나 그 그늘에 들어갈 수 있으니 나무는 천지 사방이 트인 끝없는 도서관이라는 생각을 해본다.-30)
그의 독서습관도 은근슬쩍 엿볼 수 있다.
(내가 어떤 책을 읽고 그 책을 이해하는 범위가 그 책의 범주보다 훨씬 넓다는 얘기를 듣는 거슨 순전히 그런 사소한 인연을 따지는 내 독서 습관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나는 그 책과 만남으로써 내 생을, 나의 지적 태도를 원심력으로 확장시킬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의 생각은 곧 나의 생각으로 연금술적인 변환을 치르게 된다. 그리고 그럴 수 있을때 나의 지식은 전 인류의 지식이 될 수 있지 않을까?-129)

무협지를 좋아한다는 대목에선 나도나도~를 외치게 되며,
(그런데 왜 무협지를 좋아하는가? 좋아하지 않는다. 다만 읽을 뿐이다. 끊임없이. 우리가 즐기는 주전부리 중에도 그런 게 있다. 맛이라고는 특별할 것도 없는데 계속 손이 가는 것들.-137)
없는 실을 억지로 꼬아서 임금님에게 입히는 소설가나, 그 임금님을 보고 칭송의 변을 늘어놓고 있는 평론가들이 난무하는 작금의 소설보다 훨씬 정직하기 때문이다. -138
이 대목은 현실의 평론에 대한 뼈있는 일침이 아닌가 한다.
무위자연이 아니라도, 제목만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즐거움”이라도 그의 글은 재미있다.
그가 여기 저기 들쑤시고 다닌 통에 제자리에 발붙이고 서 있던 나는, 한 걸음이라도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그의 글을 온몸으로 흡수해서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경지까지 나아가지는 않더라도, 아니, 그럴 순 없겠지만, 최소한 나도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이끌어 내 주는 것만으로 이 책은 제 할 도리를 다한 것이다.
굼뜬 몸을 일으켜, 등산을 하든, 나가서 수다를 떨든.
생산적인 일을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