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는 사람, 임동창 - 음악으로 놀고 흥으로 공부하다
임동창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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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는 사람, 임동창>-이것이 풍류로구나!

음악으로 놀고 흥으로 공부하다.

 

웃음이 참 해맑다. 이 사람.

환하게 웃는 얼굴이 보이는 책을 옆구리에 끼고 미용실로 갔다. 오랜만에 지저분한 머리를 정리하려고.

구불구불, 굽슬굽슬한 머리카락 덕에 항상 더부룩해 보이고, 더 늙어 보이는 게 신경 쓰여서 이참에 한 번 쫙 쫙 펴보려고 말이다.

파마란 것은 한 번 하면 두 세시간 기본이니 책이나 한 권 독파하자~ 하고 이 책을 골랐다.

설렁 설렁 읽다 보면 머리가 다 펴져 있겠지.

 

그런데, 난관에 부딪쳤다.

처음엔 손님이 나 혼자였는데, 시간이 갈수록 나같이 오전에 시간 많은 아줌마 손님들이 계속 들어오는 것이었다.

임동창의 천재성이 드러난 피아노 입문기를 읽고 있는데, 옆의 아줌마 둘이 수다를 떨고 미용실 원장까지 합세다.

“상추로 국 끓여 먹어 봤어?”

“아니, 풀 죽지 않아? 상추로 국 끓인다니...첨 들어본다.”

“된장에 넣어 먹으면 맛있어. 국 끓여도 아삭아삭 하다니까.”

“진짜?”

“정말?”

“아~여름엔 장아찌가 제격이지. 상추도 장아찌 해 먹으면 돼.”

 

으흠~

그러거나 말거나, 내가 읽고 있는 책 속의 임동창은 학교 가는 것도 잊고 피아노 삼매경에 빠졌다. 몰입을 넘어서 몰아의 경지까지. 아직 어린 나이에 피아노에 미쳐 밥 먹는 것 까지 잊고 하루종일 뚱땅거리고 있는다는 자체가 너무 경이로웠다. 주로 연습하던 교회의 피아노 건반이 누렇게 변한 채 가운데가 패고 , 피아노 페달이 구멍이 날 정도로...

나는 아줌마들의 수다가 점점 멀어져가는 기묘한 경험을 했다. 임동창의 생애를 죽 따라가다보니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되었다. 잠시 머리를 감으러 움직일 때는 방금 읽다 접어 둔 페이지의 글귀가 따라왔다.

 

혼자 공부하며 (물론 여러 스승님이 계시긴 했지만) 작곡의 길에 이른 임동창은 벽에 부딪쳤다. 존재론적 문제에 봉착한 것이다. 그리하여 출가를 결심하는데, 처음 접한 절집에서 그의 기이함은 여실히 드러난다.

 

“어이, 임 행자. 왜 중이 되려고?” 

나는 마침 서브를 넣으려고  탁구공을 들고 있었다. 나는 대답 대신 소리쳤다.

“놔! 놔!”..............잠시 후에 탁구공을 탁구대 위에 툭 떨어뜨렸다. .......................

“이놈 찾으러 왔습니다.”

“제대로 왔구먼.”

 

선승들의 선문답을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는데도, 저렇게 구사한 것 아닌가.

“보림”을 법명으로 삼고 “이 뭐꼬?”를 화두삼아 절 생활을 하던 그는 장래를 걱정하던 지인들 때문에(덕분에?), 면제될 군대를 가게 되었고, 제대 후 서울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스치듯 흘러간 한 여인과의 동거생활, 다시 시작한 공부, 그러다가 그는 운명적으로 전통음악을 만나게 된다.

 

임동창의 일생은 화두를 풀기 위해 사는 인생이었다.

 

‘내 음악은 무엇인가’라는 화두는 열일곱에 생긴 것이고, ‘나는 누구인가’는 내 음악을 만들기 위해 공부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화두였다. 내가 나를 모르고서 내 음악을 어떻게 만드나 싶어서 이십대 초반에 출가까지 했는데 이십여 년이 지나도록 그 문제를 풀지 못하고 있으니 답답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었다. -236

 

과감히 모든 것을 접고 좌선하던 그는 ‘사랑이란 무엇인가’를 파고들어 ‘음과 양’의 이치를 깨우치면서 ‘오롯한 내 음악은’ 화두를 풀었다. 두 달 동안 다이아몬드 같은 곡을 써낸 그는 임동창의 풍류 ‘허튼가락’을 만들어 냈다.

나도 ‘풍류’란 말을 참 좋아하는데, 그는 ‘풍류’에 대해 이렇게 정의 내렸다.

 

아무 것도 못헐것이 없구나

그저 허기만 허면 되는 것을

한다는 것은

삶을 흐르게 두는 것이며

바람과 하나되는 숨결을

이루는 것이다

이것이 풍류로구나

 

-그냥 임동창

-319

 

지금은 나같은 사람도 홈쇼핑에서 자주 얼굴을 볼 수 있는 임동창의 아내 <효재>. 이 책에서는 효재와 임동창 부부의 특이한 삶도 살짝 엿볼 수 있고, 화두를 풀어낸 후 음악을 하면서 교육에 뜻을 둔 그의 생도 볼 수 있다.

 

나는 교육을 전공한다는 것이 모순이라고 생각한다. 자기 스스로가 죽어라 공부해서 내면을 갈아엎고 무언가 터득이 되었으면 안 가르칠 수가 없다. 내가 공부한 결과가 교육이고, 내가 가진 것을 진정으로 나누는 것이 교육이기 때문이다.

-308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밑줄 치거나 책 페이지 표시하려는 작업을 아예 포기하고 말았다. 읽어 내려가는 속도도 빨라질 뿐더러, 책 곳곳이 명언 아닌 곳이 없기 때문이었다.

음악, 인생의 화두, 나아가 교육에까지.

그가 일생을 바쳐 몰두해 온 화두 풀이에 덤으로 그의 음악이 어디서 나온 것인지를 알아채는 기쁨은 무엇과도 견줄 수가 없다.

이 책을 읽는 동안은 오롯이 그의 인생과 함께 할 수밖에 없었다.

술술술 막걸리 넘기듯 술술 넘어가는 책장이 다 넘겨질 무렵, 내 머리도 쫙쫙 펴졌다.

그의 책을 읽고 다시 태어난 기분이었다.

저 옛날, 신라 시대의 원효 대사가 춤추며 불렀다던 ‘무애가’를 이 현세에서 구현할 이가 있다면, 그가 바로 임동창이리라.

바람결에 찰랑찰랑거리는 머릿결과 함께 뭔가 훌훌 털어버린 시원함이 느껴졌다.

세상은 아름다워~

랄까, 훗!

 

 

 

이 글은 한우리 북카페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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