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 패밀리
고종석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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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 패밀리>

 

해피, 해피, 패밀리.

 

나는 항상 흡족하다는 표정으로 산다. 가증스러운 위선이다. 아니 가증스럽다는 말은 너무 강하다. 강하다기보다 차라리 왜곡이다. 내 위선은 지혜로운 위선이다. 가족들 사이에 평화를 만들어내는 위선. 가족들 사이에 사랑을 만들어내는 위선. 비록 그 평화가 당장이라도 바스러질 듯 위태위태한 것이고, 그 사랑이 보기에만 아름다운 치장일 뿐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82

 

해피 패밀리의 가족들은 지나치게 담담하고 이성적이다. 그들이 처한 상황은 매일매일 소리 지르고 던지고 악다구니를 써도 결코 과하다 할 수 없을 만큼 미치기 일보 직전의 상황일 텐데도 조용하다.

그 사건 이후 이미 시간이 흘러서 모든 게 잠잠해진 탓일까.

그렇게 큰 상처를 모두들 잘 교육받은 지성의 힘으로 꾹꾹 눌러 담고 위태위태하고 감추어 두고 살아간다.

이야기는 가족 구성원의 각각의 독백으로 이야기는 전개되어 나가는데, 그나마 사건의 심각성에 정상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은 중심인물로 여겨지는 한민형의 어머니 민경화 뿐이다. 서양 귀족들의 우아한 식사시간을 방불케 하는 장면. 기다란 식탁 끄트머리에서 얼굴을 마주보며 우아하게 대화를 하자고 아내 민경화에게 청하는 한민형의 아버지 한진규. 끝에 가서야 겨우 밝혀지는 감질나게 궁금한 사건의 씨앗을 발아시킨 장본인이라고 할 수 있는 부모 세대의 어쭙잖은 위선이 적나라하게 까발려지는 식탁 대화 씬은 이 소설의 중요한 한 장면이면서 우리 시대 중상류층 사람들의 의식에 깔려 있는 암묵적인 생각의 덩어리가 여실히 보여지는 장면이라 할 만하다.

 

너무나 아름답고 흠잡을 데 없어 아도니스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한민형.

그의 가족은 남들이 보기에 완벽한 것 같다.

남부럽지 않은 부모에다 아들 딸 고루 잘 성장해 주어 모두가 부러워할 만한 가족.

그러나 가족 각각이 쏟아내는 독백에서는 냄새가 난다.

썩은 냄새.

자신이 못다 이룬 고위공직자의 꿈을 아들 한민형에게 투사한 아버지. 옛날 친구가 죽자 그 딸을 데려다 친딸처럼 키운다는 칭송을 받지만 실제로는 하녀처럼 부려먹는 역사교사 어머니.

그 부모에게서 난 자식들과 길러진 자식은 어떻게 자랐나.

그렇게 자라난 자식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나.

끝으로 갈수록 드러나는 그 삶이란 것은 소설적 장치를 통해서 아주 선명하게 드러난다.

 

소설책 표지의 무채색 거실 사이에 피어있는 노란 꽃 한 송이.

절망 속의 희망을 말함인지, 희망마저 시들해 보이는 가족의 분위기를 극적으로 드러내 보이는 것인지.

읽는 이에 따라 달리 해석될 일이다.

 

가족이기에 감싸 안고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은 분명 한계가 있다.

내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혼도 내게는 상처이고, 내게 상처를 준 부모님은 나로부터 곱지 않은 시선을 한 번쯤은 받아도 할 말이 없는 것이다.

불효자, 불효녀 이전에 부모 세대의 잘못이 내게 영향을 미쳤으면, 나도 아프다고 나도 불행했다고, 한 번쯤 속시원히 털어놓을 때가 분명 온다.

가족이니까 넘어가주고 덮어주고 무조건 효도해야한다는 말.

그 말 때문에 상처받고 산 세월이 얼마인가.

한 번쯤 털어놓고 원망할 건 원망하고 속시원히 쏟아내고 나면 관계를 회복하기 어려울까?

아니. 홀가분하다.

가족과의 관계 단절이 두려워 쓴소리 못한다면 질러라!

너무 잘 단련된 도덕성 교육 탓에 내 정신이 피폐해지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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